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은, 삶을 돌아보고
이웃과 함께 의미를 찾는
시간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모두에게
기본적인 빵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열심히 일한 당신이
자신과 사회를 성찰할 수 있는
봉사의 기회가 돼야 한다.
그것이 장미다.
제임스 오펜하임이 지은 시 「빵과 장미」는 인간의 조건에 관한 통찰이다. ‘빵’은 생존권을, ‘장미’는 인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의식주만이 아니라 존엄이라는 조건을 충족해야 실존할 수 있다.
한국의 노년은 빵과 장미를 누리고 있을까?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45% 언저리에 있고, 노인 취업률은 35% 선에 있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2018)의 보고서 「폐지수집 노인 실태에 관한 기초 연구」는 노인 100명 중 1명이 폐지를 줍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목적이 생존비였고, 75세 이상 고령자였으며, 20만 원 정도의 수입을 얻고 있었다. OECD 주요 회원국 노인 자살률(19년)은 1위로 OECD 평균 기준보다 2.7배 높게 나타났다. 주요 원인은 경제적 빈곤이었다. 한국의 노인들은 노년에 빵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필자가 유학한 스코틀랜드의 노년은 다르다. 모이라, 리즈, 낸시는 매년 크리스마스 파티를 함께한다. 이들은 각기 연금소득이 다르다. 모이라는 평생 직장생활을 했고, 리즈는 경력단절 경험이 있고, 낸시는 젊어서 댄서로 잠시 일하고 특정한 직업이 없다. 이들은 여행의 수준, 횟수, 여가생활 수준이 다르지만, 모두 노년에 생활비를 걱정하지 않는다.
이들은 모두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모이라는 은퇴 후 배운 마사지로 마사지 자원봉사, 수준급 보빈레이스(실과 보빈을 교차하면서 무늬를 만들어내는 레이스)를 하는 리즈는 이를 가르치는 자원봉사, 낸시는 주간보호센터에서 치매노인과 함께하는 프로그램 참여 자원봉사를 한다. 이들의 노년은 한국의 노년과 대비된다.
무엇이 차이나는 노년을 만들었을까? 역사적 유산 때문이다. 이 유산은 자연이나 문화이기도 하지만, 제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제도적 유산은 복지국가를 만든 영국의 「베버리지 보고서」와 스웨덴의 ‘국민의 집(folkhemmet)’과 같은 복지유산을 의미한다. 이 유산으로 인해 노년의 위험에 함께 맞설 수 있었다. 한마디로 빵을 시민권으로 얻을 수 있고, 장미를 자원봉사와 같은 사회활동으로 가질 수 있다.
필자가 박사논문을 쓰기위해 스코틀랜드 치매노인 가족 수발자를 인터뷰했을 때, 이들은 노인을 ‘선배시민(Senior Citizen)’으로 표현했다. 노년의 삶에 닥친 위험을 국가와 사회가 돌보는 것을 당연시했다. 사회적 연대의 합의가 있었기 때문에 노후에도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었다.
스코틀랜드 노년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빵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지자 시민들이 동료시민들의 삶과 이웃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점이다. 주간보호센터 자원봉사자였던 도리스는 은퇴 후 20여 년간 봉사를 했다. 어느 날 돈을 주는 것도 아닌데 도리스가 이렇게 열심히 봉사하는 이유가 뭔지 궁금해서 물어본 적이 있다. “왜 봉사를 이렇게 열심히 지속적으로 하세요?”
도리스 할머니는 야무진 입매와 웃음으로 “사회가 나를 키워줬기 때문에 내가 이제 사회에게 돌려주는 거지”라고 했다. 그 당시 이 대답에 뭔가 울컥했던 경험이 있다. 빵이 해결된 사회에서 품위 있는 삶은 시민이 자신의 권력, 권리를 찾고 사회에 참여하는 것, 즉 장미를 누리는 것이다.
필자가 만난 노인들은 자신을 돌봄의 대상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빵은 시민의 권리로 얻은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 사회의 노인은 여전히 빵의 결핍 상태에 있고, 자신을 돌봄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곳에서 장미를 누리는 것은 사치다.
어떻게 하면 노인들이 빵을 권리로 인식하고, 노년을 이웃과 더불어 사는 봉사의 기회로 삼게 할 수 있을까? 빵이 권리라는 것을 인식하고 이것을 실천하도록 시민교육을 한다면 이것이 가능할 것이다. 스코틀랜드의 제도적 유산은 시민교육에 기반하고 있다. 시민교육은 권리를 자각하고 조직해 시민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만들었고, 이것을 정책으로 관철했다.
2009년 출범한 영국의 등록 자선 단체 ‘Age UK’는 대표적인 시민단체로서 노년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실천하고 있다. Age UK의 전신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시민들이 주도해, 정부·자원봉사단체와 함께 취약한 노인의 복지를 위해 노인복지위원회를 만들기도 했다. 이를 통해 노인의 복지와 학대 예방, 연령 차별 종식 등의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영국런던의 비영리단체인 ‘Carer UK’는 돌봄수발 당사자들이 돌봄을 개인과 가족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이라는 것을 요구하고, 이를 정책화하는 데 기여했다. 이처럼 영국은 다양한 시민단체가 구성돼 노인의 생존, 돌봄 등 빵과 장미에 대한 권리를 요구했다. 여기에 노인 당사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영국의 노인들은 자신만이 아니라 미래세대를 위해서도 활발히 사회참여활동을 하고 있다. 2012년 설립된 ‘지구 살리기를 위한 조부모(Grandparents for the Safe Earth)’ 시민단체는 선배시민이자 조부모로서 후배세대를 위해 지구를 돌보는 환경운동을 하고 있다. 이 단체는 기후위기를 가속화하는 신자유주의 경제 모델을 비판하고 사회구조적 변화를 위해 운동을 하고 있다.
이 단체를 공동 설립한 필 킹스턴(79)은 “우리에게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없는 자유가 있죠, 그것을 사용하는 거예요!”라고 말한다. 생존으로부터 자유롭기에 이러한 운동이 가능하다고 증언한다. 필자가 본 영국의 노인은 다양한 운동을 통해 시민의 권리, 즉 빵을 보장받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러한 행위과정 자체가 품위 있는 노년, 즉 장미를 누리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요즘 한국에서도 노인을 선배시민으로 규정하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선배시민』(유범상·유해숙 지음, 마북, 2022)이라는 책의 부제가 ‘시민으로 당당하게 늙어가기’라고 적고 있듯이 이제 노인은 자신을 시민으로 인식해야 한다. 이 책에서 선배시민은 ‘시민권이 당연한 권리임을 자각하고, 이를 누리며, 공동체에 참여해 자신은 물론 후배시민과 함께 목소리를 내는 노인’으로 규정된다. 이 관점에서 한국의 시민단체와 사회복지기관은 자선이 아닌 권리의 관점에서 선배시민교육을 하고 실천을 하고 있다.
이처럼 한국에서도 변화는 시작됐다. 노년은, 삶을 돌아보고 이웃과 함께
의미를 찾는 시간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모두에게 기본적인 빵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열심히 일한 당신이 자신과 사회를 성찰할 수 있는 봉사의 기회가 돼야 한다. 그것이 장미다. 인생 후반전을 맞이하는 선배시민들이여, 노년을 위해 빵과 장미의 노래를 함께 부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