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대는 학생들이 직장생활과 학업을
동시에 잘할 수 있는 ‘오타니 쇼헤이’와 같은
인재를 양성하는 대학교다.
특히, 생활체육지도과는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싶은
직장인이나 운동 선수들에게 학업을 이어갈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중학교 시절의 나는 훈련 일정 때문에 정규수업에 거의 참여하지 못하고 시험 기간에나 교실을 찾았던 ‘운동부’였다.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 지금까지도 지워지지 않는 두 가지 기억이 있다.
2학년 첫 중간고사에서 기대 이상(?)의 좋은 성적을 받은 나를 교무실 한쪽에 우두커니 세워둔 담임선생님은 내가 부정행위를 했을 것이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담임선생님은 나의 답안지와 내 주변에서 시험을 치렀던 친구들의 답안지를 한참 비교하셨다. 억울했다. 흐르려던 눈물을 겨우 참았다. 며칠 후, 1학년 때의 성적을 확인한 담임선생님은 어머니를 학교로 불러 긴 사과와 함께 ‘왜 운동을 시키느냐’, ‘아이의 미래를 위해 당장 운동을 그만두게 하라’는 이야기를 하셨다.
같은 해 겨울, 나는 한 태권도 대회에서 어렵사리 1위를 했다. 그동안 여러 차례 맞붙었지만, 매번 지기만 했던 같은 학교의 친구를 결승전에서 만나 거둔 결과였다. 당연히 자기 아들이 이길 것을 기대했던 친구 부모님의 표정이 차갑게 변했고, 그 경기를 지켜보던 코치님의 표정도 매섭게 변했다. 경기가 끝난 후, 나는 결승전 경기의 경기력이 좋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체벌을 감당해야만 했다. 더 억울했다. 그때에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왜 나는 좋은 성적을 내고도 부정행위에 대한 의심과 가혹한 체벌을 받아야 했을까? 당시의 나는 학업과 운동 중 어느 하나라도 잘하면 안 되는 아이러니한 현실에 크게 좌절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의 담임선생님과 코치님을 이해할 수 있다. 운동부 학생은 학업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기에 담임선생님은 나의 성적을 의심했을 것이며, 운동에만 전념하고 운동부 운영에 도움을 주는 부모를 가진 친구에게 코치님의 관심과 애정이 집중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현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에는 15세의 나는 너무나 어렸다.
그날 밤, 나는 운동선수로서의 꿈을 포기하고 일반 학생이 되는 길을 택했다. 다행히, 나름 처절하고 비장했던 그 날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5년 뒤, 나는 운동부 출신 친구들 사이에서 유일한 ‘엘리트 대학생’(그들은 영화 「친구」의 대사를 따라 하며 나를 그렇게 불렀다)이 됐다. 하지만, 당시 포기해 버린 꿈에 대해 미련은 지금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학업을 포기한 채 운동만 하는 기계’를 만들어 냈던 우리나라 엘리트체육이 크게 변화하고 있다. ‘최저학력제’, ‘학생 선수 e-School’, ‘체육특기생 선발 과정의 내신 성적 반영’, ‘방학 중 대회개최’와 같은 제도를 도입해, 학생 선수들의 학습권을 보장하고 학업과 운동을 병행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고 있다. 또한, 축구를 비롯한 4개의 종목에 승강제를 점진적으로 도입함으로써 생활체육과 엘리트체육의 경계를 허물어 가고 있다. 훗날 생활체육과 엘리트체육 사이의 경계가 사라지게 되면, 나와 같은 아픈 경험을 한 운동선수들이 더는 나타나지 않으리라 믿는다.
메이저리그 야구선수 ‘오타니 쇼헤이’가 ‘베이브 루스’ 이후 무려 100년 만에 불가능처럼 여겨지던 이도류(二刀流, 한 선수가 투수와 타자로서 모두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것)에 성공해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에 비추어 생각해보면, 방송대는 학생들이 직장생활과 학업을 동시에 잘할 수 있는 ‘오타니 쇼헤이’와 같은 인재를 양성하는 대학교다. 특히, 생활체육지도과는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싶은 직장인을 비롯해 학업을 병행하고 싶은 현직 운동선수, 고등학교를 마치고 프로에 직행한 선수들에게 학업을 이어갈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여느 운동선수들이라면 꿈꾸게 되는 국가대표. 나는 그런 화려한 꿈이 아닌, 그저 학업과 운동을 함께 잘하는 ‘학생 선수’가 되고 싶었을 뿐이었다. ‘학생 선수’라는 단어조차도 없었던 그 시절을 회상하며 이제는 가슴속에 남아 있던 미련도 버릴 때가 됐음을 느낀다. 학업과 운동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쫓을 수 있는 두 개의 검[二刀]을 날카롭게 벼릴 수 있는 곳. 방송대 생활체육지도과에 오게 된 나는 영원히 남을 것 같았던 미련을 조금씩 지워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