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여 봉직하던 교직 생활을 마치면서 삶에 한 획을 그었다며 마음속에 마침표 하나를 ‘쾅’ 찍었다. 이제 하고 싶은 일하며 자유롭게 살자 마음먹었다. 그러나 3년도 채 지나기 전에 해방감과 여유에서 오는 편안함은 시나브로 사라졌다. 아침잠 즐기고, 맑은 공기 마시면서 무슨 일을 하든지 간섭도 없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삶이 꿈꿨던 삶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일과 여가의 구분이 모호하고, 현실만 남고 이상은 사라지고, 줄어든 인간관계로 단순해진 생활이 진정한 행복인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못 한 일 중에서 하고 싶었던 일,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찾은 일이 글쓰기, 수필이었다. 마음속에 찍었던 마침표를 지웠다. 단 한 명의 독자에게라도 울림을 주는 글을 남긴다면 먼저 세상을 산 사람의 도리에도 맞는 일일 게다. 가정 형편으로 국문학과 진학을 포기했었다, 고등학교 때 저명한 수필가였던 국어 선생님의 칭찬도 수필을 쓰자는 결정에 큰 몫을 했다.
수필교실에 다니면서 수필가로 등단했다. 여러 문예지에 기고하는 등 글을 쓰다가 어느 날 벽을 만났다. 보잘것없는 재능이 금방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중국 송대(宋代) 구양수(歐陽脩)가 글 잘 짓는 비결(?訣)로 든 다문다독다상량(多聞多讀多商量) 말고도 체계적인 문학 공부가 절실했다. 마침 수필가인 선배가 자신이 다니던 방송대 국어국문학과를 추천했다. 3학년에 편입했다. 70이 넘은 나이가 걱정이었으나 하고 싶었던 공부인지라 즐거웠다. 출근 걱정도 없겠다 주로 깊은 밤에 치열하게 공부했다. 글 쓰는 일 외에 밤샐 일이 하나 더 늘었다.
정확한 문장, 풍부한 어휘, 다양한 표현, 간결한 문체, 유기적 구성이 수월해졌다. 모든 교과가 사유의 폭과 깊이를 더하는 데 도움이 됐다. 지난해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열매로 맺혔다. ‘제2회 황순원 양평문인상’, ‘제1회 우하문학상’을 받았다. 수필 60선(THE 수필)에 작품 ‘클라고’가 선정되고, SBS 라디오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2022. 1. 21. 금)에 글이 소개됐다.

이제 더 큰 꿈을 꾼다. 고등학교 때 내 작은 문재(文才)를 알아봐 주신 고 정진권 선생처럼 세상을 따뜻하게 감싸는 수필을 쓰고 싶다. 퇴직한 그해 마침표만 찍고 말았다면 이룰 수 없는 꿈들이 이뤄졌다. 마침표는 서두를 필요가 없다. 더 미룰 수 없을 때 찍어도 늦지 않다. 지금까지 제자들과 정을 나누는 교육자로서의 기쁨과 학생으로서 만난 방송대와의 인연은 소중한 선물이다. 또 다른 삶을 위해서 나는 아직 나의 마침표를 미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