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U광장   강성남의 그노시스

팬데믹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사람들의 공간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졌다. 재택근무, 사회적 거리두기, 한정된 인원을 초과한 모임 금지 조치 등은 일상생활에서 공간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방증이다. 삶의 변화를 꾀하고자 할 땐 공간 외에도 시간과 사람을 바꿔야 한다.

 

덴마크 사람은 첫 월급으로 의자를 구입한다. 자기만의 공간이 행복을 견인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왕이나 귀족의 지배에서 벗어난 부르주아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자신만의 의자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들은 치펜데일 스타일(Chippendale style)의 의자를 갖고 싶어 했다. 공간을 통한 품격과 행복에 대한 집착 때문이다.

 

사진출처 = antiquestradegazette.com


홀(Edward T. Hall)은 인간의 공간 사용법을 관찰하고, 이를 이론화하기 위해 공간학(proxemics)이란 용어를 만들었다. 공간학은 어떤 문화의 커뮤니케이션 장에서 공간적 위치와 거리가 완수하는 상징적 역할을 연구한다. 철학에서는 공간을 시간과 함께 세계를 성립시키는 기본 형식으로 이해한다. 유물론에서는 공간의 객관적 실재를 인정하지만, 칸트 철학에서는 이를 선험적인 직관 형식으로 파악한다.


공간디자이너는 사람과 시간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과 자연을 담아내려고 애쓴다. 법의 공간, 민주 공간, 협상과 타협의 공간, 지성의 공간, 지적 교류의 공간, 삶의 공간은 헌법재판소, 광장, 국회, 캠퍼스, 도서관, 도시가 만들어내는 것들이다.

 

 

공간은 매 순간 인간의 상호작용에
개입해 의식을 변화시키고
그에 따른 문화를 형성시킨다.
한 인간의 품격은
자기 공간을 통해 유지된다.
행복해지려면 타자의 시선을
내면화하지 말아야 한다.


공간은 인간의 경험을 통해 창조된 결과이고 동시에 인간의 경험을 여과시키는 장치로도 작동한다. 즉 어떤 감각 자료를 선택적으로 받아들일지가 공간의 영향에 의해 결정된다는 의미다. 창틀 공간을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공간학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공간의 특성 중에서 사람 사이의 거리에는 네 개의 유형(친밀한 거리, 개인적 거리, 사회적 거리, 공적인 거리)이 있다. 팬데믹 상황에서는 특히 사회적 거리가 우리 관심을 끈다.

 

사회적 거리는 지배의 한계를 넘은 거리(1.2~3.6m)다. 사무적이고 공식적 성격을 띤 업무가 행해지는 거리다. 소통의 통로는 촉각이나 후각보다 시각적 요소와 다소 커진 목소리가 사용된다. 하지만 방점은 대화에도 격식을 갖춘 예의가 요구된다는 데 있다. 소음 통제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우리는 국가로부터 이런 거리 유지를 요구받고 있다.


나는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르는 기준 중에서 국민소득 지표보다 더 중요한 것이 ‘오염과 소음’이라고 생각한다. 위생과 소음에 관심을 두지 않고선 선진국이 될 수 없다. 불결함과 시끄러움은 후진국적인 특성이다.


나가요 센사이(長與專齋)는 1871년 이와쿠라(岩倉) 사절단의 일원으로 구미(歐美) 일대를 시찰할 때 ‘hygiene’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하곤 ‘위생’을 국가행정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작업을 본격화했다. 그가 이 단어를 보는 순간 전통 의학 용어인 양생(養生)과 보양(保養)을 넘어 일본의 근대화가 지향해야 할 바를 상징하는 키워드임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니까 건강, 보건, 방역 등의 새로운 개념이 파생됐다. 위생의 개념에 따라 상하수도, 주거, 식품에서의 생활개선이 가능했던 것이다. 공공위생의 규범은 일본 근대화의 요체인 동시에 근대국가 탄생의 토대가 된다. 일본사람들이 깔끔하다는 평을 받는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조용한 살인자’라고 부르는 소음도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어 선진국으로 진입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급격하게 높아지는 사회문제다. 우리는 ‘3050 클럽(인구 5천만 명 이상에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3만 달러 이상인 국가)’에 편입했다고 으쓱하지만, 소음 문제 해결엔 관심을 덜 둔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경우는 식당이나 커피숍에서 짜증을 유발할 만큼의 데시벨 때문에 힘든 경험이 많다. 유럽이나 일본을 여행해 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공공장소에서 떠드는 사람을 보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자동차 경적을 듣기도 어렵다.


영화 「킹스맨」을 보면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라는 대화가 나온다. 유럽의 숙녀와 신사는 에티켓을 성공의 매너로 학습한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유리 제품, 프랑스의 포크가 식탁에 오르면서 공간의 문화로서 식탁예절이 형성됐다. 매너 연구자들은 ‘식탁예절이 확산하면서 거리의 폭력이 크게 줄었다’라고 말한다. 일본에서는 면을 먹는 소리로 타인에게 불쾌감을 준다는 의미로 ‘누하라(noodle harassment)’란 신조어가 등장할 만큼 소음에 민감하다.


공간은 매 순간 인간의 상호작용에 개입해 의식을 변화시키고 그에 따른 문화를 형성시킨다. 한 인간의 품격은 자기 공간을 통해 유지된다. 행복해지려면 타자의 시선을 내면화하지 말아야 한다. 코로나와 그 변종은 소음과 오염 공간을 피하지 않을 것이다. 방역패스는 국민의 동선을 관찰할 뿐, 국민이 소음과 오염 공간을 만드는지를 감시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얼마 전 법원이 방역패스 지침에 제동을 걸었다. 공간이 행복을 견인한다는 문화학적 관점에서 나는 이 판결이 국민의 행복추구권과 맥이 닿아 있다고 본다.

 

방송대 교수·행정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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