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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초등학생 때 ‘세계 4대 성인’을 멋모르고 외웠다. 영문도 모르는 우리에게 선생님은 그저 외우라고만 했다. 숱한 선생과 책이 전하는 그분들은 과연 흠결 하나 없이 거룩했다. 대학에서 역사를 공부하면서 그 믿음에 금이 갔다. ‘고전’이 쓰인 역사 배경과 문헌비평에 눈뜨면서 속았음을 알았다.


‘고전’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1993년 서울대는 권장도서로 ‘동서고전 200선’을 발표했다. 이어서 ‘서울대 권장도서 100선’이 나왔다. 이후 논술시험과 독서운동 바람을 타고 이 목록은 중·고등학생에게조차 필수 독서 목록으로 강요됐다. 이 목록에는 관련 전공자조차 읽기 어렵다는 책이 적잖다. 게다가 오늘날의 문학이나 사유의 수준에 비춰보면 권장 가치는커녕 터무니없는 책도 수두룩하다. 하지만 이 목록이 ‘서울대’라는 권위에 기대 지금껏 우리의 독서를 망쳐왔다. 학생들이 손수 책을 읽는 수고를 덜어주느라 아예 그 100선의 내용을 요약한 책을 낸 친절한 ‘독서 선생’들까지 줄을 잇는다.


고전, 특히 ‘4대 성인’의 말씀을 기록한 고전에는 ‘소크라테스의 문제’가 있다. 우리에게 알려진 소크라테스는 순전히 플라톤의 기록에 기댄 것으로, 어디까지가 소크라테스의 생각인지 모른다는 문제다.

 

권위로 포장된 고전일수록

읽기 전에 먼저 의심해

책이 쓰인 배경과 의도를 알아야 한다.

맹신과 우상에 기댄 권위와 권장은
열린 독서의 적이다.


플라톤과 크세노폰은 소크라테스의 제자로 쌍벽이다. 둘 다 스승의 말씀을 기록했지만, 플라톤은 우상화했고 크세노폰은 정직했다. 크세노폰의 기록은 놔두고 플라톤의 『국가』만 들여다봐도 소크라테스(실은 플라톤)는 민주주의를 ‘저주’하는 전체주의 신봉자다. 그의 유토피아는 실은 인간의 삶이 제거된 지옥이다. 당시 역사를 보면 소크라테스는 진리에 복무하다 독배를 마신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스파르타에 조국을 팔아넘긴 무리의 배후(크세노폰)로 지목돼 기소됐다. 이런 사실을 플라톤은 감췄다.

 

소크라테스를 ‘창조’한 플라톤은 아리스토텔레스와 더불어 서양 철학의 시원으로 추앙되면서 그 권위는 가히 ‘조선의 주자’를 방불케 한다. 그러니 우리는 솔론과 페리클레스를 잘 알지 못하게 됐고, 크세노폰이 누구인지도 모르게 됐다.


‘소크라테스의 문제’는 공자와 예수, 부처에도 적용된다. 『논어』는 공자 사후 150년쯤 지나 형성되기 시작했다는데, 그나마도 없어지고 현전하는 최초의 『논어』는 공자 사후 700년 뒤에 하안이 편집한 『논어집해』다. 더구나 우리나라에 들어와 읽힌 판본은 공자 사후 1,700년 뒤에 주희가 편집한 『논어집주』다. 옛 봉건사회의 재건을 염원하면서 지배계급의 통치론을 설파한 ‘순진한’ 공자는 한나라에 와서 우상화되어 『사기』의 「열전」이 아니라 「세가」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이후로 공자님 말씀은 어떤 논리로든 미화되고, 공자 비판은 불경죄가 됐다. 조선에서는 주자 비판조차 사문난적으로 단죄됐다. 그래서 “귀족이 되는 것을 마다하고, 노동자의 검은 옷을 입고 전쟁 반대에 목숨을 걸었으며, 평등사회 건설을 위한 사회운동에 평생을 바친” 묵자는 (오랫동안 번역되지도 않고, 시험에도 나오지 않아) 우리가 잘 알지 못하게 됐다.


권위로 포장된 고전일수록 읽기 전에 먼저 의심해 그 책이 쓰인 배경과 의도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정체도 수상한 ‘권장도서’ 따위는 잊어버려야 진정한 자기 독서에 이를 수 있다. 맹신과 우상에 기댄 권위와 권장은 열린 독서의 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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