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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의 온갖 학설을 합하고 절충해서

‘총원설(總原說)’을 만들자.

 일찍이 송기식이 제안한 ‘총원설’,

오늘날 우리는 학문의 총론을 갖고 있는가?

 

아프가니스탄 출신 미국 저술가 타밈 안사리가 지은 『다시 보는 5만 년의 역사』 머리말에는 체스의 유래가 적혀 있다. 인도 장기 차투랑가, 페르시아 장기 샤트란지를 거쳐 서양 장기 체스가 됐다는 설명이다.


인도 장기의 기물은 왕과 장군, 그리고 전차, 기병, 코끼리, 보병이다. 페르시아 장기의 기물은 왕과 장군 대신 왕과 재상이다. 전차도 루크라고 하는 커다란 맹조(猛鳥)로 바뀌었다. 서양 장기의 기물은 왕과 재상 대신 왕과 여왕이다. 루크라는 맹조는 로크라는 석성으로, 코끼리는 주교로 바뀌었다. 언뜻 보면 제각각의 문화이지만 서로 연계된 문화다. 이 책은 인도 장기의 동진(東進)은 말하지 않았다. 중국 장기와 한국 장기도 인도 장기처럼 차, 마, 상, 졸이 있다. 다만 인도 장기의 왕과 장군에서 장군은 사라졌고 대신 추가된 것이 사(士)다. 포는 새로운 기물이었다.


왕(王)과 사(士)는 글자 형태로 보면 왕은 도끼 두 개 지닌 사람, 사는 도끼 한 개 지닌 사람으로 본질이 같다. 왕은 사다. 석기 시대 간판 도구 도끼가 사의 권위로 다시 왕의 권위로 지속되고 있음을 본다. 사의 도끼는 처음 무(武)의 도끼였겠으나 점차 문(文)의 도끼로 바뀌었다. 도끼의 권위는 마을에서 시작해서 천하로 미친다. 사는 본질적으로 천하를 향하는 사람이다. 사는 한국에서 선비라고 새긴다.


『열하일기』의 지은이 박지원은 그 유명한 원사(原士)라는 글에서 이런 말을 했다. “선비가 글을 읽으면 혜택이 사해에 미친다.” 그는 요순도 사라고 하고 공맹도 독서인이라 할 정도로 사의식이 투철했다. 18세기 박지원이 독서와 사해로부터 선비를 보았다면, 20세기 송기식은 입설(立說)과 세계로부터 선비를 보았다. 선비란 무엇인가. 원리를 찾고 물정을 밝혀 학설을 세워 세계를 인도하는 사람이다.


선비는 학설을 수립하고 학설은 세계를 좌우한다. 바다의 창[海窓]이라는 이색적인 호를 사용한 송기식의 독특한 명제다. 송기식은 인간 세상에 법칙이 있으니 학설이 발생하고 다시 인간 세상이 변화하니 학설도 혁신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학설이 난립한다면?

 

조선말기 유학자는 명나라의 멸망을 거울삼아 학술의 분열을 근심했다. 성리학 내부에서 다양한 학설이 경쟁하고 다시 성리학 외부의 양명학과 고증학의 새로운 학설이 도전하는 상황에서 이념의 푯대가 실종되면 어찌할 것인가. 이로 인해 인간 세상을 위한 참다운 학설이 위축되고 무책임한 가설적 지식이 양산돼 인간 세상이 타락한다면 어찌할 것인가. 사실 이 문제는 성리학보다는 양명학의 첨예한 문제의식이었다. 세속화된 어지러운 학설이 야기하는 문승(文勝)의 폐단에 직면해 어떻게 주체를 다시 만들 것인가.

 

주체 만들기와 학설 만들기, 여기서 길이 갈린다. 학설 만들기는 세계의 확대를 중시한다. 송기식은 말했다. 세계라는 것이 옛날보다 백배나 커졌는데 이제는 백인의 학설을 주시해야 한다. 노사(盧梭, Rousseau)의서울대에서 공부했다. 지금까지 주로 우리나라 옛날 한적(漢籍)과 옛날 신문, 잡지를 기본 텍스트로 삼아 시대 전환기 우리나라 지성사·사상사개념사 분야를 연구했다. 전통과 근대의 분단 체제를 극복하고 우리나라 지성사를 창조적으로 다시 사유하는 것을 필생의 화두로 삼고 있다. 민약설(民約說), 달이문(達爾文, Darwin)의 진화설(進化說), 와특(瓦特, Watt)의 기설(汽說), 부란극령(富蘭克令, Franklin)의 전설(電說), 맥객사(麥喀士, Marx)의 과학설(科學說), 두옹(杜翁, Tolstoy)의 노동설(勞動說)을 보라. 이제 확대된 세계의 학설이 조선에 유입되면 문제가 해결될까. 그러나 학설이 제각각 갈라져 있기는 지금의 세계도 마찬가지. 세계의 온갖 학설을 합하고 절충해서 ‘총원설(總原說)’을 만들자. 일찍이 송기식이 제안한 ‘총원설’, 오늘날 우리는 학문의 총론을 갖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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