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진로   기말시험 대비 특강


<논술이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

우리는 각자 나름의 판단과 기준으로 세상사를 읽어가며 산다. 동시에 이것은 대화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대화가 언제나 즐겁지만은 않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정치현안이나 사회문제 등을 소재로 대화를 시도하다가 언성이 높아지고 서로 감정의 골만 깊어지는 경험은 다들 한 번씩 있었을 것이다: 취업이라면 내 ‘소시적’에는 얼마든지 내 노력여하에 달린 일이었는데, 요새 ‘젊은 것’들은 사회구조를 탓한다. 나약한 것들 같으니라고 쯧쯧. 결혼? 출산? 여건만 되면 하고도 싶다. 하지만 전세 값에, 생활비에, 육아까지 생각하면 아찔하기만 하다. 하지만 부모들은 이런 걸 내 이기주의로 몰아가니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도 않다. 부모는 간 데 없고 ‘꼰대’만 보인다.
이쯤 되면 세상읽기는 고사하고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 대화를 복기해보자. 만일, 서로가 타당한 근거를 들어 주장했다면, 아마 대화의 끝이 감정적인 단절로 끝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감정이 개입할 여지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근거와 주장의 어울림을 우리는 논증(argument)이라고 부른다. 논술은, 이러한 논증적인 글쓰기를 말한다.
물론, 논리적으로 치밀해야 한다는 숙명 때문에 좋은 논술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몇 가지 기본적인 순서를 알면 영 어렵기만 한 것도 아니다. 글을 쓰기 전에 논점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먼저고, 명료하게 떠오른 논점을 중심으로 어떤 주장을 어떻게 펴나갈지 작전을 짜는 것이 그 다음이다. 이것을 논지 설정이라고 부른다. 마지막으로 이 논지를 튼튼하게 지탱해 줄 근거, 즉 가장 잘 어울리는 논거를 제시해야 한다.


<인생과 축생>

이 모든 논술의 과정을 책임져야 하는 마음가짐이 있다면, 그것은 비판적 사고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비판과 비난을 잘 구별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나 비판적 사고의 비판은 비난이 아닌 검토에 가깝다. 이 반대편에는 무비판적 사고가 있다. 위에서 시키니까 그냥 하는 것이다. 그렇게 4대강에 죽음이 깃들고 세월호의 진상규명이 가로막힌다. 양심과 이성이 자리해야 할 인간의 영혼에 시멘트 같은 것이 들어찬다. 무비판적 사고는 품위 있는 인생을 한 순간에 축생으로, 무생물로 만든다. 검토 없이 사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던 소크라테스의 일갈을 기억해두자.
그렇다면 이 비판과 검토의 잣대는 누구를 향해야 하는가? 먼저는 나 자신이다. 내 생각은 과연 얼마나 옳은지, 내가 기대고 있는 근거는 얼마나 확실한 것인지 진단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가 비판적 사고이다. 이 과정에서는 나와 반대 입장을 가진 사람에게도 내 생각이 설득력을 지닐 수 있는지 검토하는 것이 핵심이 된다. 이를 통해 다듬어진 내 생각은 신뢰할 만 한 것으로 변해가고, 마침내 누구와도 당당히 나눌 만한 유익한 것이 된다. 설령 내 생각이 틀렸다 해도 괜찮다. 부정당하는 것은 나의 선입견, 아집, 편파적인 사고일 뿐 내 삶의 가치가 부정당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내 삶은 더 나은 앎을 향해 나아가고 있지 않은가.
이 단계까지 왔다면, 이제 남들의 견해도 비판적 사고로 분석할 차례가 온다. 이 과정에서는 다양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내 생각의 한계가 보일 수도 있고, 남들의 생각에 담긴 한계와 장점이 동시에 보일 수도 있다. 서로 다름은 인정하되, 서로의 생각에 담긴 한계는 지워나가고 장점을 모은다면, 예상치 못했던 더 좋은 해결책이 나올 수 있다. 다른 게 창의(創意)가 아니다. 비판적 사고야말로 이러한 창의적인 결과를 도출하는 최고급의 지성 활동인 것이다.
이 비판적 사고의 과정은 고단하고 귀찮은 일이다. 지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만도 급급한데, 내 생각의 구조를 점검하는 또 하나의 내가 필요한 일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것을 당당한 자유인으로, 인간다운 인간으로 살아가는 값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비싼 값은 아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버티겠다면? 아까 말하지 않았던가, 축생 된다고.


<비판적 평가 1단계>

비판은 반드시 평가를 낳는다. 여기서도 우리는 몸가짐을 조심해야한다. 잘못을 들춰내고 약점을 집어내어 상대방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가는 일이 비판적 평가의 전부라면, 그것은 안 하느니만 못한 일이 된다. 진정한 비판적 평가는 옳고 그름을 명확히 구분하되, 그 의의는 무엇이며 한계는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한 작업이다. 즉, 어떤 글을 대하며 “나는 여기서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검토와 숙고로 대답하는 과정이 비판적 평가인 것이다. 이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저자의 관점을 다각도로 살펴보는 것이 좋다. 한번은 글쓴이의 관점과 논증에 공감하고 호응해가면서 읽어보기도 하고, 또 한번은 그 관점과 논증의 문제점을 짚어가며 반론을 구축해가면서 읽어보기도 해야 한다.
비판적 평가는 비단 남의 글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나의 글, 나의 논술 역시 언제든지 비판적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당장 우리에겐 과제물 평가와 졸업논문이 있잖은가? 그렇다면, 누구의 비판적 평가도 견뎌낼 만한 맷집 있는 논술을 쓰는 것이 관건이다. 단계별로 점검해보자. 1단계다. 첫째, 다른 무엇보다도 의사전달이 제대로 되어야 한다. 논술은 문학이 아니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이건 문학에서는 중의적인 장치가 되어 작품의 깊이를 더 하겠지만, 논증적인 글쓰기인 논술에서는 결함에 불과하다. 애매함을 분명함으로, 모호함을 명료함으로 바꿔나가지 않는다면 논술로서는 부적격이다. 이러한 실수는 주로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이 자주 저지르는데, 자기 머릿속에 있는 내용을 아무렇게나 말해도 남들이 알아서 다 알아들을 것이라는 어린 아이 같은 생각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다. 순수하다는 말은 차마 못 하겠고, 이런 이들에게는 논술 대신 5-6세용 퍼즐 같은 것을 권하고 싶다. 둘째, 위의 과정이 아무리 잘 이루어져도 주장의 내용이 적절치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애써 내린 결론이 논의의 초점에서 벗어나거나, 결론과 별 상관없는 근거들을 잔뜩 나열한다면 곤란한 것이다. 또, 논증의 방식에 따라서도 적절성을 따져봐야 하는데, 그럴 수밖에 없음, 즉 필연성을 추구하는 연역논증에서는 타당성을 따져봐야 하고, 그럼직 함, 즉 개연성을 추구하는 귀납논증에서는 결론의 강도가 적절한지를 따져봐야 한다.


<비판적 평가 2단계>

일단 여기까지 통과했다면 논술의 기본 바탕은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좀 더 구체적이고 세부적으로 파고 들어가는 2단계가 필요하다. 여기서 중요한 대표적인 4대 기준은 중요성, 충분성, 공정성, 일관성이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주제를 다루는 곳이라면 논술보다는 한량들의 술자리가 더 어울린다. 논술의 쟁점은 중요한 것이어야 한다. 이것이 중요성이다. 한편, 충분성이라 함은 논의에 필요한 내용이 빠짐없이 충분히 고려되었는지, 필요한 근거가 충분히 제시되었는지 꼼꼼히 살펴보는 일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공정성은? 말 그대로 치우침 없는 객관성을 뜻한다. 자기에게만 유리한 주장을 딱히 근거도 없이 자의적으로 펼치고 있다면 그 글은 공정성면에서 실격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자신과 반대편 입장에 서 있는 사람도 부인할 수 없는 근거를 댄다면 그 글은 공정한 글, 남들과 비로소 소통할 자격을 갖춘 글이 된다. 또, 논의 과정에서 모순이 없고 글의 전개 과정에서 논지가 한결같다면, 일관성 (논리성)이 확보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의 단계를 다 통과했다면, 그 논술은 필수적인 조건은 모두 갖춘 글이라고 볼 수 있다.


<창의적인 글>

하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 좋은 논술이 되려면 독창성, 심층성, 다각성까지 갖추어야 한다. 이런 글을 우리는 창의적인 글이라고 부른다. 우리의 논의는 다시 창의로 돌아왔다. 우리는 흔히 창의성을 두고 톡톡 튀는 기발함 같은 것을 생각하지만, 이는 창의와는 무관한 속성이다. 창의적인 글은 독창적이다. 독창성은 독창성 자체를 목표로 해서 얻어지는 결과가 아니라, 사태의 근본을 따져 물어가는 치열한 검토를 통해 얻어지는 열매이다. 사태의 미끄덩한 껍데기만을 바라보는 사람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진부하고 따분한 이야기만을 한다. 그런 사람과 말을 섞고 그런 사람의 글을 읽는 시간은 아까울 뿐이다. 반면, 근본에 대한 탐구에서 비롯되는 독창성은 아무나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 독창성은 그 깊이 때문에 필연적으로 심층성으로 이어진다. 피상적인 접근이 전부인 줄 아는 사람들, 무슨 일이든 도식화해서 PPT에 세 줄로 요약하길 원하는 사람들로서는 가닿을 수 없는 경지이다. 사태의 핵심에 도사린 본질을 기어코 밝혀내어 사태의 내부와 외부를 단번에 연결해내는 일, 이것이 심층성이다. 물론, 사안의 분석만으로는 이 독창성과 심층성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논술에서 다뤄야 하는 중요한 쟁점들은 해결책의 제시, 구체적인 방안 모색까지 함께 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단편적, 일면적 접근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창의적인 글은, 이처럼 심연까지 내려가는 깊이와 다양한 시선으로 접근하여 문제의 본질을 전면적으로 끌어안는 글이다. 여기에 톡톡 튀는 기발함은 무슨 역할을 할 수가 없다. 오로지 진지한 검토와 모색만이 있을 뿐.


<건축학 개론>

좋은 논술들을 많이 읽어보고 비판적 평가에 익숙해졌다면, 이제 논술을 직접 써 볼 차례이다. 모든 일이 다 그렇겠으나, 논술에서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철저한 준비, 즉 밑그림을 잘 그리는 일이다. 이 과정은 논점 파악, 논지 설정, 찬반 설정, 개요 작성의 단계를 밟아간다. 논점은 글의 주제라고 해도 상관없다. 즉, 논제에 담긴 핵심적인 쟁점인 것이다. 따라서 글 전체가 이 논점을 중심으로 치밀하게 전개되어야 하니, 과녁을 조준하는 마음으로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글 전체의 성패가 여기에 달려 있다. 논점을 파악하고 나면, 논지 설정을 하게 된다. 논지는 논제에 대한 글쓴이의 입장이다. 이것을 결정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는, 건전한 논술이라면 논지 설정을 위해 논제와 관련된 가능한 모든 입장과 관점을 검토해야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이 없다면 가장 타당한 입장을 고르는 작업 역시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또, 이러한 논지 설정 과정에서는 논의를 어떤 흐름으로, 어떤 순서로 진행시킬지 윤곽이 드러나기 때문에 글의 전체적인 설계도도 마련된다. 논술이 집짓기라면, 논점 파악은 부지 선정, 논지 설정은 기초 공사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저녁볕이 좋은 서향으로 지을지, 선탠까지 가능한 남향으로 지을지도 고민해야 한다. 이것이 논술에서는 찬반 설정에 해당한다. 글 전체의 방향을 결정하는 작업이다. 찬성과 반대를 설정하기 위해서는 마음속에서 수십 수백 번의 저울질이 필요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한 두어 근 정도는 그냥 눈감아주는 목욕탕 저울이 아닌, 0.1ug의 차이까지 미세하게 잡아내는 마이크로 밸런스가 필요할 수도 있다. 팽팽하게 의견이 갈릴 수 있는 첨예한 문제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찬성하는 입장에서 가능한 모든 논거와, 반대하는 입장에서 가능한 모든 논거를 나열한 후 비교해가는 꼼꼼한 과정이 불가피해진다. 찬성을 할지, 반대를 할지는 글 쓰는 이의 자유이지만, 가능하다면 본인의 선호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강력한 논거, 좋은 논거가 있는 쪽으로 마음을 정한다면 그만큼 더 공정한 논술이 가능해진다. 이제, 개요만 작성하면 글쓰기의 준비가 완료된다. 이제 글의 주제, 글의 뼈대, 글의 방향은 준비된 것이니 이를 재료 삼아 자유롭게 배치해보고 순서도 달리해가면서 최적의 윤곽과 줄거리를 잡아내는 일이 필요하다. 이것을 논술에서는 개요 작성이라고 부른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건 한 번에 되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순간순간 떠오르는 몇 가지의 아이디어들을 충실히 메모해 두었다가, 이 메모들이 쌓이면 근사한 개요를 만나게 될 것이다. 필자는 아무래도 기원전 9세기에서 5세기의 글들을 주로 다루는 사람이라 아날로그 식의 메모를 선호하지만,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를 활용하는 메모도 본인에게 맞기만 하다면 적극 권장하고 싶다. 방법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이 순간이 지나면 다시는 기억날 것 같지 않은 중요한 아이디어를 고스란히 남기겠다는데. 메모해야할 것은 일일연속극을 보는 중에도, 출석수업 중에도 불현 듯 떠오르는 법이니 메모의 습관을 잘 들이는 것이 먼저다.


<세 칸짜리 튼튼한 집>

이제, 준비가 끝났으니 집을 짓듯이 글을 써보자. 논술은 대체로 도입부 (서론), 본론, 마무리 (결론)의 세 덩어리로 구성된다. 각각의 분량배분에 정해진 원칙은 없지만, 본론의 분량은 전체의 절반을 조금 넘는 범위에서 정하고, 그리고 나머지 분량을 도입부와 마무리로 균등하게 배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먼저, 도입부는 글 전체의 방향과 논지를, 그것도 선명하게 밝혀줘야 하는 부분이다. 따라서 주의를 끌면서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 아예 주장을 여기서 미리 하고 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다음, 본론에서는 주장에 힘을 실어줄만한 구체적이고 결정적인 논거들이 제시되어야 한다. 이때, 예상되는 반론에 대한 반박까지 포함된다면 더 할 나위가 없겠다. 하지만 반박이 너무 길어지면 글 전체가 지나치게 방어적이라는 인상이 들게 되니 지나침이나 모자람이 없어야 하겠다. 본론을 쓸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주장의 내용은 최대한 선명하게 하되, 주장의 어조까지 공격적일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논술은 논술이지, 마녀재판이나 사형선고 판결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 없이 확실한 내용으로, 그러나 굳은 표정 아닌 넉넉한 미소로 말할 수 있다면 그런 사람과는 찬반의 입장 차이를 떠나서 일단 대화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까? 논술의 목적이 상대방의 파멸이 아닌, 건전한 의사소통과 설득이라면 말이다. 이제 말 그대로 마무리만 남았다. 지금껏 이루어진 논의를 종합하고, 본인의 주장을 다시 한번 강조해주며 글을 마치는 부분이 마무리이다. 이때, 본론에서 썼던 표현을 그대로 답습한다면 지루한 글이 되고, 격정을 못 이겨 본론에서 말했던 어조와 표현의 수위를 넘어가버리면 감정적인 글이 되어 버린다. 지금까지 우리는 논술의 과정을 살펴보았다.

지면관계상 실제 사례들을 일일이 들지 못한 점, 또 각종 논리적 오류의 문제들을 다루지 못한 점이 아쉽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기술적인 문제들이며 교재와 강의에서 잘 소개되어 있으니 굳이 또 들출 필요는 없을 것이다. 논술은 쉽지 않다. 그것은 논술의 근간이 되는 비판적 사고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건전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고, 찾지 못했던 해법을 찾아내고,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면, 충분히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 아닐까.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모든 일은 어렵다. 쉬운 것은 시시하고, 권태로우며 어떤 의미있는 결과도 내지 못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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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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