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U광장   강성남의 그노시스

움베르토 에코가 한 말로 기억한다. “책은 수저나 망치, 바퀴와 같다. 한 번 발명되고 나면 더 나은 것을 발명할 수 없는 물건이다. 형태와 재료가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책의 기능은 영원히 지속할 것이다. 책은 기술혁명이 멈추게 할 수 없는 지식과 상상의 바퀴다.”


필자는 2010년 5월 첫 모임을 시작한 ‘북클럽’에 지금까지 참석하고 있다. 개근 회원이 12명이다. 한 달에 한 번 모여서 순번에 따라 한 회원이 지정한 종이책을 읽고 발표한 내용을 중심으로 회원들이 토론을 벌인다. (코로나 상황에서는 줌으로 한다)


무려 12년 남짓을 쉼 없이 모임을 지속한 까닭은 독서의 묘한 매력 때문이다. 그건 한 권의 독서가 12권의 독서 효과로 증폭되는 멱함수의 ‘양의 되먹임(positive feedback)’ 현상이다. 지금까지 얼추 120여 권이 발표됐으니, 증폭 효과를 고려하면 회원들은 1,400여 권을 읽은 셈이다. 선정된 책의 주제는 철학, 역사, 음식, 미술, 음악, 건축, 빅데이터, 종교, 심지어 번역의 역사까지 모든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어째서 화가들은 책 읽는 남성이 아니라 책 읽는 여성을 그렸던 것일까? 독서가 즐거움을 준다는 의식은 미술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17세기 회화에서 서서히 나타나다가 18세기에 늘어나며, 19세기에는 이전보다 다양한 독서가 생겨난다. 가사에 집중해야 할 여성들이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허비한다는 인식에서, 점차 자기발견과 완성의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독서란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면서도
숙고한 사유와
심오한 욕망이 담겨 있는
나침반이다.


독서란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면서도 숙고한 사유와 심오한 욕망이 담겨 있는 나침반이다. 우리 각자의 정체성은 독서에 기반하고 그에 따라 하는 모든 말로 드러난다. 한 문명이 이룩한 사유와 감성과 욕망의 정점이 정련된 언어의 형태로 책 속에 고스란히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아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가 읽는 책을 읽어보는 것이다. 다양한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전공 서적만 평생을 읽은 사람을 향해 특정 주제만을 안다고 해서 독일에선 ‘전문가 바보(fachidiot)’라고 한다. 요즘은 깊이 있게 아는 사람이 전문가가 아니라 새로운 걸  아는 사람이 전문가다.


나이 들어서 가장 좋은 놀거리는 독서다.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심브르스카는 책을 읽는다는 건 인류가 고안해 낸 가장 멋진 유희라고 했다. 그리고 독서는 다른 어떤 놀이도 제공하지 못하는 자유, 즉 남의 말을 마음껏 엿들을 수 있는 자유까지 제공해 주기 때문에, 독서의 매력은 ‘자유의 구매력’의 다른 표현이다.


독서는 우리가 타인의 목소리와 영혼으로 빠져드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한다. 우리는 책을 통해 이전에 알지 못했던 의식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사람을 읽으려면 『한비자』를, 사람을 이기려면 『손자병법』, 사람을 다스리려면 『논어』, 사람을 구하려면 『성경』을 읽으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독서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설명하고 예측하는 힘을 기르게 된다. 생각의 근육을 키우려면 독서와 명상이 필수다. 독서는 ‘뇌가 먹는 비타민’인 셈이다.


투자의 귀재로 일컬어지는 워런 버핏은 대표적인 독서광으로 알려졌다. 그는 ‘일어났을 때보다 조금 더 똑똑한 상태로 잠자리에 들라’라고 말한다. 빌 게이츠도 하버드대 졸업장보다 소중한 것은 독서 습관이라고 한 걸 보면 독서가 최고의 문화자본을 얻는 방법임이 틀림없다. 슈퍼 리치는 엄청난 다독가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책을 읽는 게 좋을까? ‘새말 새몸짓 재단’ 이사장인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낱말을 이해하고 문장을 이해하는 것이 책 읽기의 전부는 아니다. 낱말과 낱말 사이, 문장과 문장 사이에 텐트를 치고 ‘남몰래’ 머무는 게 책 읽기다. ‘남몰래’는 문장들 사이에 자기만의 처소를 다지는 일이다.” 최 교수의 조언은 책에서 읽은 사상에 자리를 내주기 위해 자신의 사상을 내쫓지 말라는 뜻이다. 남의 땅을 가보려고 제 땅을 팔아버리는 우를 범하는 걸 경고하는 말이다. 비유컨대, 책에서 읽은 남의 생각은 남이 밥상에서 먹다 남긴 것이며 이방인의 어깨에서 벗겨낸 옷과 같다.


위대한 사상가들이 위대한 이유는, 그들이 기존의 책이나 전승에 의지하지 않고 자신보다 앞서 살았거나 현재 주변에 사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생각을 피력했기 때문이다. 의식 안에서 타오르는 불꽃과 같은 명석한 생각들을 늘 지켜보고 포착해야 한다. 인간은 반추동물에 속하므로 그저 많은 책을 자신 안에 욱여넣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삼킨 것을 잘 새김질해 소화하지 못한다면 책은 힘도 양분도 될 수 없다.


독서 방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책부터 읽어야 한다는 것. 안 그러면 영영 읽지 못한다. 존 밀턴은 ‘좋은 책은 영혼의 보혈’이라고 했다. 악서는 지성을 흐리게 하는 정신의 독이다. 좋은 책을 읽다 보면 책에게 늘 새로운 나를 보여주게 된다. 책과 내가 마주 보고, 서로를 읽는 독서, 즉 내가 책을 읽고, 책이 나를 읽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이런 단계에서는 책은 상상력과 기억의 연장이 되어 독서를 통해 앉은 자리에서 가장 멀리까지 가는 일이 가능해진다.


서재를 나의 사색, 생각, 세계, 우주가 머무는 곳이면서 상상의 꽃이 피어나는 텃밭으로 가꾸려면 독서의 씨앗을 뿌려야 한다. 올해로 12주년이 되는 나의 북클럽 좌장은 종신직이다. 또 하나의 성직이기 때문이다.

 

방송대 교수·행정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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