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식물성의 사유로 읽어낸 역사 속의 여성

“나는 인간으로서 살고 있습니다. 나는 ‘연약한 성을 지닌’ 여성으로 간주되는 것을 거부하는 동시에 그런 전제 위에서 내게 제공되는 모든 은혜를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중략) 개인의 가치와 평등한 권리 위에 선 결속 그것만을, 오로지 그것만을 긍정합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 상호간에 정당한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나와 타인의 모든 교섭을 그 기초 위에서 구할 것임을 나는 다시금 소리 높여 선언합니다.”ㅡ「여사형수의 편지: 가네코 후미코가 모씨에게 보낸 옥중 통신」(원제는「나의 선언」) 중에서 후미코는 1923년 9월 3일 박열과 함께 대역(大逆) 사건으로 기소됐다. 그녀는 법정에서 천황제는 지상의 평등한 인간생활을 유린하는 권력이라고 천명하고 전향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1926년 3월 박열과 함께 사형 판결을 받았다가 무기 징역으로 감형됐지만, 옥중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호적 없는 인생의 설움1926년 7월 27일, 일본 우쓰노미야(宇都宮)형무소 도치기출장소의 차가운 감방에서 23세 여성의 시신이 발견됐다. 의문스러운 사망이었다. 그녀의 유골은 생전에 그녀의 뜻에 따라 남편 박열(朴烈, 1902~1974. 본명은 박준식)의 형 박정식에 의해 시가인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산중턱에 묻혔다. 그녀는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 1903~1926), 한국 이름은 박문자(朴文子)다. 가나가와현(神奈川縣) 요코하마시(浜市)에서 아버지 사에키 분이치와 어머니 가네코 기쿠노 사이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지방 명문가의 아들이었고, 어머니는 평범한 농가의 딸이었다. 후미코는 아버지의 살가운 사랑을 받고 자랐지만, 네 살 때 아버지가 처제(후미코의 이모)인 다카노와 함께 살게 되면서 불행해진다. 게다가 아버지가 후미코의 어머니 기쿠노와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무적자(無籍者) 신세로 전락한다. 호적이 없는 인생은 그림자 같은 존재로 살아간다는 뜻이었다. 어머니 기쿠노가 여러 남자의 그늘을 전전한 것도 후미코에게는 힘든 일이었지만, 그보다 더 슬펐던 것은 무적자이기 때문에 학교 교육을 받을 수 없는 일이었다. 1912년 후미코가 열 살 되던 해에 조선에 있는 할머니가 그녀를 찾아온다. 후미코는 고모의 양녀가 되기 위해 조선으로 가게 되는데, 그전에 외조부 가네코 도미타로의 호적에 올려졌다. 할머니는 손녀를 잘 양육하겠노라고 약속하고 충청북도 청주군 부용면 부강리로 데려갔다. 후미코는 조선에 와서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그녀의 고등소학교 성적은 뛰어났다. 하지만 후미코는 할머니가 약속한 대로 양녀, 혹은 손녀로서의 대우는 받지 못했다. 그녀는 할머니의 기준에 못 미치는 ‘무적자’ 아이로 낙인 됐고, 결국 열두 살 때부터는 하녀 신세로 살아야 했다. 어린 그녀의 삶은 처절했다. 학교가 끝나면 지체 없이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 후미코의 일상은 철두철미 감시의 대상이었다. 하녀가 하는 일을 도맡아 했고 하녀 취급을 받았다. 어쩌다가 실수를 하면 심한 매질과 발길질이 돌아왔다. 아무 것도 먹이지 않고 가둬 버리거나 추운 겨울날 집밖으로 내쫓기도 했다. 어린 후미코는 부강역과 가까운 강변으로 달려가 투신자살을 하려 했는데, 이때 그녀를 구원한 것은 아무런 차별 없는 자연이었다. 강 맞은편의 아름다운 부용봉은 그녀의 지친 영혼을 감싸주었다. 일본에서 어머니와 살 때도 후미코는 자연 속에서 위로를 받았던 적이 있다. 여덟 살 때 나마나시현 고소테라는 산간 작은 마을에서 산 적이 있었는데, 그녀는 훗날 자서전에서 이 평화롭던 마을을 ‘그리운 나라’로 회상했다.  평생의 동지인 박열과의 만남후미코의 일생은 차별과 학대로 물들어 있다. 그녀를 끝까지 괴롭힌 ‘차별’은 여성이라는 것과 무적자라는 신분이었다. 그녀는 어린 시절 학교와 세상에서 당한 무적자 차별의 상처를 지울 수 없었다. 성인이 된 그녀가 찾아낸 차별의 원인은 권력이었다. 불평등은 권력이 만들어 낸 인위적인 법률과 도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따라서 “자연적 존재라는 기초 위에 서서 이 지상에 살고 있는 모든 인간들의 행동은 인간이라는 단 한 가지만으로도 하나같이 평등한 인간적 행동으로 승인받아야 마땅하다”라고 그녀는 생각했다.(가네코 후미코의 「재판기록」 중에서) 1919년 4월, 열여섯 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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