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초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횡성에서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으로 사회의 첫 발을 내디뎠다. 하루 14시간 일하면서 한 달에 두 번만 쉴 수 있었다. 평화시장 1층 도로변에 헌책방이 있어서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책을 사러 왔다. 책을 사고 싶었던 어린 마음에 소리 없는 눈물을 삼키기도 했다. 이때부터 나도 언젠가는 공부를 해야겠다는 잠재의식이 생긴 것 같다.
시간이 흘러 1980년대 초부터 1990년 후반까지 의류사업 덕분으로 형편이 피었다. 그동안 못했던 공부를 시작하려는 찰나, IMF라는 예기치 못했던 복병을 만나 경제적으로 큰 시련을 겪어야 했다. 연이어 러시아 모라토리움 사태까지 발생해 힘든 시기가 이어졌다. 이후 심신이 극도로 허약해져 의학적 병명도 없는 고통을 겪으면서 어려운 사업을 지탱했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호흡 습관을 바꿨더니 신기하게도 고통스러운 두통이 사라지게 됐다. 이를 계기로 인체 습관에 대한 책을 쓰기로 결심하고 의학서적을 독학으로 공부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내 나이 47세, 2004년 중·고등학교 자격시험에 합격한 후 수능시험을 치렀다.
이후 방송대 문을 두드렸고 교육학과 05학번으로 입학했다. 방송대 학업에 집중하는 동안 각종 스트레스와 불안으로 찌든 뇌를 청소할 수 있었다.
방송대 특성상 비대면 수업을 통해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을 익히기 위해서는 사전과 친구가 돼야만 했다. 특히 스터디 모임은 각자의 지식을 공유하면서도 두터운 신뢰와 결속을 마련하는 자리가 됐다. 계절수업은 일상을 접고 학습에 매진하는 시간으로 활용했다. 수업이 끝나면 동아리 사람들과 친교 시간을 나누면서 공허함을 즐거움으로 채우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기출문제 풀이는 오답 함정을 피하면서 시험이라는 관문을 통과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매 학기마다 시험 치른 날 저녁은 답안지를 체크하며 천국과 지옥을 맛보는 시간이었지만 소중한 추억이 됐다. 비록 턱걸이 점수로 졸업을 했지만 방송대에서 보낸 4년이라는 시간은 내 생애 가장 큰 행운이며 학문의 뼈대를 심어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방송대를 졸업한 2009년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또 다른 시작을 할 수 있게 해준 원동력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곧바로 성경적 치유를 배우기 위해 백석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을 이수했다. 그러면서 인체의 전반적 습관을 연구한 책을 출간했고, 이러한 경력을 바탕으로 공공·민간기관에서 틈틈이 강의도 했다.
또 다시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차의과대학 지인 교수의 권유로 2018년 차의과대학 일반대학원에서 수면학 연구로 통합의학 박사 과정을 마치고 올해 2월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박사학위를 받은 다음 날 류수노 총장님이 직접 축하 전화를 해주셨던 그날의 벅찬 감동은 아직까지 잊을
수 없다. 황토이불이 수면장애에 미치는 효과라는 논문을 썼고 20년 동안 연구해 특허로 받은 기능성 나노황토섬유 수면장애 개선으로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평생교육의 혜택을 받았고 평생교육의 미래를 생각하는 동문의 한 사람으로서 ‘수면치유사’ 자격증 제도 신설 등 수면장애로 고통 받고 있는 이들을 위해 이바지할 수 있는 길을 가고자 한다. 교육이 백년대계라면 수면은 백세건강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