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현대 명저 106선 해제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 1925~2017)은 폴란드 출신의 사회학자다. 1925년 폴란드에서 유태인으로 태어났고, 폴란드 사회과학원과 바르샤바대에서 사회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바르샤바대 교수가 된 바우만은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교수직을 잃고 폴란드를 떠났다. 이후 이스라엘을 거쳐 영국에 정착한 바우만은 리즈대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는 교수로 왕성한 지적 활동을 벌였다. 바우만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저작은 『현대성과 홀로코스트』(1989)였다. 이 책에서 그는 비이성의 폭발과 문명의 파괴 현상인 유태인 집단 학살에서 관료제와 도구적 합리성이 그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했음을 밝혀 현대성의 그늘을 고발했다. 이후 그는 ‘액체 시리즈’를 잇달아 발표해 서구 교양시민들로부터 큰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지난 30년 동안 서구 시민들에게 지적 영향을 미쳐온 사회학자들 가운데 바우만에 필적한 사람은 앤서니 기든스, 울리히 벡, 리처드 세넷 정도일 것이다.내가 바우만의 사상을 주목하는 까닭은 두 가지다. 첫째는 바우만의 개인적 배경이다. 기든스가 영국 태생, 벡이 독일 태생, 세넷이 미국 태생인 반면, 바우만은 폴란드 태생이다. 비서유럽 출신이라는 바우만의 이러한 개인적 배경은 그로 하여금 서유럽 역사와 사회에 대해 좀 더 객관적인 시각을 갖게 했다.둘째는 바우만의 탐구 정신이다. 바우만은 일흔 살을 넘어 자신의 사상인 액체 현대 이론을 발표했다. 『액체 현대』(2000년에 출간된 이 저작의 우리말 번역본 제목이액체 근대이지만, 이 글에서는액체 현대로 옮기기로 한다. 영어 제목은 ‘Liquid Modernity’다)를 필두로  『액체 인생』, 『액체 공포』, 『액체 시간』, 『액체 현대 세계로부터의 편지』, 『액체 현대 세계의 문화』, 『액체 감시』, 『액체 현대 세계의 관리』, 『액체 악마』의 액체 시리즈와 『레트로토피아』 등의 저작들은 바우만을 우리 시대를 대변하는 사상가로 부각시켰다. 삶의 후반부를 서구를 대표하는 공적 지식인으로 화려하게 빛낸 바우만은 2017년 세상을 떠났다.‘액화하는 힘’과 개인화되는 시대 『액체 현대』는 액체 시리즈의 등장을 알린 첫 저작이다. 이 책에서 저자 바우만이 전달하려는 핵심적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바우만은 현재의 시대가 ‘고체(solid) 현대’에서 ‘액체(liquid) 현대’로 변화했다고 주장한다. 액체 현대란 현대의 ‘녹이는 힘’이 재분배되고 재할당되는 것을 말한다. 이 ‘액화하는 힘’은 체제를 ‘사회’로, 정치를 ‘생활 정책’으로, 사회적 공존의 ‘거시적 차원’을 ‘미시적 차원’으로 변화시킨다. 그 결과 우리 시대는 실패의 책임을 개인의 어깨 위에 부과하고 새로운 유형의 삶을 모색해야 하는, 다시 말해 모든 것들이 개인화하고 사적으로 변화하는 시대라는 게 바우만의 문제의식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반을 둔 그는 해방, 개인성, 시·공간, 일, 공동체의 다섯 영역에서 액체 현대의 현실을 다각도로 추적·분석한다.바우만은 액체 현대로의 변동을 가져온 세 가지 원인을 주목한다. 사회적 측면의 ‘소비주의’, 경제적 측면의 ‘신자유주의’, 정치적 측면의 ‘기성 정치체제의 위기’가 그것이다. 그에 따르면, 이러한 소비주의, 신자유주의, 기성 정치체제의 위기는 사회 구조와 개인 정체성을 모두 송두리째 뒤바꿔 놓았다. 구조적 차원에서의 대량 실업과 희망 없는 가난, 개인적 차원에서의 의미 없음과 외로움이 바로 그것들이다.사회학에서 현대(modernity)란 대략 17세기에 서유럽에서 시작해 전 세계적으로 확산한 제도와 문화를 지칭한다. 이러한 현대의 이해와 분석을 둘러싼 토론은 20세기 후반 이후 인문·사회과학의 가장 중요한 논쟁의 하나였다. 다수의 사회이론가들은 현대 안에서 단계 구분이 가능하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세계화와 정보사회의 진전이 가져온 새로운 단계의 제도적 특징을 기든스와 벡이 ‘제2의 현대’로 개념화했다면, 소비주의와 신자유주의가 가져온 제도적 특징을 바우만은 액체 현대로 이론화했다.액체 현대 이론의 장점은 사회를 구성하는 두 축인 구조와 정체성의 변화를 날카롭게 분석했다는 데 있다. 이 이론의 매력은 자유와 불안의 동시 증진이 액체 현대의 특징이라는 통찰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액체 현대 이론은 파편화돼 가는 삶에 맞서는 대안의 탐구에서 아쉬움을 갖게 한다. 유동하는 불안과 공포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해 바우만이 적극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다.21세기가 20여 년이 지난 현재, 우리 시대의 모습은 이중적이다. 한편으론 자유롭지만 다른 한편으론 불안하고 두려운 불확실성의 시대가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다. 이러한 시대에 어떤 삶을 추구해야 하는지의 실천적 태도를 모색하는 것은 현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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