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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탈리아의 미시사가 카를로 긴즈부르그(Carlo Ginzburg, 1939~ )의 저서 『베난단티』를 2004년 『마녀와 베난단티의 밤의 전투』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한 일이 있다.


『베난단티』라는 명칭이 생소하기 때문에 제목에 그 내용을 조금이나마 반영한다면 독자의 이해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번역본의 제목이 길어졌었다. 베난단티는 ‘잘 다니는 사람들’이라는 뜻인데, 1년에 계절이 바뀔 때마다 몸은 두고 영적으로 밤에 밖에 나가 남녀 마법사들과 전쟁을 벌였다고 말했다. 그들이 이기면 그 해에는 풍년이 들고, 지면 흉작이 든다고 주장했던 그들은 결국 기독교 이단재판소 심문관들의 박해를 받으며 스스로 마녀나 마법사였다는 것을 인정함으로써 끝이 났다. 이제는 웬만한 이탈리아어 사전에서조차 ‘베난단티’라는 단어를 찾기 힘들 정도다. 그들이 기독교 신앙의 수호자였다는 항변도 소용이 없었다.

 

그 책은 독자들의 관심도 상당히 받았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난 뒤 절판됐다. 책을 찾아서 읽고 싶은 사람들은 아직도 꽤 있는 것 같은데 그 길이 막혀 있던 터에 한 출판사에서 그 책을 다시 출판하려고 계약까지 마쳤다고 알려왔다. 상당히 반가울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받아본 원본에는 저자 긴즈부르그가 그 책의 출간 50주년을 맞아 새로 쓴 상당히 긴 글이 추가돼 있었다. 그 책의 출간 이후 어찌하여 그 오랜 세월 동안 지속적으로 논란이 됐는지, 그 논란에 저자 자신은 어떤 방식으로 대응했는지 저간의 사정을 밝힌 글이다.


그 책을 번역하긴 했지만 그 텍스트를 넘어선 곳에 가면 별다른 지식이 없던 나에게 저자의 50년 뒤의 소회는 많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했다. 긴즈부르그는 유대인으로서 무솔리니 치하의 이탈리아에서 박해를 받았던 의식적, 무의식적 경험이 있었는데 타인의 지적에 의해 자신의 박해 경험이 베난단티의 박해 경험과 유사성을 갖는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됐고, 그것이 그 책을 집필한 무의식적 동기였을 수도 있다고 밝힌다. 그뿐 아니라 역사학, 사회학, 신학, 심리학, 정치이론, 인류학, 종교학 등등 방대한 학문 분야에서 제기된 문제점들과 그에 대한 자신의 대응을 정리해 알려주고 있다. 긴즈부르그는 그 책만을 썼던 사람이 아니라 문학비평의 영역까지 넘보면서 학문의 경계를 무색하게 만든 학자였는데, 27세 젊은 나이에 썼던 박사학위 논문에 바탕을 둔 그 데뷔작에 이리도 집요하게 한 평생을 매달렸던 것이다.


그의 여정에서는 에릭 홉스봄, 토머스 쿤, 마르크 블로크, 안토니오 그람시처럼 모두가 알 만한 사람들은 물론 우리에겐 생소한 여러 학문 분야의 전문가들이 등장하며 지식을 경합하는 향연을 벌인다. 그 향연을 위해 유럽의 여러 나라는 물론 일본까지 방문한 일이 있었던 긴즈부르그는 이번에 다시 나올 『베난단티』를 위해 한국어 서문도 새로 써주기로 약속했었지만, 그의 일정이 너무도 빡빡하고 한국 출판사에선 책이 나와야 해서 어쩔 수 없이 그 새로운 서문을 포기해야 했다. 어쨌든 80이 넘은 학자 긴즈부르그는 평생에 걸쳐 제시했던 통찰을 지금도 새롭게 전달하고 있다.


퇴임을 한 뒤에도 여전히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던 나는 문득 부끄러워진다. 공부는 역시 평생 이어지는 공부가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깊이 파야하는 것과 동시에 넓게 봐야 한다는, 평범하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진리를 그는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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