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대와 함께한 시간이
방황의 세월없이
최선을 다하는 훌륭한 엄마로,
멋진 여인으로의 자리를
지켜낼 수 있게 한 원동력이다.
나는 수년 전에 나이가 멈춰버렸다. 마치 소설 『양철북』의 오스카처럼. 방송대 덕분에 젊게 살아가지만, 실제 물리적 나이는 50대 중반이다. 20대 때 다녔던 대학 친구들이 방송대 자랑을 일삼았다. 방송대는 학원보다 경제적인 학비를 지불하고도 더 깊은 공부를 할 수 있다고. 친구들은 이미 대여섯 개 학과를 편입하고 졸업하고도 계속 방송대에서 공부하고 있다.
사실, 방송대는 내게 낯설지 않은 대학이다. 서울시청을 정년퇴임한 작은 아버지도 내가 어렸을 때, 방송대 법학과를 졸업하셨다. 나는 이런 인연으로 아니 필연으로 50이 다 돼 방송대에 편입했다. ‘어려울 때 힘이 되는 친구~’인 친아들과 함께 동반 입학해 집에서는 모자로, 학교에서는 동기로 지내는 행복을 누리고 있는 중이다.
결혼 후 쉼 없이 여러 종류의 사업을 무섭게 추진하며, 건강상 아이가 없을 줄 알았던 당시에 열심히 산 보답인지 신의 선물로 세 아이를 얻고 건강도 좋아졌다. 시모님의 당부와 아이들에게 좀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는 데 일조하고 싶어, 정치에 입문해 보좌관 생활도 병행하며 나름 바쁜 삶을 살았다. 그러다가 큰 딸아이의 입시를 앞두고 경영난으로 폐업해 연희동 대형사무실의 문을 닫았다.
하늘이 깜깜해지고 이 상황을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경제적으로나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상황 때문에 수세에 몰렸다. 할 수 있는 것들이 전혀 없었다. 모태 신앙으로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종교가 가톨릭이어서 어려울 때는 늘 기도와 함께하며, 책을 읽는 것으로 버티려 했지만, 당시에는 너무 힘들어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상태였다.
일이 잘되어 사세를 넓혀가다 방송대에 입학했다. 경영학과에도 등록했지만 바빠서 보류하고, 법학과도 등록을 했는데, 그 또한 어려운 상황이어서 학업을 계속할 수가 없었다. 더 힘들었던 것은 둘째 아들 대학입시를 앞두고도 경제적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아들을 설득했다. 남들은 하버드대, 서울대를 졸업하고도 방송대에서 다시 공부를 하는데 우리는 방송대를 졸업해 하버드대를 가보자고···. 아들과 함께 방송대에 등록하고 공부하면서 내 우울함은 점점 사라지게 됐다.
아들과 함께 학생회 임원으로도 활동하면서, 학생들을 위해 봉사도 하고 있다. 아들이 군대에 간 동안 나는 아들을 기다리기 위해 관광학과 졸업 후 영문학과로 편입했다. 일을 하던 사람이 멈추면 힘들어진다고, 공부를 하던 사람이 멈추면 삶의 활력소가 없어질 것 같은 염려 때문이었다.
관광학과를 졸업하고 나니 어느 사이 가정의 경제적 상황은 좋아져 있었고, 아이들 셋도 모두 장성해 막내
아들은 휴학을 하고, 지난달 공군에 입대했다. 공부를 하다 보니 시나브로 방송대와 함께 모진 세월을 이겨내게 됐다.
방송대와 함께한 시간이 내게는 방황 없이 최선을 다하는 훌륭한 엄마로, 멋진 여인으로의 자리를 지켜낼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다. 아마 내가 세상과 이별하는 날 방송대와도 따로 인사를 나눠야 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