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식물성의 사유로 읽어낸 역사 속의 여성

 “현실의 삶이 복잡하게 얽혀있듯 길도 그렇게 얽혀 있다. 길은 우리를 부정에서 현실로, 이론에서 실천으로, 주의에서 행동으로, 통계에서 이야기로 인도한다. 요컨대 머리에서 가슴으로 우리를 이끌어간다.” ㅡ『글로리아 스타이넘 길 위의 인생』중에서  트럭에서 보낸 유년기아버지는 가족들을 데리고 훌쩍 길을 떠났다. 네 식구는 후다닥 짐을 쌌다. 가족은 컨테이너 트럭에 옷가지와 생필품 몇 개만 싣고는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유랑에 올랐다. 어떤 때는 급히 떠나느라 주방에 설거지를 쌓아둔 채 길을 나서기도 했다. 가족이 집에 머무는 시간은 고작 1년에 서너 달이었다. 아버지 레오는 유연하고 활기찬 사람이었다. 아홉 살 난 아이에게 현금을 쥐어주고 본인이 원하는 옷을 사도록 옷가게에 혼자 들여보냈다. 아버지는 길을 달리며 즉흥적으로 식당을 정하고 영화를 보고 숙소에 들어갔다. 어린 딸은 아버지를 이렇게 회상했다. “아버지는 날 친구처럼 대하고, 내게 조언을 구하며, 내 벗이 되는 걸 즐겨,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했다. 힘든 때도 많았지만, 그 시절에도 난 아이 특유의 공정함으로 아버지가 자신을 소중히 대하듯 나도 소중히 대한다는 것을 알았다.” 글로리아 스타이넘(Gloria Marie Steinem, 1934.3.25.~)은 열 살 때까지 그렇게 살았다. 어머니 루스는 남편의 분방한 매력에 반해 결혼했으나, 불안정한 생활과 많은 빚에 쪼들려 마음이 서서히 병들어갔다. 교육받은 여성으로 기자생활을 했던 어머니는 결국 이런 남편을 견디지 못하고 남편과 이혼하고 딸 둘과 살았다. 나이 차이가 많은 언니 수잰은 당시 대학에 다니고 있었고 어린 글로리아는 어머니와 남겨졌다. 하지만 우울증이 정신병으로 발전한 어머니와 살면서 어린 글로리아는 ‘어머니의 어머니’ 노릇을 하며 7년을 지냈다. 자유로운 아버지와 보낸 유년기를 지나서 닥쳐온 이 기간이 글로리아에게는 가장 어두운 시절이었다. 가난도 힘들었지만 언제 엄마가 가출해서 행방불명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소녀에게는 무거운 십자가였다. 길 위에서 글을 쓰다힘든 생활 속에서도 어머니는 남은 재산을 처분해 둘째 딸을 공부시켰다. 명문 여자대학인 스미스대학 정치학과에 입학하면서 글로리아의 어두운 시절도 막을 내린다. 방랑을 생의 목표로 삼은 아버지와 글쓰기가 소원이었던 어머니를 빼어 닮아 그녀는 ‘길 위에서’ 사람을 만나고 ‘글을 쓰며’ 살았다. 자신의 어려운 처지에도 남을 도우며 살았던 아버지를 따라, 그녀 또한 인종과 계급의 벽을 넘고 누구든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도왔다. 세상에 대한 사회정치적인 시각을 잃지 않았던 어머니의 가르침(“민주주의는 네가 매일매일 해야 할 일일 뿐이야, 양치질하듯.”)대로 그녀는 민주주의를 실행하며 살았다. 그의 신념은 여성이라는 정치적 존재의 인식에서 자라났다.“정치계의 젊은 남성들은 떠오르는 별처럼 취급되지만 젊은 여성들은 그냥, 젊은 여성들로 취급되기 때문에 화가 났다. 모든 여성 후보들이 아이 양육으로 자신의 정치적 역량을 잠시 보류하고, 모든 남성 후보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화가 났다. 단지 여성의 몸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인간적 재능이 상실되고, 남성의 몸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평범함이 보상받는 데 화가 났다.”(『글로리아 스타이넘 길 위의 인생』 중에서) 플로린스 케네디를 비롯한 많은 흑인여성들과 짝을 이뤄 순회강연을 다녔다. 유색인이든 백인이든 여성이든 남성이든 어떤 일을 하는 누구이건 간에 그녀는 다정하게 손을 뻗어 친구가 되어 주었다. 이러한 그녀의 개방성은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오해와 시기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아름다운 페미니스트’로 명명되는 글로리아는 자신의 신념을 좇아 한발 한발 옮겼으며, 그 과정에서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라면 여성이든 남성이든 가리지 않았다. 글로리아는 애인이었던 남성들과 계속 우정을 돈독히 나눴다. 글 쓰고 강연하고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는 매력적인 그녀의 인생길에는 영원한 동반자가 되기 원하는 수많은 남성들, 유능하고 돈 많고 잘생긴 남성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정착을 거부했다. 젊은 날, 한 번의 약혼과 파혼을 했고 그 과정에서 불법낙태를 해야만 했던 그녀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누군가에게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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