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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칼처럼 휘둘러지는 시대,
박춘자 할머니의 ‘영혼이 펼쳐놓은 세계’에
그저 숙연해질 뿐이다.
품격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언어의 온도』(2016)를 써서 화제가 됐던 이기주 작가는 『말의 힘』(2017)에서 ‘말은 마음의 소리’라고 말했다.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그 사람의 품성을 드러낸다는 뜻이다.


그러나 말을 조심해서 사용하기보다는 아예 말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고 타이르는 목소리도 있다. 2010년 타계한 법정 스님은 『말의 침묵』(2000)에서 “진리에 의지하고, 사람에게 의지하지 말라. 뜻에 의지하고, 말에 의지하지 말라. 지혜에 의지하고, 지식에 의지하지 말라”라고 썼다.


사실 수다스러운 말, 조악한 말, 의미 없이 표류하는 말, 심지어 남을 해치는 말까지 난무하는 시대다 보니 ‘말을 가려서 하라’거나, ‘말에 의지하지 말고 뜻에 의지하라’는 작가나 스님의 말은 현대판 ‘명심보감’의 한 교훈처럼 곱씹어볼 수도 있다.


흉하고 해치는 말들이 넘쳐나니 말로써 누군가의 진면목을 판단하기도 점점 어렵게 되고 있다. 말이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의 방식과 행동의 온도를 봐야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지닌다.


새해 초 이화여대 목동이대병원 응급학과의 남궁인 교수 글이 화제가 됐다. 지난해 12월 3일 아동보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 홍보대사 자격으로 청와대에 초청받았던 날, 행사장에서 겪은 일을 회상하는 글이었다. 그의 글은 즉시 SNS 등을 타고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행사는 한 해 동안 이웃을 위해 봉사하고 나눔을 실천했던 단체의 기관장과 대표하는 인물 등을 초청해 대통령이 격려하고 기부하는 자리였다. 초청받은 이들의 면목을 보면 가히 내로라하는 유명인들 일색이었다. 그런 가운데 그의 눈길을 사로잡은 이는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고액 기부자로 참석한 구순이 넘은 박춘자 할머니(92)였다.


박 할머니는 남한산성 앞에서 김밥을 팔아 번 돈과 자신이 살던 집과 땅을 포함해 전 재산 6억을 기부한 일로 청와대 초청을 받았다. 남궁 교수는 “따뜻한 손을 나눠주기 위해 자신이 얻은 모든 일생을 조용히 헐어서 베풀었”던 박 할머니를 가리켜 “구순이 넘는 육신과 이미 모든 것을 기부했다는 사실만큼 당신을 완벽히 증명하는 것이 없었다”라고 말하면서, “범인으로는 범접하기 어려운 영혼이 펼쳐놓는 한 세계였다”라고 조심스럽게 썼다.


박 할머니는 가난했다. 어머니 없이 아버지와 근근이 힘든 삶을 살았다. 열 살 때부터 경성역에서 순사의 눈을 피해 김밥을 팔았다. 돈이 생겨 먹을 걸 사 먹었는데 너무 행복했다. 그게 너무나 좋아서 남한테도 주고 싶었다. 돈이 없는 사람에게 돈을 주면 이 행복을 주는 것이라 믿었다. 할머니는 그 뒤로도 돈만 생기면 남에게 다 줬다. 나누는 일만큼 기분 좋은 일이 없었다.


박 할머니는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이혼당해 가족 없이 살다가 40년 전부터 길에 버려진 발달 장애인을 가족처럼 돌보면서 지냈다. 고령에다 몸도 불편한데, 기거하던 셋방을 뺀 보증금 2천만 원마저 기부하고 거처를 옮겼다. 예전 당신이 기부해 복지 시설이 된 집에서 평생 돌보던 장애인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남궁 교수의 글에 묘사된 박 할머니는 말도 아름다웠지만, 말 이전에 마음이 투명했고, 행동과 행위도 순수했다. 거기엔 겨자씨만 한 셈법도 깃들어있지 않았다. 말이 칼처럼 휘둘러지는 시대, 박 할머니의 ‘영혼이 펼쳐놓은 세계’의 말과 행동에 그저 숙연해질 뿐이다. 품격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할머니께서 오래도록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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