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U광장   강성남의 그노시스

130여 년 전만 해도 뉴욕과 런던에는 말이 교통수단이었다. 뉴욕의 말 트램은 8마리 말이 교대로 트램을 끌며 전용 궤도를 돌았다. 런던에서는 2층 버스를 말 12마리가 끌었다. 뉴욕에서 말이 한 해에 싸는 똥이 축구장 반 면적에 피사의 사탑보다 높은 60미터짜리 탑을 쌓을 양이었다고 한다. 이를 근거로 1930년이 되면 말똥 더미가 3층 건물 높이로 쌓일 거라는 추론도 나왔다. 런던의 어느 기자는 20세기 중반이면 말똥이 거리를 2.7미터 높이로 뒤덮을 거라고 봤다. 말똥에다가 말 시체가 도시에 곳곳에 널려 있는 게 문제였다. 보스턴 대화재로 건물 700채가 잿더미가 된 원인이 1872년 유행했던 말 독감으로 말들이 죽어서 소방 현장까지 소방 장비를 끌고 갈 운송 수단 부족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엘리자베스 콜버트(Elizabeth Kolbert)가 〈더 뉴 요커(The New Yorker)〉(2009년 11월 8일)에 쓴 칼럼에 나오는 이야기다.


말똥 걱정 문제가 어떻게 해결됐을까? 말똥 위기는 포드 자동차(모델 T)의 등장으로 막을 내렸다. 신기술이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한 사례다. 그렇다고 신기술은 문제해결만 하지 않는다. 새로운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노동의 시대’가 끝났다는 선언이 나온다. ‘탈’ 일자리(de-jobbing) 상황에 직면한 미래 세대는 정체성 상실의 심리적 공황을 겪게 될지 모른다. 직업은 수많은 사회적 역할 혹은 명분 중에서도 생물학적 생존을 위한 생계유지와 연관된 페르소나다. 즉 사회적 역할인 ‘직분’과 소득 활동인 ‘생업’의 결합이 바로 직업이다. 미래 세대는 일생 동안 3개 이상의 영역에서 5개 이상의 직업을 갖고 19개 이상의 서로 다른 직무를 경험할 거라는 의미에서 ‘3-5-19 법칙’의 굴레에 갇힐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에는 세상을 지배하는 기준이 ‘알고리즘(algorism)’이라고 한다. ‘알고리즘’이란 말은 당시 페르시아 지역이었던 우즈베키스탄의 콰리즘 지역 출신의 수학자인 이븐 무사 알 콰리즈미의 이름에서 비롯됐다. 알고리즘은 초보 요리사가 따라 할 수 있는 일종의 ‘요리법’에 비유할 수 있다. 고참 요리사가 보는 요리 메모에는 ‘생선을 적당히 포도주에 넣어 바짝 조린다’라고 쓰여 있지만, 알고리즘에서는 이렇게 쓴다. ‘라벨이 드라이라고 쓴 백포도주를 골라 코르스 스쿠로로 병을 딴다. 포도주 1인치를 팬 바닥에 따른다. 팬 아래는 버너를 센 불로 켠다….’ 요리법을 읽는 사람은 머리를 써서 결정하거나 직관을 동원할 필요가 없다. 알고리즘을 따르면 결과가 보장된다. 유감스러운 건 알고리즘에 기반을 둔 인공지능이 인간의 자리를 차지할 게 뻔하다는 사실이다.

 

 

알고리즘은 이제 기술적 수단을 뛰어넘어

미래의 지식과 노동을 조직하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이 됐다.

노동력의 근본적 변화는

학교라는 제도의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21세기 현대 철학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는 독일의 철학자, 마르쿠스 가브리엘은 『생각이란 무엇인가』에서 인공지능은 사유 모형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인간의 생각은 역사와 문화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기 때문에 기술로 대체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컴퓨터 지능에 대한 열정이 성찰 없는 위험한 미신의 징후임을 폭로한다. 인공지능은 우리의 생각하기를 모방하는 논리적 지도다. 컴퓨터 프로그램에는 생존이 걸린 질문들이 없다. 왜냐하면 컴퓨터 프로그램은 살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종교학의 창시자는 프리드리히 막스 뮐러. 그는 슈베르트가 곡을 붙인 연작시집 『겨울 나그네』, 『아름다운 물레방앗간 아가씨』를 쓴 독일의 시인 벨헬름 뮐러의 아들이다. 신과 인간의 결합이란 의미를 함축하는 라틴어 ‘religare’(‘묶다’의 뜻)에서 파생된 종교란 단어의 의미는 이제 인공지능과 인간의 결합이란 뜻으로 전환한다. 미국에서 탄생한 인공지능 종교 ‘미래의 길(The Way of Future)’은 이를 극명하게 대변한다. 우리의 모든 의무를 신의 법칙으로 인식하는 것이 종교의 본질이라고 했던 칸트의 말은 빛이 바래고 있다.


알고리즘은 이제 기술적 수단을 뛰어넘어 미래의 지식과 노동을 조직하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이 됐다. 노동력의 근본적 변화는 학교라는 제도의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지식인(대학)은 마피아처럼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 터득한 지식과 기술 효용의 반감기는 급속도로 짧아지고 있다. 기성세대는 위에서 아래로, 많이 알고 있는 쪽에서 반대쪽으로 지식을 전달하고 전달받는 것에 익숙하다. 그래서 지식을 머리에 저장(기억)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지식은 전달되고 습득되는 게 아니다. 무한히 생산되고 공유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전의 접근방식을 따르는 교육 패러다임은 더 이상 유용하지 않다.

버크민스트 풀러는 ‘지식의 2배 증가 곡선’을 발표했다. 인류의 지식 총량은 100년마다 2배씩 증가하던 것이 1900년대부터는 25년으로, 현재는 13개월로 그 주기가 단축된다. 2030년이 되면 지식 총량은 3일 만에 두 배씩 증가하는 ‘지식의 빅뱅’이 일어난다. 여기서 생기는 문제는 생각의 알고리즘을 수행하는 인공지능을 통해 해결된다. 말똥 위기보다 더 심각한 위기가 시나브로 다가오고 있다. 현재와 같이 대학이 4년 주기의 산업이기를 고집하다간 종언을 고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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