
내가 스무살 때 이뤄놓은
학벌과 노력은 영원할 수 없다
명실상부 ‘대학’민국이라는 별명이 무색하지 않다. 2019년 기준으로 대한민국 청년층(25~34세)의 고등교육 이수율은 69.8%, OECD 2위(1위인 아일랜드와는 불과 0.2%p의 차이). 25~64세까지 성인 고등교육 이수율도 50%로 OECD 평균 45%보다 높다. 우리나라의 고등교육 이수율은 2008년부터 지금까지 OECD 국가 중 최상위권이다.
이와 같은 통계에서 알 수 있듯, 이젠 고졸 직장인뿐만 아니라 은퇴자들도 대졸자들도 대학에 입학하고 있다. 그들은 왜 다시 대학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일까? 1면에서는 대학으로 돌아오는 이들과 관련해 ‘만학도’의 의미가 무엇인지 짚어본다. 2~3면에서는 방송대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이 밝히는‘나는 왜 만학도가 되었는가’에 대해 들어본다.
사회면에서 발견하는 만학도 미담
고등교육은 교육 단계 중 최상위 단계의 교육으로서 학위 또는 그에 준하는 자격을 수여하는 대학·대학원 등의 교육 기관에서 제공하는 교육이다. 보통, 사람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입학하고 대학을 졸업한 후 대학원에 진학한다. 가끔 1~2년의 차이가 나긴 하지만, 상급 학교 진학과 연령대의 일치가 일반적이다. 그리고 이것이 ‘상식적’이었다.
하지만 평균적인 나이보다 늦게 대학에 입학해 공부하는 사례가 없지는 않았다. 한국전쟁을 거쳐 1970년대 중후반 산업화 시기까지는 가정형편 등의 문제로 공부를 중단하거나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이들이 많았다. 이들은 대부분 ‘배움의 한’을 품고 살다가 경제적 상황이 나아진 중년 혹은 노년에 이르러서 대학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 60대 말에 초중고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대학에 입학한 할머니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만학도 미담’으로 신문의 사회면에 실렸던 것을 쉽게 기억할 수 있다.
이런 미담은 지금도 존재한다. 올해, 고등학교 졸업 검정고시 최고령 합격자인 74세 차수정 할머니도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공부를 하지 못했다. 마음에는 늘 배움에 대한 갈망이 남아있었는데, 이 갈증을 해소하지 못한 채 반백년 이상을 지내오다 미국에 있는 손주와 영어로 대화를 나누고 싶어, 방송대 영문학과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만학도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먼저 검정고시에 도전했고, 결국 지난 8월 합격증을 거머쥐었다.
새로 쓰는 역사, 재편되는 대학
‘공부(배움)에도 때가 있다’와 ‘공부하기에는 늦은 나이’라는 말은 이제 낡은 것이 돼 버렸다. 대격변기를 맞이한 우리의 시대에는, 배우기에 ‘가장 적합한 때’도 ‘늦은 시기’도 존재하지 않는다. 20대에 명문대를 졸업하고 30대 후반 만학도로 방송대 유아교육과에 입학, 마흔에 국공립유치원 교사 임용고시에 합격한 정문영 동문은 “내가 스무살 때 이뤄놓은 학벌과 노력은 영원하지 않다”며 “새로운 지식과 유연한 사고를 갖도록 방송대에서 배울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것이 바로 시대적 변화에 부응하는 성인학습자들의 대응이다.
제4차 산업혁명과 100세 시대라는 조건은 인간의 삶을 ‘다단계’로 바꿔놓았다. ‘교육→일→퇴직’으로 이어지던 전통적인 ‘3단계 삶’이 허물어졌고, 20대에 배웠던 지식과 기술만으로는 80세까지 2~3개 이상의 직업 활동도 여가도 즐길 수 없게 됐다. 생애주기마다 개인의 삶에 던져진 각각의 과제는 과거와 다르고, 그 새로운 과제들을 풀어내기 위해서는 그것에 적합한 지식과 전략, 기술 등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30년 후에는 거대한 캠퍼스가 유적지가 될 것이다. 대학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처음으로 인쇄된 책을 가졌을 때와 같은 엄청난 변화다.” 뉴 포디즘 (New- Fordism)으로 유명한 사회생태학자인 피터 드러커(P. Drucker)가 1997년 했던 인터뷰가 다시 언급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은 전통적 대학 캠퍼스를 해체시키는 시동을 걸었다. 이제 대학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새롭게 증명해야 할 시점에 서 있다.
‘대학의 종말’을 이야기하는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 이 시대를 ‘앞서’ 살아가기 위한 전략으로 다시 고등교육을 받으러 대학에 들어간다는 것, 모순이 아닐까? ‘대학의 종말’에서 의미하는 대학이란, 전통적인 의미로서 고등학교를 졸업해야 입학할 수 있는 ‘대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이제 미래의 대학은 다양한 니즈를 충족하기 위해 다양한 연령대의 학생들이 함께 공부하는 평생교육을 위한 공간으로 재편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미국의 스탠포드대는 개방형 순환대학(Open Loop University)을 새로 운영하고 있다. 이 대학의 시스템은 방송대와 비슷한데, 학생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언제든지 평생에 걸쳐 6년간의 학습 기회를 제공받고, 학습공동체의 평생회원으로서 자신이 필요할 때 원하는 만큼 대학 공부를 통해 지식과 정보를 획득할 수 있다.
만(晩)학도가 아니라 만(滿)학도
2010년 후반부터 만학도의 양상은 달라진다. 성인학습자들이 대학 문을 두드리는 사례가 더욱 증가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가 공개한「전문대학 최근 5년 성인만학도 현황」에 따르면 전문대학에 지원한 만학도(26세 이상)는 2017년부터 2021년도까지 꾸준하게 늘어 지난해 2만 명을 돌파했다. 남성희 전문대교협 회장(대구보건대 총장)은 “평생교육 차원에서 새로운 제2의 인생을 도전하는 성인만학도 입학 사례가 늘고 있다”라고 말했다.
대표적인 고등평생교육기관인 방송대에도 재학생들의 최종 학력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2013년도에는 고등학교 졸업자가 절반을 넘어선 59.5%를 차지했다. 전문대학 이상(4년제 대학, 대학원) 졸업자는 신·편입생 10명 중 3명(31.5%)에 머물렀다. 그러나 2019년도에 이르러서는 상황이 역전됐다. 고등학교 졸업자는 42.2%로 2013년보다 약 17%p 감소했다. 전문대학, 4년제 대학, 대학원 졸업자들이 다시 방송대에 입학한 비율은 신·편입생 10명 중 6명(57.8%)으로 증가했다(「2020학년도 재학생 실태조사」, 방송대 원격교육연구소, 2021).
1980년 이후 경제 성장이 가속화되고 생활과 교육 수준이 전반적으로 향상되면서 대학 진학률은 평균 70%에 육박했다. 기존의 만학도는 경제적인 이유로 고등 교육을 받지 못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만학도는 대학을 졸업하고도 다시 고등교육을 받으러 대학을 찾는 이를 가리키는 말이 됐다. 이들은 뒤늦게 학교에 진학해 공부하는 만(晩)학도가 아니라 일과 여가, 교양 등 자신의 삶을 온전히 채우기 위해 공부하는 만(滿)학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