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내 생애에 있어 방송대는
학력 열등감으로 인해 주눅 들고 위축됐던
걸림돌을 걷어내고 자존감을 되찾는 과정이었고,
나를 발견하게 하는 시간이었으며
사람들의 다양함을 알게 해준 고마운 장이었다.
“김 대리님은 전공이 무엇인가요?”
“……”
“구- 국어국문학이요.”
출판사 편집부에서 근무하던 30대 초반 무렵, 사무실을 방문한 작가가 내게 물었다. 난감했다. 어찌 대답해야 할지 머뭇거리며 망설이다 국어국문학이라고 대답해버렸다. 당시 나는 학력 열등감 때문에 매사에 자신감이 없고 위축된 생활을 하고 있었다. 편집부에 근무하는 동료들이 국문학과 출신이 많아서 얼떨결에 국문학을 전공했다고 대답을 해버린 것이다. 자괴감이 몰려왔다. 거짓말을 했다는 나 자신이 싫어서 며칠을 우울하게 지내다가 술자리에서 상무님에게 이 사실을 고백했다. 상무님은 그래, 이해한다고, 그럴 수 있다고, 괜찮다고,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위로를 해주었지만 내 마음은 편치 않았다.
학력 열등감은 20대 후반과 30대 중반까지 지독히도 나를 짓눌렀다. 취업을 하려고 입사원서를 낼 때마다 고졸 출신이라는 이유로 번번이 퇴짜를 맞고 좌절을 경험해야 했고, 겨우 취업을 해서도 대졸 출신에 비해 급여가 적어 항상 자존심이 상했다. 더구나 사귀던 여자 친구네 집에서 학력 때문에 반대를 해서 헤어져야 했던 아픈 경험이 뒤범벅이 되어 일상을 따라 다녔다.
이렇게 열등감에 쌓여 몇 년을 지내다가 아는 동생으로부터 방송대 입학을 권유받았다. 그는 경영학과 학생회 임원활동을 하면서 방송대에 대한 정보를 내게 알려주며 입학을 권유했다. 처음엔 ‘과연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으로 망설이다 용기를 내어 경영학과에 지원했다. 원서를 내기 전에 전공을 선택해야 했다. 마음이 끌리는 공부는 국문학이었다. 출판사 업무 특성상 국문학을 전공하는 것이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전공이 무엇이냐?”고 물어본 그 작가에게 거짓말을 한 나를 인정하기 싫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한 내가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때 내게 그 사건은 내 삶을 지배하는 큰 걸림돌이었다. 그러나 항상 현실보다는 이상을 추구하는 내 성향으로 봐서 보다 실용적인 현실 공부를 해야 삶의 균형을 이룰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고민 끝에 경영학과를 선택했다. 2003년, 내 나이 서른일곱 살 때였다.
원서를 내고 그 동생에게 이야기를 하니 무조건 스터디에 가입하라며 연고지 근처에 있는 스터디를 소개해주었다. 서울 서남지역의 경영학과 사군자스터디였다. 스터디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규모가 크고 체계적이었다. 자체 학습공간을 가지고 있었고 재학생들과 졸업 동문들이 함께 하는 그야말로 작은 캠퍼스였다. 먼저 졸업한 선배들과 재학생 선배들이 전공과목은 물론 교양과목까지 맡아 후배들에게 강의를 해주었다. 선배들은 각 분야에서 전문가로 활동하는 분들이 많았다. 스터디에서의 수업은 우리 학교 특성상 원격으로 수업을 해야 하는 우리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무엇보다 4년간의 긴 시간 동안 포기하지 않고 공부를 지속할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은 동기들과 선후배들 사이의 교류였다. 20대에서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와, 서로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공간은 다른 학교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우리들만의 독특한 학습 공동체였다. 서로 다른 세대가 어울려 인생의 지혜를 함께 나누며 어깨동무하고 가는, 그야말로 위안의 공간이자 세대 간 소통의 장이기도 했다.
고학년이 되자 자연스럽게 과목을 맡아 후배들에게 수업을 해주는 기회가 생겼다. 이 경험은 내가 배우면서 가르치는데 재미를 느끼고 보람을 얻는다는 새로운 나를 발견을 하는 계기가 됐다. 배우고 가르치면서 ‘공부는 다 때가 있다’라는 말을 ‘물리적인 나이 때가 아닌, 하고 싶은 마음이 동하는 때’라고 해석을 해보기도 했다.
3학년 2학기가 되면서 스터디 학생회장을 맡은 것은 내 인생의 또 다른 소중한 경험이었다. 학생회를 이끌며 본교 학생회와 교류하고, 스터디 연합회 활동을 하면서 리더십을 배웠고, 사람의 다양한 성향을 접하면서 사람들 간의 사랑과 애정을, 때론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속상해하고, 상처받으며 서로 갈등하는 우리네 속성과 심리를 접하면서 관계에 대한 지혜를 배웠다.
입학한 지 4년이 지난, 2007년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다시 교육학과에 편입했다. 경영학에서 공부했던 시간들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할 때 행복감을 느끼는지 나를 발견한 시간이었다면, 교육학과에서는 새롭게 발견한 나를 구체적 삶의 자리에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밑그림을 그리는 과정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보다 성장하기 위한 실천적인 계획은 대학원 진학으로 이어졌다.
서강대 교육대학원에 진학해서 보다 깊은 공부를 하는 과정은 삶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을 갖게 해주었다. 교육과 출판 분야를 접목한 프로그램인 ‘나를 찾아가는 여행, 돌아봄?바라봄?내다봄’이라는 글쓰기 프로그램과 ‘길 위의 인문, 나를 바라보는 네 가지 시선’이라는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안목을 제공해주었다.
학위 수여식 때는 우수 논문상을 받고 졸업하는 기쁨을 맛보기도 했으며 이후 한국성인교육학회지에 학술논문을 게재하기도 했다. 현재 작은 출판사를 운영하며 이 주제를 가지고 지자체, 대학교 평생교육원, 신문사 문화센터 등에서 강연 활동으로 대중과 호흡하며 삶의 보람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이런 경력이 쌓여 대학 강단에 서기도 했다. 또 ‘나의 전기(傳記)는 세상의 전기다’라는 모토로 전기 작가
로서의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내 생애에 있어 방송대는 학력 열등감으로 인해 주눅 들고 위축됐던 걸림돌을 걷어내고 자존감을 되찾는 과정이었고, 나를 발견하게 하는 시간이었으며 사람들의 다양함을 알게 해준 고마운 장이었다. 또한 40대로 접어드는 길목에서 새로운 꿈을 찾아 삶을 설계하고 도전하는 생의 전환점이자 디딤돌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