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한국사회 변화 자극할 ‘선배시민학회’ 창립

“인간은 생존의 빵과 실존의 장미를 필요로 한다. 시민은 빵을 권리로, 장미를 자기목소리로 공동체에 참여해서 얻는다. 선배시민은 시민으로 당당하게 늙어가는 모두를 위한 존재의 선언이다.”
‘선배시민’이란 ‘시민권이 당연한 권리임을 자각하고, 이를 당당하게 누리며, 공동체에 참여하여 자신은 물론 후배시민과 함께 목소리를 내는 노인’을 의미한다. 노인들이 자기 목소리로 공동체에 참여하는 시민이 될 때, 자기 존재에 대한 정체성을 가질 수 있고, 근본적으로는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모두가 안전한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시민의 권리는 자기목소리로
공동체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확보할 수 있어

선배시민학회는 시민권의 관점에서
시민교육에 관한 교육콘텐츠를 개발하고,
선배시민을 교육하고 조직할
연구자와 현장 활동가들을 지원



참여자 모두의 축제 속에서 ‘창립’ 선언
지난 5월 21일 방송대 디지털미디어센터(DMC)에서는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둔 한국사회에 의미 있는 실천을 제안한 ‘선배시민학회’ 창립대회가 열렸다. 방송대 사회복지학과의 유범상·이현숙·김영애·강상준 교수 등 학계 연구자를 비롯해, 진천군에 거주하는 민형수 선배시민, 박노숙 한국노인종합복지관협회 회장을 비롯한 전국의 노인복지관장과 사회복지사 등 현장 활동가들이 참여했다. DMC 4층 스튜디오는 참석한 150여 명의 창립학회 회원들의 열기로 뜨거웠다.
확실히 여느 학회 창립대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식전 축하공연과 특강, 기념공연, 창립총회 순으로 진행됐지만, 하나하나가 참여자들과 일체를 이뤘다.
특강은 선배시민학회의 철학과 실천을 그대로 응축한 메시지였다. 선배시민학회 창립준비위원장인 유범상 교수는 「선배시민 철학―노년에도 누구나 보통 사람으로 살 권리가 있다」를, 신명희 중원노인종합복지관 관장은 「선배시민 실천―우리가 걸어가면 길이 됩니다」를 각각 발표했다.

 


특강이 ‘선배시민학회’의 철학과 실천을 담았다고 한다면, 이어진 ‘손 인형극 축하공연’ 「선배시민은 말이야」는 선배시민론을 누구나 알기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 구성한 공연이었다. 특히 방송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들(유범상, 이현숙, 김영애, 강상준)이 목소리 출연을 했는데, 참석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충북 진천군 백곡면에서 돌봄의 주체로 살아가고 있는 민형수 선배시민은 축사를 통해 “학회 창립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선배시민이란 말에 매료돼 지역사회를 돌보는 선배시민의 모임을 만들어, 지금까지 보람된 활동을 실천하고 있다. ‘우리가 걸어가면 길이 된다’라는 말을 외치며 7년을 걸어왔다. 아직 뚜렷한 길은 보이지 않지만, 함께 걸어가는 선배시민과 후배시민이 생겼다. 이 길을 함께 가는 선배와 후배 시민이 외롭지 않게, 우리가 더 이상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지역사회를 돌보는 돌봄의 주체가 되는 데 힘쓰겠다. 이상이 일상이 되도록 상상하게 만들어준 많은 분들에게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고성환 방송대 총장도 학회 창립을 축하했다. 고 총장은 “많은 분들이 직장에서 퇴직하면 당당함을 잃는데, 나는 선배시민이 당당함과 관련 있다고 본다. 그간 방송대는 나이 드신 분들에게도 저렴한 비용으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왔는데, 이는 우리 사회가 좀더 건강해질 수 있도록 사회에 기여한 방송대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말하면서, “선배시민학회 역시 퇴직한 분들에게 사회의 일원으로, 시민으로서 자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목적을 갖고 있다. 이런 점에서 방송대와 선배시민학회 간에는 접점이 있다. 향후 방송대 프라임칼리지에 관련 프로그램을 만들겠다”라고 밝혀 박수를 받았다.
이어 ‘선배시민 선언문’ 낭독, 선배시민학회 창립 경과보고를 거쳐 총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는 ‘선배시민학회 준비위원장’인 유범상 교수를 초대 학회장으로 선출했다. 


‘선배시민’의 철학과 실천 보여준 특강
선배시민학회의 철학과 실천 방향은 특강에서 잘 드러났다. 유범상 창립준비위원장은 10여 년 전에 ‘노인’에 관심을 가졌다고 말하면서, 구체적으로 시민교육의 일환으로 접근했다고 고백했다. “현장과 강단에서 이 선배시민을 ‘론’에서 ‘운동’으로 확산해가는 데 집중했다. 이런 노력들이 모여 지난 3월 26일 ‘선배시민학회 창립 발기인대회’를 열고, 마침내 오늘 선배시민학회 창립대회를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그의 고민은 모든 사람들이 노년에 돈 걱정하지 않고,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면서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에 맞춰졌다. 이런 고민의 결과물이 바로 ‘선배시민론’이다. 그는 노인이 시민이고, 선배이고, 인간이라는 존재론적 특성에 주목하면서, 특히 ‘시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시민의 권리가 보장되면 적어도 돈을 걱정하지 않는 생존권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교육은 ‘시민의 의무’를 말했다. 유 교수는 현장에서 많은 노인이 의무에 대해서는 잘 이해하고 있지만, 권리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는 것을 거듭 확인했다. 시민의 권리, 즉 시민권은 자유권과 사회권으로 대별되는데, 노인들은 자유권에 대해서는 인지하고 있지만, 사회권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유 교수는 헌법, 은유, 외국 사례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헌법에서 보장된 ‘행복할 권리’(헌법 10조), ‘평등권’(헌법 11조),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헌법 34조)에 주목했으며, 성경의 유명한 비유인 ‘돌아온 탕자’를 들어 자식=국민, 아버지=국가임을 환기했다. “시민권이 업적이나 기여에 따른 것이 아니라 국민이라는 지위만으로 보장받아야 하는 것”임을 강조했다.
‘선배시민’에서 주목해야 할 대목은 ‘시민’과 함께 ‘선배’라는 용어다. 집단문화의 기억 때문에 ‘선배’라는 말이 일그러져 있긴 하지만, 유 교수는 이 선배가 ‘시민으로서의 선배’임을 거듭 천명한다. 그가 말하는 시민선배의 특징은 무엇일까. 첫째, 시민의 의무와 권리를 알고, 둘째, 시민권을 실현함으로써 자신은 물로 후배들을 돌보는 존재다. 셋째, 시민권을 알려주고 함께 실천하기 위해 후배들과 소통하는 존재다. ‘선배시민 선언문’에는 이런 내용을 고스란히 담았다.
유 교수가 내놓은 ‘선배시민’은 노인에 관한 인식의 전환을 요청하는 실천적 개념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에서 노인은 그동안 돌봄의 대상 혹은 활력적이고 성공적인 인생 후반을 살아가는 주체적 인간으로 소환했다. 그러나 그는 누스바움의 ‘역량접근법’에 착안해 노인을 ‘역량을 상실한 인간’으로 바라보는 ‘편견’을 넘어서고자 했다. 누스바움이 말하는 역량접근법은 “사람들이 가치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활동을 선택할 실제적인 기회”를 중시하며, 사회는 “모든 구성원들에게 자신의 ‘역량목록’에 포함된 구체적인 기회들을 최저수준 이상으로 보장”해야 한다. 이제 노인들은 수동적인 돌봄의 대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편견과 혐오 그리고 차별에 주체적으로 대응하는 존재로 거듭난다. 
유 교수는 “시민은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시민됨은 인정투쟁의 역사에 기반하고 있다. 따라서 시민의 권리는 자기목소리로 공동체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선배시민학회는 시민권의 관점에서 시민교육에 관한 교육콘텐츠를 개발하고, 선배시민을 교육하고 조직할 연구자와 현장 활동가들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가 “시민 누구라도 인간다운 삶을 위한 빵과 장미를 얻기 위한 광장을 만들고자 한다. 차이가 편안히 드러나는 광장에서 시민들과 함께 빵과 장미의 자유의 노래를 합창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특강을 마치자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다.

신명희 중원노인복지관 관장은 현장 활동가답게 현장에서의 변화와 ‘선배시민 실천’의 다양한 사례를 소개했다. 노년의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존재에서 ‘선배시민’으로 자신을 변화시킨 사례들이어서 더욱 눈길을 끌었다.
노인복지관의 선배시민대학을 통해 성남 중원지역 노인들은 돌봄의 대상에서 돌봄의 주체로 거듭났으며, 후배시민, 동료, 공동체를 품는 존재의 전환을 실천했다. 수험생을 응원하는 캠페인을 전개하는 한편, 개인 건강관리를 공동체의 건강 돌봄으로 확장하기도 했다.
이렇게 선배시민으로 깨어나자 사회복지사들도 ‘새로운 역할’을 고민해야 했다. 변화하는 어르신과 함께 할 수 있는 사회복지사의 역할을 모색했으며, 노인복지관 역시 새로운 역할을 맡아야 했다. 이들의 지향점은 ‘공동체와 소통하는 존재’로 요약할 수 있다. 생존을 고민하던 이들이 ‘선배시민’임을 자각하면서, 실존의 문제를 인식하고, 마을과 국가의 법과 제도를 바꿔가는 존재로 확장된 것이다.

더 나은 공동체를 위한 광장
유범상 교수의 말처럼 선배시민론은 현장과 만날 때 그 존재의 의미가 살아난다. 이상(理想)이 일상이 되도록 상상하고, 이를 실천한다는 선배시민학회. 이날 선배시민학회 창립대회에 참여한 이들은 한 목소리로 “시민들의 삶을 해석하고, 더 나은 공동체에 대해 상상하고 실천하게 하는 광장을 만드는 것을 학회의 목적으로 삼았다”라고 말했다. 출발부터가 범상치 않은 선배시민학회가 한국사회에 어떤 길과 대안을 제시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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