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현대 명저 106선 해제

과학은 자연에 존재하는 원리를 발견하는 것이다. 하지만 과학적 발견은 지식의 확장을 넘어 때로는 사회적 또는 윤리적 이슈를 야기한다. 특히 생명과학은 다른 과학과 다르게 인간 존재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다른 과학에 비해 사회적 이슈를 종종 만들어 낸다. 그 첫 번째는 ‘다윈의 진화론’일 것이다. 진화론을 둘러싼 논쟁의 핵심은 신의 영역으로만 여겨졌던 인간 존재의 기원 영역에서 신의 개입이 없이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진화론은 신의 영역을 침범했다는 점에서 과거 ‘신’ 중심의 사회에 크나큰 도전이었다. 진화론은 인간의 기원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었기에 철학적·종교적 이슈를 만들어 내긴 했지만, 인간의 기원이 신이라고 믿든 진화의 산물이라고 믿든 현재 우리의 삶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생명의 설계도인 DNA를 수정할 수 있는 ‘크리스퍼’의 발견은 생명현상 이해라는 과학적 지식의 진보와 더불어, 직접적으로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어쩌면 진화론보다 더 다양한 사회적·윤리적 이슈를 야기하는지도 모른다. 번역자 김보은은 캘리포니아대 분자세포생물학 교수인 제니퍼 다우드나와 같은 대학 분자생물물리학 교수인 새뮤얼 스턴버그가 함께 쓴 CRISPR, A CRACK IN CREATION 의 제목을 ‘크리스퍼가 온다’라고 선택했는데, 우리말 제목은 앞으로 크리스퍼가 인류에게 끼칠 영향에 대한 기대와 우려를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새로운 과학적 발견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과학적 발견이 예상치 못한 엄청난 응용성을 가져다 줄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가져오는 다양한 사회적·윤리적 문제들에 대해 과학자로서 어떻게 대처해 나가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과학적 발견과 이용 및 그에 대한 책임을 잘 짚어내고 있다. 인류에게 끼칠 영향, 기대와 우려생명의 모든 정보는 A, G, T, C의 염기가 이어진 DNA에 존재한다는 것이 밝혀졌고, 인간 게놈 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를 통해 2000년대 초반에 인간 DNA의 염기 서열도 모두 밝혀졌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완성은 생명의 설계도를 얻었다는 것이고, 그 설계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수많은 연구를 통해 그 비밀이 차츰 풀리고 있다. DNA의 염기서열이 생명 현상을 지배한다는 명확한 사실은, 그 염기서열을 수정한다면 인간의 생명 현상을 조절하고 유전자 변이에서 오는 유전병과 같은 질병을 치유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크리스퍼(CRISPR, clustered regularly interspaced short palindromic repeats)는 박테리아에 존재 하는 DNA의 특정서열을 의미하는 것으로, 박테리아에 침입하는 파지와 같은 박테리아 바이러스의 방어체계를 뜻한다. 즉, 박테리아 바이러스가 박테리아에 침입을 하게 되면, 박테리아는 바이러스가 가지고 있는 유전 정보의 일부를 박테리아 자신의 유전정보인 DNA에 삽입시킨 후, 추후 바이러스가 침입하게 되면 CRISPR에 삽입된 바이러스의 유전정보를 이용해 바이러스의 DNA을 절단해 제거하는 시스템이다. 마치 코로나19 백신을 맞으면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 시 이 바이러스들과 싸울 수 있는 면역시스템과 유사하다. 크리스퍼는 이러한 시스템을 이용해서 유전자 정보를 인간의 편의에 따라 편집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한다.이 책은 1부(도구)와 2부(과업)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1부 ‘도구’에서는 크리스퍼를 발견하게 되는 과정에 대해서, 2부 ‘과업’에서는 크리스퍼의 발견이 인류에게 미칠 다양한 영향 및 이에 대응하는 과학자로서의 노력과 고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백신, 항암제 등과 같은 생명과학의 결실을 사용하기에 앞서서는 그 원리를 이해하는 수많은 기초과학의 지식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기초과학을 수행하는 데 있어 그 발견이 어떻게 사용될지를 예측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초과학은 지식의 보고를 쌓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공학과 같은 특정 목적을 가지는 개발과는 구별된다. 이러한 기초과학의 특성을 고려할 때, 연구 주제 선택의 자율성과 발견의 우연성이야말로 기초과학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다. 크리스퍼의 발견도 이와 마찬가지로 이 발견이 어떠한 혜택과 이슈를 야기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태에서 우연히 시작됐다. 다우드나 교수는 동료인 질리언 교수와의 만남을 통해 크리스퍼 분야를 처음으로 접하게 됐다. 다우드나 교수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크리스퍼의 기능과 작용기작에 대해 탐색했다. 다우드나 교수는 이러한 탐색과정 가운데 몇 가지 중요한 점을 지적했다. 기초연구는 자연의 원리를 발견하고 이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 이러한 발견이 인간에게 어떤 혜택을 줄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한 가지는, 과학적 발견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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