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에, 기나긴 세월 몸담았던 공직에서 물러난 뒤 자원봉사활동과 도서관을 들락거리다가 막연하게나마 방송대에 적을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내 지난해 중어중문학과 3학년 2학기에 편입했다. 1993년도에 방송대 행정학과에 입학, 7년 만에 힘들게 졸업했던 기억을 추억 삼아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예전에 비하면 학습하기 적합하게 잘 정비돼 있는 방송대 학습시스템에 감탄했다. 하지만 나는 정작 나이 탓인지 기억이 오래가지 않아 어찌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어쩌다 보니 기말시험까지 마쳤다. 특히 태블릿으로 기말시험을 보면서 과거 시험지를 나눠받고, 한 문제라도 더 맞추려 감독관과 실랑이하던 예전의 모습이 잠시 떠오르기도 했다.
6개 과목을 쉼 없이 듣고 또 들어 잘 이해했다고 자신했는데, 다시 보면 모두 처음 보는 내용 같아 아찔했다. 나의 아둔함을 스스로 질책하면서 여기서 그만둬야 할까보다 생각도 했지만, 그래도 시험은 봐야할 것 같아 기말시험을 모두 마쳤다. 한결 마음이 나아지긴 했는데, 공부에는 왕도는 없고 그저 열심히 해서 스스로 깨우쳐야 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우리 학우님들도 어쩌면 나와 같은 생각이 들 때도 있겠다 싶어 김득신(1604~84)에 관한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김득신은 어려서부터 몹시 노둔해 10세 때부터 부친에게 사략을 배웠는데 제대로 읽지 못했다. 하지만 부지런한 노력으로 1642년에 39세 나이로 진사시에 겨우 합격했고, 대과는 20년 뒤인 1662년 59세의 나이로 중광시 병과에 19위로 급제했다. 34세 때부터 본격적으로 고문 읽기를 시작해서 67세까지 읽은 고문의 횟수와 목록을 기록한 독수기(讀數記)가 특히 유명하다. 그중 『사기』 「백이 열전」은 무려 1억1만3천 번을 읽어 자신의 서재 이름을 억만재로 지었다. 성균관 전적, 홍천 현감, 정선군수를 역임했다. 독수기 1억1만3천 번은 실제로는 11만3천 번이라고 하는데 이 또한 놀랄 만한 일
이다.”
코로나 19로 힘들고 어려운 이 시절에도 학업에 열중(ZOOM 출석수업)하고, 기말시험장에서 문제들과 한판 하는 방송대 학우님들은 이 시대의 진정한 군자의 길을 가는 학생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열심히 정진하시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시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