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방송대인이 좋아하는 문학 작품

인생에 정답이 없듯이 시문학에도 정답이 있을 수 없다. 이 말은 시에 대한 공준이 있을 수 없다는 말로서 사람들의 사물과 세계에 대한 취향이나 기호처럼 시에 대한 독자들의 입장이나 태도 또한 개별적인 영역으로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요컨대 “모든 좋은 시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빛나고 있는 것”(유종호 평론가)이고, 시의 정의는 시인들 수만큼이나 많을 수밖에 없다.
패러다임의 역사처럼 좋은 시의 요건도 시대의 부침을 겪는다. 어느 시대이건 그 시대의 패러다임 즉 묵시적 합의에 의해 좋은 시와 그렇지 않은 시로 나눠지는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어떤 시에 대한 공준이 있어 그것이 명료하게 주어지고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이같이 시대적 유행에 민감한 시문학이라 할지라도 본격 순수 시문학과 대중 추수의 시문학과는 명확히 구별하는 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다. 문제의식 없이 대중의 기호에 영합하는 작품이 고전의 반열에 들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방송대 학우들의
설문조사는 시문학에 대한
한국 독자들의
평균적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어떤 인물이나 작품에 대한 가치판단을 풍문에 의존하는 경우(니체 식으로 말하면 ‘노예의식’)가 많다. 이런 면에서 한국의 독자들은 비겁한 면이 없지 않다. 자기 줏대나 견해가 없는 것이다. 작심하고 말하면 그것은 독자들이 시를 읽지 않고 시인을 읽는 경향이 많다는 것이다.
많이 에둘러 왔다. 설문조사를 접하면서 나는 방송대 학우들의 시문학 성향이 한국의 일반 독자들의 보편적 성향과 유사하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방송대 학우들은 대체적으로 1년에 1~2권의 시집을 읽고(44.4%) 있는데, 이는 일반 대학 독자들의 독서 비율과 비슷하다고 여겨진다.
또한, 방송대 학우들이 뽑은 가장 좋아하는 시인들의 시적 경향과 방송대 학우들이 해당 시인을 가장 좋아하는 근거의 항목들 즉, 시인의 상상력과 개성, 사회와 현실 인식, 언어와 형식의 완성 등이 서로 어울려 대응하지 않고 빗나가고 있음을 본다. 학우들이 뽑은 시인들은 일부를 제하고는 대부분 대중친화적인 시인들로서 시인의 개성 및 사회인식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이것은 좋아하는 시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학우들이 생각하는, 좋은 시의 요건과 좋아하는 시인들(시들)이 일치하지 않고 어긋나 있음을 뜻한다. 이러한 현상은 방송대 학우에만 국한되는 현상이 아니라 한국의 일반 독자들과 궤를 같이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과 결과는 왜 일어나는 것일까? 내가 보기에 그것은 주체적인 인식과 안목을 가지고 시인들의 시편들을 읽지 않고 풍문에 의존해 대상 시인이나 대상 작품에 대한 가치 평가를 시집 『섣달그믐』,『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 시간의 그물』등과 시선집『길 위의 식사』,『오래된 농담』등을 냈다. 방송대 대학원 문예창작콘텐츠학과에서 강의하고 있다. 내리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대중미디어에 자주 노출돼 있는 시인들이나 시편들에 대한 무조건적이 선호가 이러한 현상을 부추겼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아는 만큼 느낀다’라는 말이 있다. 작품에 대한 충분한 배경의식이 부족할수록 풍문과 미디어에 의존하는 성향이 강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방송대 학우들의 설문조사는 시문학에 대한 한국 독자들의 평균적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문학사적인 관점과는 거리가 멀고 문단 내에서의 평가와도 차이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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