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교양 과목’
사실, 나는 방송대 중퇴자다. 중퇴자가 무슨 할 말이 있겠나 싶은데, 기자의 설득으로 용기 내어 내가 방송대를 그만둔 사연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나는 영어를 잘했지만, 2004년에 방송대 영문학과에 2학년으로 편입했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음악학원과 보습학원을 경영하면서, 또 나이를 한두 살 더 먹게 되면서 인문학뿐만 아니라 수학사 등과 같은 분야의 지식에 대한 중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화교양학과보다 영문학과에 입학했다. 전공과목은 ‘설렁’ 공부해도 좋은 학점을 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과, 전공 공부하는 시간을 절약해 내가 공부하고 싶은 분야의 역사나 철학 등의 과목을 듣고 싶었다.
나의 오만인지, 착각인지, 게으름인지 뭔지 모르지만 나는 이런 나의 계획이 실패했다는 것을 느끼고 학교를 그만두었다. 일반선택으로 내가 듣고 싶은 다른 학과와 학년의 과목을 수강해도 시험 일정이 겹치거나, 지금 기억은 잘 나질 않지만 수강 신청 자체가 안 되는 과목도 있었던 것 같다. 이런 제약들은 내가 방송대 공부에 흥미를 잃게 만드는 요인이 된 것 같다.
그 후 K-MOOC를 통해 인문학 강좌를 틈틈이 듣고 있다. 좋은 성적과 수업료로부터의 자유가 있어 좋다. 좋은 제도인 것 같다. 수강 과목을 모아 학점은행에 ‘저축’도 할 수 있다. 게다가 이 학점들을 모아 자격증을 따는 데 요건을 충족할 수도 있다고 한다. 이런 좋은 점들 중 그래도 나에게 가장 좋은 점은 내가 듣고 싶은 수업을 분야나 전공 제한 없이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교양은 학과에서 정해주는 교양과목이 아니라, 내가 필요로 하는 모든 과목인 것 같다. 대학이라는 제도 교육 안에서 교양과목의 지정은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성인학습자를 대상으로 하는 평생교육대학인 방송대에서는 학령기 대상의 학생들이 배워야 할 교양과목과는 조금 다른 접근이 필요한 것 같다.
나는 초등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각각의 연령대에 필요한 교양은 일정 정도 정해져 있지만, 수준과 개인차가 있게 마련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발달된 AI 학습지가 아이들 개개인에 대한 취약점이나 필요한 부분을 지적해주면, 학원에서 교사들이 그 부분에 대해 아이들
스스로 집중해 공부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다.
초등학생들도 이럴진대, 성인학습자들이 다니는 고등평생교육 시스템에서도 자신이 필요한 부분을 선택하고 스스로 찾아 공부할 수 있게 되면 좋을 것 같다.
한번 딴 ‘쯩’으로 ‘고아먹는’ 시대는 끝!
어떤 사람들은 한의학을 단순히 ‘대체의학’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한의학의 과학성에 대해 눈뜬 서양인 중 한국에서 한의학을 공부해 한의사가 돼 활동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뿐더러, 한의사협회도 각종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여러 가지 뜸, 부항 등의 치료 요법과 약초에 대한 과학적인 데이터를 모아 처방에 힘을 쏟고 있다. 양의학에 비유해 예를 들어보자면 한의사들도 정형외과, 부인과 등의 자신만의 전문 분야를 정하고 더 깊이 공부하는 경우가 많다.
한의사도 각종 세미나와 포럼 등에 참석해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필자도 통증 분야에 대해 계속 공부하는 중이다. 그런데 공부하면서 더 깊이 있게 연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많다. 가령, 대학에서 통계학이나 식물학 분야 강의를 들으면 더 좋겠다고 말이다. 이왕이면 시간제로 수강할 수 있는 것보다, 내가 필요한 과목들을 이수해 새로운 전공을 만들어 학위를 받는다면 내 일에 더욱 전문성을 부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에는 이런 제도가 없는 것 같다. 필자는 방송대에 대해 잘 몰랐으나, 지인의 부탁으로 이 글을 청탁받은 후 방송대에 대해 알아보았다. 예전에는 그저 ‘못 배운 한’을 풀려고 이 대학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여전히 이런 분들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변해서인지 학령기에 대학을 졸업하고 직업 생활을 하다가 다시 방송대에 편입해 새로운 분야의 지식을 쌓아가는 분들도 많은 것 같다.
필자의 선배 중 한 분은 방송대 중문과에 입학해 중국어와 문화를 공부하고 계신다고 해 놀란 적이 있다. 고전 한의학 서적을 더욱 깊이 있게 해석하고자 하는 동기였다고 한다. 또 다른 은퇴하신 선배는 해외 의료봉사를 다니기 위해 영문학과를 졸업하셨다고 한다. 업무 능력의 전문성을 위해서든, 제2의 인생 설계를 위해서든, 나는 방송대에 입학하시는 분이 주위에 의외로 많다는 사실에 적지 않게 놀랐다.
어찌 되었건 이분들은 한번 딴 ‘쯩’이 자신의 일평생을 안락하게 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계신 듯하다. 급변하는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 AI가 필자의 자리도 넘볼 수도 있다. 그래서 필자도 더 배워야 한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분야를 배우고 내 일에 접목해 더더욱 전문성을 기르는 것이 지금 생각하는 최고의 대답이라고 본다.
필자는 방송대에 ‘열린’ 학위 과정을 제안해 본다. 내가 수강하고 싶은 과목이 꼭 한 학과에만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통계학, 식물학 때로는 문학에서도 필자가 의문을 품고
있는 것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방송대는 국립대학이어서 이미 저렴한 등록금 자체가 장학금을 받은 것과 다름없다. 그렇다면 국민이 전문성을 기를 수 있는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학위 과정을 개설하는 것도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