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장애인 이동권

문화계에서도 장애인을 소재로 한 영화, 장애인 관람 접근성을 높인 공연들이 늘어가는 추세다. 사고로 후천적 장애인이 된 정재익 감독이 그의 자전적 이야기를 비장애인 서태수 감독과 함께 영상으로 풀어낸 「복지식당」이 4월 14일 개봉했다. 두 감독은 이 영화에서 폐지된 장애인등급제가 가진 한계점을 파고들며, 장애인이 자립할 수 있는 조건을 모색했다. 시나리오 기획 단계부터 영화가 스크린에 걸릴 때까지는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정재익.서태수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저는 지체 장애 5급으로 힘겹게 살고 있습니다. 저를 돌볼 사람은 70이 넘으신 주인집 아저씨와 떨어져 사는 누나가 전부입니다. 제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활동 보조 서비스가 꼭 필요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취직도 해서 돈도 벌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장애인콜택시도 꼭 필요합니다. 부디 제가 자립해서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칠흑 같은 암전 속에서 영화 「복지식당」은 주인공 ‘재기’(조민상 분)의 대사로 시작한다. 사고로 장애인이 된 재기의 막막한 심정을 영상으로 표현한 느낌이 첫 화면부터 관객에게 먹먹하게 전해진다. 재기는 혼자서는 거동조차 힘든 중증임에도 불구하고, 경증 장애등급을 받아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선배 장애인 ‘병호’(임호준 분)를 만나 장애인 대출을 받고 구직 전선에 뛰어든다. 하지만 중증장애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번번이 좌절하는데….

 

하루아침에 장애인이 되고 보니…
정신과 간호사로 일하던 정재익 감독은 교통사고로 하루아침에 5급 장애인(현 경증)이 됐다. 한창 활발하게 활동할 서른여덟 나이에 5년간 병원 신세를 졌다. 휠체어에서 일어나 홀로 10m도 걸을 수 없고, 왼쪽 팔을 움직일 수 없으며, 타인과 의사소통도 어렵다. 쉽게 오르내리던 계단이 넘을 수 없는 벽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자각했고, 장애인 커뮤니티가 이렇게나 많다는 것도 확인했으며, 장애인콜택시, 활동 지원 서비스 등 장애인을 위한 정부의 지원제도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하지만 장애인이 되기 전 그 역시 장애인을 제대로 인식하진 못했다.

 

정 감독은 사고 이후 자신이 겪었던 수많은 차별과 혐오를 영화 속 재기에게 투영했다. 영화 속 재기 역시 5등급 장애인이다. 장애인 등급제는 장애를 의학적 상태에 따라 1~6등급으로 분류하는 제도다. 현재는 폐지돼 ‘장애 정도가 심한 장애인(중증, 기존 1~3급)’과 ‘심하지 않은 장애인(경증, 기존 4~6급)’으로 구분한다.

 

글자 하나 차이지만 경증과 중증이 받는 혜택은 하늘과 땅 차이다. 장애인의 이동 편의를 위해 도입된 대중교통 수단인 장애인콜택시는 장애 1~2급만 자유로운 이용이 가능하다. 3급은 제한적으로 이용할 수 있으며, 4~6급은 추가로 의사 소견을 받아야만 이용할 수 있다(장애인등급제 폐지 전). 현재는 경증장애인 또한 의사 소견이 있으면 이용 가능하지만, 관련법에 따라 확보해야 하는 법정대수를 미달하는 지역이 많고, 이런 문제로 배차까지 대기시간이 오래 걸린다. 기존 1~3급에만 제공하던 활동 지원 서비스를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로 변경해 등록 장애인이면 누구나 수혜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지만, 예산 증축 없이 진행된 수혜자 확대는 오히려 기존 수급자의 활동 지원 서비스 감소나 수급 자격 박탈 등으로 이어져 장애인 복지 제도 전체의 허점을 강화했다는 것이 두 감독의 지적이다.

 

서태수 감독은 우선 장애 등급 심판 과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의학적 기준을 적용하는 건 맞다고 봅니다. 그런데 한 5분만 들여다보면 이 사람이 사회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금방 확인할 수 있을 텐데, 의사 소견서, 검사서 등 서류 몇 장으로 등급 결정이 끝나버리더라고요. 이건 너무 공급자 중심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더라고요. 실제 장애는 모양과 정보, 형태가 다 다른데, 틀을 정해놓고 일괄적으로 등급을 부여하고 혜택을 준다? 이해할 수 없어요.”

 

정재익 감독은 장애등급을 다시 받기 위해 오랜 기간 행정심판을 했다. 청와대 신문고 게시판에도 구구절절한 사연을 한 자 한 자 힘들게 타자를 쳐서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한번 결정된 장애등급은 결코 번복된 적이 없다며 모두 말렸다. 결과는 예상대로 실패. 배우들은 영화가 성공하면 행정소송을 해보자며 정 감독을 위로했다. 2022년 한국에서 정 감독과 재기는 과연 재기할 수 있을까?

“말도 못 하는 놈이 영화를 만든다고?”
「복지식당」이 여타 장애인 소재 영화와 조금 다른 지점은 ‘장애인=선한 약자, 비장애인=악한 강자’라는 도식적인 구도를 깼다는 점이다. “넌 형 만나서 운 좋은 줄 알아, 새끼야”라며 재기에게 접근하는 병호는 장애인 제도의 허점을 꿰고 있어 편법으로 장애인 등급을 받는 방법에 통달한 인물이다. 영화에서 ‘달리는 2급’으로 나오는 ‘봉수(송민혁 분)’도 그의 작품. 하지만 병호는 이제 막 장애인이 된 재기의 돈을 갈취하고, 급기야 재기의 사촌 누나 ‘은주(한태경 분)’에게 몹쓸 짓까지 마음먹은 악인이다. 장애인등급제의 허점을 파고드는 데도 부족한 러닝타임에, 장애인 커뮤니티에서 일어나는 어두운 이야기들은 과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영화적 상상이었을까? 정 감독은 영화의 모든 에피소드가 경험담이라고 씁쓸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제가 영화를 찍는다고 하니 절 아는 많은 장애인이 ‘말도 못 하는 놈이 영화를 만든다고? 어디서 사기를 쳐?’라며 욕을 하고 다녔어요. 영화가 하루 이틀 만에 뚝딱 나오는 것도 아닌데, 몇 년 동안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정말 괴롭더라고요. 병호는 제가 겪었던 세 사람을 조합해 만든 가상의 캐릭터입니다.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똑같아요. 일자리 경쟁이 있고, 권력이 있어야 깔고 볼 수 있으니 험한 말도 오가죠. 권력을 쥔 자가 있고, 피해를 입는 이가 존재하죠.”

 

하지만 병호는 재기와 달리 선천적 장애인이다. 날 때부터 장애인 시설에서 생활했다. 이 둘의 미묘한 차이점에 눈길이 갔다. 서 감독이 답했다.

 

“영화적으로 보면 병호는 약자이면서도 약자 사회 안에서 약자를 착취하는 인물로 묘사되는데요. 사회적인 시각에서 보면, 선천 장애인 병호가 시설을 나오는 시기는 19세예요. 그때까지는 제한된 공간에서 장애인들과만 생활한 거죠. 만약 탈시설 하는 장애인들을 우리 사회가 제대로 끌어안아 줬다면 병호가 이렇게까지 망가졌을까 하는 생각도 시나리오 구성 단계에서 의논했죠. 결국 구조나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않는다면, 재기도 언젠간 병호가 될 수 있고, 그렇게 제2, 제3의 병호는 언제라도 만들어질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초고령사회, 누구나 미래의 장애인
실제로 장애인이 되면서 겪어야만 했던 비장애인들의 딱한 또는 불편해하는 시선들을 느끼면서 정 감독은 장애인에 대한 인식 교육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영국에서는 저상버스가 서면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탈 때까지 비장애인들이 묵묵히 기다려준다고 하더라고요. 어렸을 때부터 장애인과 어울리고, 함께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래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저상버스 서면 ‘아, 장애인 때문에 내가 늦겠구나’하는 불쾌한 시선과 느낌이 먼저 들어요. 장애인은 불쌍한 사람이 아니라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살아가야 할 사람이라는 교육이 이뤄졌으면 좋겠어요.”

 

서 감독이 말을 보탰다. “정 감독님을 만날 기회가 없었다면 저의 장애 감수성은 예전 수준이었을 거예요. 요즘 그런 생각 많이 하는데요, 초고령화 시대가 오면 우리 주변에 장애인도 급속도로 늘어날 거라고요. 근처 복지관에 가보면 장애인이 엄청 많거든요. 어쩌면 우리 모두는 미래의 장애인일지도 몰라요. 어릴 때부터 장애인과 함께 생활하는 교육이 이뤄진다면, 장애인식 개선, 차별 등 이런 이야기가 더는 나오지 않을 것 같아요.”

 

영화를 장애인과 비장애인 감독이 공동 연출한 것처럼, 제작에도 장애인이 참여했다. 메이킹 과정에서 장애인 제작진 중 누군가가 “모든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장애를 갖게 돼 있어. 너희들 모두 잠재적 장애인이야”라고 말했다.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 준비하지 않을 뿐이다. 정년퇴직을 앞둔 이들에게 은퇴 교육이 필요하듯, 장애인식 교육도 필요하다. 어렸을 때부터 철저히 준비할수록 좋다는 것이 두 감독의 조언이자 제안이다. 장애인과 공생하기 위해서 또는 장애인이 될 수도 있는 자신을 위해서. 5월, 「복지식당」의 단골손님이 되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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