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중2병 처방전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가족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렇다고 소통의 질이 높아지지는 않은 것 같다. 같이 있는 시간과 대화의 양이 많다고 소통이 잘 되는 건 아님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진정한 소통은 서로의 마음을 상대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공감해줄 때 이뤄진다. 특히 사춘기 청소년들은 자기 의견을 친절하게 전달하는 데 서툴다. 이런 전달 방식은 직장 일로 지쳐 공감의 여유가 부족한 부모에게 갈등의 씨앗이 된다.

 

민주적인 접근과 문제 해결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자기만의 입장밖에 볼 수 없는 각자의 상황에서 더 원인을 찾고 싶다. 부모와 자녀의 진솔한 대화는 점점 줄어들거나 급기야 단절되기까지 한다. 가족은 그런 상황에서도 관계를 끊을 수 없으며, 끊어서도 안 된다. 가족은 누구에게나 처음이며 가장 소중한 안식처이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가능한 모든 방법을 찾아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 한 가지 방법으로 ‘민주적인 가족회의’를 추천하고 싶다.

 

가족회의는 대학원 시절 ‘아들러 스터디’의 지도교수님께 추천받았다. 막상 아내와 자녀들에게 이야기하니, ‘가족끼리 무슨 회의’냐며 시큰둥해했다. 여러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아내의 적극적인 동참을 끌어내기까지 4년이 걸렸다. 그 후로 3년이 흘러 지금 같은 모습의 가족회의를 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책도 출간하며 더 큰 에너지를 얻었고, 이는 매주 치열하게 이어지는 가족회의의 동력이 됐다.

 

어떻게 달라지게 했을까?
가족끼리 회의를 하는 것은 누구나 어디서나 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적인 방식과 바탕에서 이뤄지고 있는지 여부는 가족회의 결과에 큰 차이를 만든다. 예를 들어 보자. 식구가 모여 어떤 잘못을 한 자녀에게 이야기를 하고, 그 해결을 위해 의논했다면 그것은 훈계일까 아니면 가족회의일까? 넓은 의미에서는 가족이 모여 이야기하는 모든 것이 회의일 수 있지만, 그 규칙과 방식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면 일방적인 훈육에 불과할 수 있다. 일시적으로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생이 돼가면서 점점 의미 없는 외침이 될지도 모른다. 수직적인 관계에서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대화이기 때문이다.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수평적인 관계 속에서 이뤄지는 정기적인 가족회의를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수직관계에서 벗어나 가족이 동등한 발언권을 가지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가족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이는 가족회의가 단순히 훈육의 방편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서로 보여주면서 믿음과 신뢰를 생기게 하고, 좀 더 적극적으로 자신 그리고 가족의 문제를 진지하게 공유하는 분위기를 제공한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화의 창구다. 평소 가족회의에서 연습된 대화 방식은 갑자기 심각한 내용과 문제가 생겼을 때 더욱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따라서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민주적인 가족회의는 지금도 충분히 훌륭하지만, 미래의 어느 때 더욱 위대한 회의가 될 수 있다.

 

여기서 잠깐 필자의 집 분위기를 설명하면, 지금도 첫째와 둘째는 서로 잡아먹지만 않을 뿐 자주 으르렁댄다. 특히 동생이 누나를 자주 자극했다. 시달리던 누나가 가족회의에서 동생에게 괴롭히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고, 동생은 이를 지켰다. 누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가족회의로 남아 있다. 동생 역시 가족 안에서는 가장 어리지만, 가족회의에서 이야기할 때는 모두가 진지하게 들어주고 무시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동생은 가족회의에서 약속한 것을 먼저 지키려고 노력한다. 아마 평소에 알게 모르게 무시당하는 경우가 많은 동생이지만, 가족회의에서는 모든 가족이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걸 느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해 보세요”

가족회의에 아이들이(혹은 가족들이) 스스로 올까? 오고 싶을까? 한두 번 호기심에 올 수는 있지만, 아이들은 회의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바로 맛있는 간식! 음식은 긴장을 낮춰주고, 감정을 훨씬 너그럽게 만든다. 맛있는 음식은 더욱 그렇다. 심지어 아이들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집에서는 간식 메뉴를 돌아가며 정한다. 직접 정한 간식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가족회의도 함께 기다린다. 물론 간식이 주가 되면 부모는 약간 속상할 수도 있다. 그래도 가족회의에 간식이 없다면 아이들은 눈곱만큼도 양보하지 않는 모습을 보일지도 모른다.

 

또 하나. 누구든 가족회의에 안건을 올릴 수 있다. 미리 카톡에 올려놓기도 하고, 회의 때 즉석으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자녀의 생활 관련 내용이나 자녀 간 갈등에서 많은 안건이 올라오지만 의외로 부모와 관련된 안건이 가족회의를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아이들도 의욕에 불타게 된다. 그중 하나는 ‘아빠 살빼기’였다. 이 안건은 둘째의 안건이었다. 이 안건은 지금도 진행 중이며, 가족회의 시간마다 필자는 몸무게를 잰다. 첫째와 둘째는 몸무게를 확인하고 대부분 놀란다. 의외로 살을 뺐다고, 때로는 체중이 늘었다고 놀란다. 가족회의의 결과로 아빠의 간식이 제한됐는데, 지금은 불쌍한지 정말 맛있는 것은 조금은 먹게 해주는 너그러움도 보이곤 한다. 아빠의 살빼기는 개인의 문제일까, 가족의 문제일까? 당연히 아빠의 문제이지만 아빠가 비만으로 건강이 나빠진다면? 가족회의는 개인의 문제를 가족의 문제로 가져와서 함께 의논하고 참여해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다른 안건으로는 ‘누나가 소리 지르고 화내요’가 있다. 첫째는 이 시기 가족을 볼 때마다 신경질과 화를 냈고, 그 정도가 점점 심해져서 안건으로 올라가게 된 것이었다. 가족회의를 하면서도 첫째는 불만이 가득했지만, 이야기를 들으며 조금씩 노력할 점들을 찾아갔다. 문제는 누나를 자극한 건 동생이었지만, 동생 자신은 누나의 횡포에 억울했던지 감정이 복받쳐 눈물바다가 됐다. 자연스레 둘 사이의 쌓인 이야기를 듣는 자리가 됐고, 서로 조금씩 양보하는 분위기에서 회의 결과가 정해졌다. 일주일 뒤 첫째의 짜증 소리는 훨씬 줄었다.

 

우리 가족이 받은 큰 선물
가족회의가 완전한 문제 해결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우리 가족은 가족회의에서 어떤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회의를 하는 건 아니다. 다만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자기가 할 수 있는 노력을 약속하고 실천하는 용기와 격려를 믿기에 계속해서 가족회의에 참여하고 있다. 물론 맛있는 간식과 함께 하는 것이 더 중요하긴 하지만 말이다.

 

점점 학원과 숙제 시간으로 가족회의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 그렇지만 행복한 가족생활을 함께 만들어가기 위해 가족과 한 주 동안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은 앞으로도 계속해 나가고 싶다. 이것은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될 수 없다. 우리 가족 모두의 양보와 노력의 결실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부모님들이 자녀들과 함께 정기적인 민주적인 가족회의를 해봤으면 좋겠다. 아이의 속마음은 무엇이었는지, 부모에게 어떤 불만이 있는지부터 듣는 가족회의는 어쩌면 손쉬운 ‘중2병 처방전’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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