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인생 후‘반(反)’전

이모작 비결이요? 탐구욕 덕분이죠

이쯤 살아보니 견적이 나오더라고요.

내가 잘 하는 일, 하고 싶은 일, 그러면서도 경제활동에 도움이 되는 일이 무엇인지.

이 세 가지가 같은 방향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겠지만,

만약 다 다른 방향이라면 일단 공부를 시작하는 것도 좋은 방법 같아요.”

 

반퇴를 아는가? 반퇴는 백세시대의 은퇴를 의미하는 신조어다. 반퇴 후 인생 이모작을 생각하면 막막하기 그지없다고? 방송대 선배들의 사례를 통해 창조적 모방을 해 보면 어떨까? 은행원으로 정년퇴직을 한 권오명 동문(60·경영)은 은퇴 전부터 차근차근 준비해 공인중개사로 인생 이모작에 안착했다. 황강화 동문(68·농학)은 은퇴 전인 2013년 방송대에 입학해 학위를 받은 후, 강사로 농업 컨설팅으로 활발하게 이모작 열매를 거두고 있다. ‘인생 후반(後半), 이모작을 설계해 인생 전반부보다 더 생동적·주체적으로 반전(反轉)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본다.

 

자격증 취득으로 더 쌩쌩한 60+

 

권오명, 황강화 동문은 직장과 조직에 매여 있을 때는 일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일을 손에서 놓아 버리는 순간의 두려움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은퇴 후에는 일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자유가 아니라, 일할 수 있는 자유가 무엇인지 절실히 알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소득 유무보다, 하고 싶고 집중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인생 후반기에 다른 일을 찾기란 결코 쉽지 않다. 또 일이라는 것은 나만 만족해서는 성립되지 않는다. 객관적인 증표같은 것이 있어야 의뢰도 들어오고, 이에 따라 나의 가치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권오명 동문은 공인중개사, 황강화 동문은 유기농업기사 자격증을 취득했다고 한다. 물론 자격증 취득이 쉬운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고 결국 이뤄냈다.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삶의 뒷전으로 물러난다면, 이들의 경험과 연륜도 잃게 돼 사회적으로 큰 손실이 발생한다. 두 동문은 늙은 것은 낡은 것이 아니다. 은퇴했다고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니다. 사춘기처럼 지금도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일 수 있다는 걸 인식하고 나의 꿈을 다시 찾아 새로 만들어 나가면 된다라고 말했다. “20대 때는 돈도 경험도 없이 사회로 내몰렸다면, 60대인 지금은 그때보다는 많은 돈과 풍부한 경험·연륜이 있다지금은 사회 초년생이었던 20대와는 다르니, 자신을 믿고 겁먹지 말라고 강조했다.

 

 

 

“2모작 치밀하게 설계해 실천했어요

사람들이 식상하다고 해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은, 방송대를 졸업하지 못했다면 이렇게 이모작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지 못했을 것 같아요. 설사 그렸다고 해도 실천하는 추진력을 갖추지 못했을 거예요.”

 

권오명 동문은 방송대 83학번이다. 어머니는 3세 때 위암으로, 아버지는 중2 때 늑막암으로 돌아가셨다. 부모님 없이도 착하고 바르게 사는 성실함을 기특하게 여긴 선생님들과 친오빠의 도움으로 염광여중, 염광여상 6년간 장학생으로 학교에 다녔다. 졸업과 동시에 상업은행(현 우리은행) 명동지점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권 동문은 친구의 권유로 방송대 경영학과에 진학했다. 출석수업이 서울대 관악캠퍼스 강의실에서 열리던 시절, 그는 출석수업과 기말시험 기간만 되면, 신림동 독서실에서 밤새워 공부했다. 미쳐서 공부하던 시절의 끈기로 여성 은행원 중에서는 드물게 11년 동안 우리은행 지점장으로 일할 수 있었다. 1998IMF 금융위기 당시, 우리은행 안성연수원에서 교수로 근무했다.

 

안성연수원에서 강의하면서 강남대 대학원 부동산학 석사학위 과정에 입학했죠. 제가 매수했던 부동산이 큰 손해를 입었어요. 그래서 부동산 투자를 위해선 부동산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부동산학 박사학위까지 받게 됐죠. 그런데 이 학위를 토대로 이모작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굳힌 건 은퇴 2년 전부터 입니다. 아무리 박사라고 해도 이것은 학위지 실무 전문가 자격은 아니잖아요.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 실천했어요.”

 

2020년 우리은행 임금 피크제 시행 당시 오후 3하고 퇴근과 동시에 학원으로 달려갔다. 공인중개사 시험을 치기 위해 6과목(민법·민사특별법, 부동산학개론, 부동산공법, 부동산세법, 공인중개사법·중개실무, 부동산공시법령)을 하루에 한 과목씩 매일 학원에서 4시간 동안 공부했다. 공인중개사 시험은 대학 수능시험과 유형이 비슷해 학력고사 세대에겐 너무 어려웠다고 한다. 집에 도착해서는 새벽 3시까지 복습하고 오전 8시에 일어나 출근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높은 경쟁률을 뚫고 2020년 권 동문은 공인중개사가 됐다.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위해서는 아무래도 전문직이 낫겠다고 판단했어요. 이모작을 위해 부동산학을 공부한 것은 아니지만, 이쯤 살아보니 견적이 나오더라고요. 내가 잘 하는 일, 하고 싶은 일, 그러면서도 경제활동에 도움이 되는 일이 무엇인지. 이 세 가지가 같은 방향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겠지만, 만약 다 다른 방향이라면 일단 공부를 시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권 동문의 팁

틈새시장도 공부해야 보인다!

공인중개업계도 이미 포화 상태라, 자신만의 전문 분야가 필요하다. 공인중개사는 상가나 아파트, 오피스텔 등을 주로 중개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크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자주 매물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공장 부지나 대지, 섬 등과 같은 토지중개도 이들의 몫이다. 특히 경매컨설팅과 개발 시행 분야는 진입이 어려운 만큼 전문가가 되면 수익 효율성이 커진다.

 

수익을 높이기 위해서는 그만큼 더 전문지식이 필요하다. 전문직인 공인중개사는 최신 정보의 업데이트가 중요하다. 관련법과 부동산정책, 대출, 세금, 경공매, 건축 트렌드, 입지 분석 등의 지식을 쌓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 이렇게 공부해야 틈새시장을 보는 눈이 열리고 이 자신감으로 고객들에게 책임 있는 모습으로 상담할 수 있다. 이것이 이 분야에서 전문가로 롱런할 수 있는 방법이다

 

공부하다 자연스럽게 창직했죠

방송대 농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 농업생명과학과에 재학 중인 황강화 동문은 만으로 68세다. 경북 출신인 그는 중학교 2학년 겨울에 마늘 한 접을 훔쳐 들고 무작정 상경했다.

 

어린 나이에 노숙을 하면서 볼펜, 지갑 등을 팔며 배움의 열망을 불태우기 시작한다. 성실했던 그를 눈여겨봤던 노점 주인의 소개로 청량리 대왕학원을 찾는다. “비록 학원 청소를 하는 일이었지만, 어깨 너머로 공부를 할 수 있게 됐죠. 저는 이 기회가 너무 고마워서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덕분에 성동공업고등학교 토목과에 입학할 수 있었죠. 졸업 후 건설부 산하 도시계획 용역회사에 입사해 대한민국 곳곳을 누볐죠.”

 

일을 더 잘해 보기 위해 대학을 꿈꾸며 영어 원서를 뒤졌고, 그런 황 동문의 모습을 지켜본 회사 부장 한 분이 네가 대학에 입학하면 입학금을 내 주겠다라고 독려했다. 계명대 경영학과 야간학부 입학 후에도 그는 두드러졌다. 지금 세대야 회사명도 모르겠지만 1980년대 프로스펙스 운동화로 유명했던 국제그룹은 당시 우리나라 7대 대기업에 들 정도였다. 그해 대구·경북 지역에서 국제그룹에 입사한 사람은 황 동문이 유일했다.

 

이후 제지사업에 뛰어들어 업계에서 유명한 수입대체 골판지용 골심지인 강화골심지를 개발했다. 그는 골판지용 상자 제조공장을 설립해 운영했는데, 그동안 쌓은 신용 덕에 IMF 외환위기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그러다 58세가 되던 2012, 어려울 때마다 도와줬던 친구에게 회사를 넘기고 그동안 관심을 가지고 있던 농학을 공부해보기로 하고 방송대에 입학했다. 너무 재미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고 쓰고, 농장 일을 하며 지내다가 유기농업기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농업을 보는 눈이 확장될수록 우리나라 농업 현장의 인력 부족이 눈에 띄었다.

 

농업인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교육이 있으면 농가소득이 향상될 텐데···’라고 생각했던 부분들을 정리해 농업센터 등에 제안했다. 이것들이 기회가 돼 농림축산식품부 친환경농업전문강사로 일하게 됐다. 이를 시작으로 농업기술센터, 한국친환경농업협회, 귀농·귀촌센터, 도시농업전문가양성기관, 유기농업관리사 자격증반 등의 강사로도 활동할 수 있었다. 내일모레 일흔의 나이에도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강의를 다니고 있다.

 

황 동문은 강사 활동을 통해 알게 된 농업인들에게 농업컨설팅도 하고 있다. 이것도 의도한 일이 아니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한 게 인연이 돼 여기저기서 연락이 오면서 시작됐다. 예를 들어, 작물을 촬영해 보내오면 병충해인지 양분결핍인지 처방을 내려준다고 한다. 그는 항상 토양측정기를 휴대하고 다니면서, 현장에서 토양반응을 분석해 영농 과학화를 직접 보여주며 알려주고 있다

 

농업인들이 수고비를 준다고 하면 저는 받지 않습니다. 대신 그분들의 권유를 받아들여, 친환경 농자재를 판매하고 있어요. 고마운 마음을 담아 그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하죠. 이렇게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창직으로 인생 이모작을 하게 됐죠.”

 

황 동문 팁 

인생 이모작에서는 돈을 쫓지 마라!

경제적인 어려움이 심각한 것이 아니라면, 돈보다는 사람을 좇고, 흥미를 좇으라고 후배들에게 이야기 하고 싶다.

 

여태까지 가족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후배들이 많을 것 같다. 그런데 은퇴 후에도 본인이 재미있고 흥미 있어 하는 일을 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허무한가. 그래서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권유한다. 내가 진심으로 재미있어 하는 일이라면 열정을 쏟아 집중할 수 있다.

 

흥미는 열정을 낳고, 열정은 노력을 낳고, 노력은 성과를 낳는다. 성과가 나면 사람들의 관심이 나에게 몰린다. 그래서 새로운 일거리가 생겨난다. 이의 실례가 바로 나다. 인생 이모작을 위해 방송대를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이렇게 인생 후반부를 젊은이들 못지않은 열정으로 살아가고 있다. 노년이 이렇게 즐거울 수 있음을 느껴 너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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