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달마고도로 가는 길에 휴대전화로 날씨를 검색했다. 그래도 겨울엔 눈이지, 생각했다. 머무르는 동안 눈 소식은 없었다. 눈이 내리지 않는 겨울여행은 을씨년스럽다. 헐벗은 나뭇가지며, 찬바람이며, 몸을 움츠리게 하는 마음까지. 그래서 겨울엔 다들 눈 쌓인 동쪽으로 가는 게 아니겠는가. 그런데 눈이 없다. 내리지도 않는다. 눈은커녕 해남 밭에는 아직 수확하지 않은 배추가 꼿꼿하다. 동화를 찍기도 낭만을 얘기하기도 다 틀렸다. 형편없는 장비로 다큐를 찍는 수밖에 없다. 걷기 모임에서 누군가 달마고도를 다녀오자는 제안을 했을 때 우리나라에 웬 달마고도인가 했다.
달마대사, 그리고 미황사 가는 길
달마고도는 낯설었다. 기껏해야 김명국 화가의 달마대사 그림을 떠올리는 정도였다. 달마대사는 인도사람 아닌가? 알고 보니 달마대사의 행적이나 지명을 가지고 있는 나라가 없는데, 미황사의 옛 기록에 달마대사의 법신이 항상 계시는 곳이라고 기록돼 있다고 한다. 놀라웠다. 게다가 고려후기 문헌에는 중국인들이 달마대사가 해동으로 건너가 안주한 곳이 이 곳 달마산이라며 찾아오고 부러워했다는 기록도 있다고 한다.일부러 길을 만들고 이름을 붙인 곳이 아니었다.
아침 9시 미황사 주차장에 닿았다. 일행들이 달마고도부터 걷자고 했다. 달마고도는 17.74㎞다. 둘레길이라고 해도 달마산을 오른편에 끼고 산 둘레를 걷는 길이라 평지와 달라 여섯 시간 이상 걸어야 했다. 이 길은 크게 네 개의 코스로 나눠져 있는데 간단한 산책을 생각했다면 1코스를 넘기지 않는 게 좋다. 1코스는 미황사부터 큰바람재까지 2.7㎞이다. 이 길 이후는 한 코스가 5㎞ 정도 됐고, 어느 정도 가면 되돌아갈 수도 없는 지경이 된다. 되돌아가나 둘레길을 걸어가나 비슷해지기 때문이고, 중간에 따로 빠지는 길이 거의 없어 무조건 완주해야 한다.
1코스는 미황사를 보러 온 이들이 가볍게 산책할 수 있도록 잘 닦여 있었다. 나무마다 이름표가 달려 있는데 흔히 보아온 졸참나무나 층층나무, 물푸레나무 외에도 붉가시나무, 사스레피나무, 대팻집나무 등이 이름표를 달고 있다. 지나는 길마다 나무 한 번 보고 이름 한 번 불러준다.

이 길은 가장 쓸쓸한 겨울에
걷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풍경을 들러리 삼아
동료들과 즐기는 길이 아니라
번잡한 마음을 비우고 싶을 때,
풍경 속으로 빠져 맨몸이 된
나무와 하나가 되고 싶을 때
걷는 길로 더 어울렸다.
얼마 걷지 않아 어디서도 보기 힘든 놀라운 광경과 맞닥뜨리게 됐다. 다름 아닌 너덜암석지대. 사람 몸뚱이 크기의 거친 암석들이 어느 날 모두가 잠든 밤에 달마산 꼭대기에서 쿵쿵쿵 걸어내려 오다 그만 해가 뜨는 바람에 멈춰버린 동화의 한 장면처럼 이곳만 암석으로 가득했다. 길을 걸어가는 위로도 아래로도 돌은 가득했고, 모가 나 있었다. 돌 채굴장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다행히 사람이 걸어가는 길에만 발을 내딛기 용이한 돌이 놓여 있었다. 알고 보니 흘러내린 수많은 암석을 제거하지 않고 2017년에 석공을 동원해 길을 만들어 냈다고 한다. 보통 산 둘레길은 산 아래쪽에 만들어지나 달마고도는 산의 중간 높이 이상에서 가파른 옆길을 둘레길로 만들어 길을 걷는 데만 집중해야 한다.
너덜암석지대는 잊을 만하면 나타났지만 길은 넘어지거나 부딪히지 않게 돌을 잘 깔아놨고, 너덜암석지대가 아니어도 길 중간 중간에서 세심한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오랫동안 많은 석공들이 중장비가 아니라 일일이 호미나 곡괭이 등을 가지고 손으로 공을 들여 길을 닦아놓은 덕분이었다. 걸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저 무거운 돌을 편편하게 맞추고, 가파른 길마다 걷기 편하게 돌을 깔아놓은 이의 손길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정원 한 가운데로 징검돌을 깔아 곱게 길을 내놓은 인상이었다. 정성이라는 단어가 저절로 떠올랐다.거기다가 암석 위에 올려 탑처럼 쌓은 소원돌을 보면 어쩌면 이 세계는 이런 작은 정성과 염원이 모여 그나마 유지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꽤 오랜 시간을 걸었고, 폭이 좁아 두 사람이 같이 걸을 수 없으니 혼자만의 시간이 많았다. 발은 뻐근해져오고 기계적으로 움직여 앞으로 나아갔지만 머릿속은 상쾌했다. 메마른 낙엽은 발아래에서 부서졌고, 나무들은 잎을 다 떨군 채 맨몸이었다.
혼자만의 시간, 맨몸의 나무들
미황사 일주문 옆길에서 시작해
큰바람재를 거쳐 노지랑골, 몰고리재를 거쳐 미황사에 닿고 보니 세 시가 넘었다. 길 중간에 만난 소사나무 군락지, 편백나무숲뿐만 아니라 탁 트인 달마산 동쪽의 땅끝 해안 경관은 지루할 만하면 그 마음을 아는 듯 등장했고, 그림 속 금강산을 닮은 듯한 기암절벽의 산세는 자주 감탄을 내뱉게 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이 길이 구도(求道)의 길임을 알게 해준 건 미황사까지의 거리를 나타내는 표지판을 의지 삼아 걷고 있는 나를 보면서였다.
미황사 부도탑을 지나 경내로 들어섰을 때는 여기저기 공사하는 모습으로 어수선했다. 조선영조때 절이중창된이후300년만에해체복원하는대형공사가 진행된다고 한다. 화려한단청이 아니라 나무색 그대로의단청을 가진 단아한 대웅보전을 바라보다 나무를 생각했다. 잎이나 꽃, 열매를 매달고 있지 않은, 몸만 남아 뿌리를 단단히 하고 있는 나무를 생각했다. 내내 걸어오면서 만난 나무들이었다. 봄에 싹이 나고 여름이면 잎이 무성해지고, 또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때는 나무의 몸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 것을 다 떨굴 때 몸은 보인다.
사실 겨울에 자연풍광이 좋은 곳으로 여행을 가면 나의 눈은 봄을 찾았다. 그냥 그래왔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다른 계절엔 그 계절을 즐기는데 이상하게 겨울엔 청매화의 연한 봉오리가 피지 않았나 찾고, 이제 피기 시작한 동백의 붉은 꽃과 노란 수술을 바라보는 등 한겨울에도 봄이 머지않았음을 애써 찾으려 한다. 겨울인데 겨울이 아니라 봄을 찾으려는 것이다. 그뿐인가. 겨울에 여행을 가면 그곳의 봄이나 여름, 가을을 상상하고 가장 반짝일 때 다시 오리라 마음먹는다.나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미황사에서 시작해 다시 미황사로 돌아오는 달마고도에서는 다른 계절을 생각하지 않았다.
이 길은 절정일 때 걷는 길이 아니라 가장 쓸쓸한 겨울에 걷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풍경을 들러리 삼아 동료들과 즐기는 길이 아니라 번잡한 마음을 비우고 싶을 때, 풍경 속으로 빠져 맨몸이 된 나
무와 하나가 되고 싶을 때 걷는 길로 더 어울렸다. 달마고도의 길처럼 좁은 길을 홀로 걷다 보면 잡념은 사라지고 코끝이 시린 쨍한 날씨는 죽비처럼 내려쳐 몸을 곧추세우게 한다. 그렇게 걷다 보면 나무가 헐벗은 게 아니라 다 비운, 가장 아름다운 몸뚱이를 보여주고 있다는 걷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때쯤이면 나도 나를 둘러싼 장식을 버리고 나와 온전히 마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니 오롯이 나를 만나고 싶다면 한 겨울 가장 추운 날 사람이 없는 곳으로 길을 나서라. 거기 기도하는 당신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