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저작권보호원이 발간한 ‘2019 저작권보호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대학생의 51.6%가 불법복제를 경험했고, 대학교 신학기 필요교재 평균 7.7권 가운데 1.94권을 불법복제물로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디지털복제로 옮겨가면서 복제 규모는 더 정교해지고 커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문제는 이런 ‘불법복제’가 학문의 광활한 바다를 안내하는 나침반 구실을 하는 ‘교재’의 참된 의미를 왜곡해, 그저 일회용, 한시적 지식 길라잡이 정도로 제한한다는 데 있다. 위클리 121호 커버스토리는 ‘공부의 나침반, 교재’를 통해 대학교재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원격교육 현장에서 교재를 좀더 효율적으로, 친밀하게 사용할 수 있게 인식 전환을 꾀하고자 기획했다. 1면에서는 교재의 의미를 짚고, 2면에서는 교재를 만든 저자의 생각과 의도, 선배가 말하는 교재 활용법 등을 들었다. 3면에서는 출판문화원 교재개발팀 편집자가 꼽은 교재의 매력 포인트를 콕 짚어봤다.
최익현 선임기자 bukhak@knou.ac.kr
미디어영상학과 2학년인 최 아무개 학우는 지난해 귀한 경험을 했다. 20대 후반인 최 학우는 입학과 함께 부푼 마음에 교재를 가득 구매했다. 문제는 그 뒤다. 의욕은 앞섰지만, 직장과 공부를 병행하면서 효율적으로 공부하는 ‘감’을 잘 잡지 못한 채 우왕좌왕 1년을 보내면서 교재가 짐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던 것.
“정말 의욕만 앞섰던 것 같아요. 학점요? 겨우 턱걸이했다고 할까요? 방송강의를 시청하면서 심화 공부는 교재로 해야겠다고 몇 번을 다짐했지만, 교재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1년을 헤매고 보니, 이제 좀 감을 잡은 것 같아요. 그래도 저는 교재에 밑줄 치고, 구석에 메모도 써넣고 하면서 공부하는 게 좋더라고요.”
꿰어야 보석!
올 8월, 7학기 만에 졸업하겠다고 목표를 세운 주영옥 학우(교육 4)는 학기마다 빼놓지 않고 교재를 구입해서 공부해왔다. 주 학우 역시 직장과 공부를 병행하다 보니 늘 시간이 빠듯해 교재를 정독하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틈날 때마다 교재를 살펴봤다. 언제부턴가 전략적인 교재 활용에 생각이 미쳤다. 강의를 내 것으로 만들고, 나아가 과제물 준비까지 일석이조로 만들자는 아이디어다.
“머리에 전부 들어오지는 않아도 대략적인 내용을 훑어보고 워크북이 있는 교재는 워크북 요점정리 중심으로 공부하고 있죠. 교재를 읽고 내용의 흐름을 이해하면 과제물도 힘들지 않게 할 수 있었어요.”
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다시 농학과 공부까지 마친 대구·경북 지역 김미선 동문의 교재 활용은 조금 독특했다. 김 동문은 일단 방송강의를 먼저 들었다. 방송강의로 전 과목을 다 듣고 나서 행복한 고민을 시작했다. “저는 표지가 이쁘거나, 관심 둔 영역의 교재를 한 권 골라요. 그런데 처음부터 다 읽는 게 아니라, 보고 싶은 페이지 위주로 군데군데 살펴보거든요. 중간시험이나 과제물과 관련된 부분을 무한 반복하죠.”
주영옥 학우나 김미선 동문의 사례는 단적인 경우다. 적잖은 비용을 들여 교재를 구입, 책상 위에 떡하니 ‘모셔두고’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아니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전전긍긍하는 학우들이 많다. 앞의 최 학우는 그냥 겁먹지 말고 교재를 펼치고, 밑줄도 그어가면서, 부담없이 대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대학교재는 한번 보고 버리는
일회용 책이란 인식 벗어나야
학문의 세계와 전문 지식을
추구하는 이들의 지적 나침반
좋은 교재의 조건은?
그렇다면, 어떤 교재가 좋은 교재일까. 사실 이 질문은 답이 너무 뻔하다. 타 대학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고 방송대 관광학과에 편입한 이후, 16년을 방송대에서 공부하면서 여덟 번째 학과를 다니고 있는 장웅상 학우(농학 4)는 “좋은 교재란 너무 장황하지 않게 핵심 내용을 적은 책, 읽으면 이해하기 쉽게 쓰인 책, 예와 도표가 적절하게 제시된 책, 어려운 용어에 대한 설명이 있는 책”이라고 말한다.
『미디어 교육』의 공저자로 참여했던 강진숙 중앙대 교수(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는 좋은 교재의 조건을 개방성, 다양성, 상호작용성을 갖춘 공론장으로 이해한다. 강 교수에 따르면, 개방성은 시대 의식과 변화를 반영하고, 다양성은 서로 다른 가치들을 상호인정하고 사회적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내용, 상호작용성은 저자와 독자 간의 열린 소통의 장이 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이 세 가지 요건 이전에 가장 중요한 것을 ‘이해가능성’으로 보고 있다. “저는 좋은 교재란, 어려운 내용이어도 이해가 쉬운 명쾌한 글쓰기로 독이성을 갖춰야 한다고 봅니다.”
부산대에서 문헌정보학을 강의하고 있는 이용재 교수는 조금 구체적으로 ‘좋은 교재의 조건’을 매겼다. 각 장의 도입부에 요약과 독서 흥미를 일으키는 글을 수록하고, 문장은 명쾌하게, 알맞은 예시와 사례, 사진, 도표 등을 적절하게 수록해야 하며, 교재 저자의 인지도(학문 연찬, 교육 연륜), 교재 및 연구서 출판에 대한 출판사의 능력과 인식도 따져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런 이 교수에게 ‘어떤 교재가 좋은 교재인지’ 역으로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저의 주관적 견해를 밝히자면 교양과목, 1학년 전공기초 과목에서는 쉽고 재미있으면서 해당 분야에 눈을 뜨게 하는 책, 또는 다소 어렵지만 해당 분야의 맥락적 지식을 이해하고 흥미로운 발견이 가능한 책, 학부 2~4학년 또는 대학원 과목에서는 전공 분야의 정치한 지식을 간결하게 정리해 제시하고 토론, 심화 학습이 가능한 책이 좋은 교재라고 봅니다.”
위클리 1기 편집자문위원을 지낸 김태성 방송대 교수(농학과)는 ‘좋은 교재’가 어떤 책인지 학우들과 함께 고민해 대답을 돌려줬다. 학우들의 대답을 간추리면, 좋은 교재는 가독성, 관련분야 최신 정보 전달, 접근성 등을 충족하는 책으로 요약할 수 있다.
가독성은 외래어나 외국어 표기보다 국어 표기가 많고, 예시가 많이 들어가 쉽게 읽을 수 있는 정도를 말한다. 접근성은 학습자의 이해도를 높이고 핵심에 빠르게 접근할 수 있는 정도를 뜻한다. 특히 학우들은 교재 구성과 관련, 목차별 흐름과 주제의 연결성을 풀어주는 충실한 머리말을 수록한 교재를 선호했다. 김 교수는 교재 제작에 학우들의 의견을 좀더 반영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손때 묻은 교재에서 발견하는 열정
어떤 공부가 되든 공부는 교재를 동반할 때, 힘이 배가 되기 마련이다. 김영빈 방송대 교수(교육학과)는 교재가 일회적으로 사라지는 존재가 아니라고 말한다. 지금도 책장에 학부 때 사용하던 대학교재를 꽂아두고 있다는 그는 젊은 시절의 손때 묻은 교재에서 교수님의 목소리, 젊은 날의 열정, 친구들과의 토론 등이 묻어나와 가슴을 설레게 한다고 회고했다.
연세대에서 매체학을 강의하고 있는 유현주 교수(독문학)의 말이 울림을 남긴다. “좋은 교재는 학생들의 지적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는 교재가 아닐까요? 여기서부터 학문의 광활한 바다가 펼쳐집니다. 이 광활한 학문의 바다를 제대로 항해하려면 항해 장비가 필요하겠죠. 교재는 바로 그런 존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