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대는 직장인들의 ‘문센’
취약계층에 고등교육 제공하는
‘희망 사다리’에서
이직자·은퇴 후 재취업자들 위한
‘징검다리’로 역할 확장되고 있어
방송대 입학을 고민하고 있는 30대 직장인 윤아무개씨는 방송대를 ‘직장인들의 문화센터’라고 표현했다. 유아를 키우는 부모들은 낮 시간을 활용해 백화점이나 대형마트가 제공하는 문화센터를 애용하는데, 그 안에는 아이의 오감과 잠재 역량을 일깨우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돌아간다. 이를 이른바 ‘문센’으로 줄여 부르기도 한다. 소정의 금액을 내고 아이와 마음에 드는 프로그램을 찾아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런 맥락에서 방송대가 직장인들에게 문화센터와 같은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일반 대학보다 저렴한 학비로 원하는 학과에 입학할 수 있고, 지적 욕구를 채우는 동시에 전혀 몰랐던 커리어 능력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많은 방송대 학우들이 한 학과를 졸업한 후 다른 학과에 다시 입학해 ‘도장깨기’처럼 수업을 듣고 있다.
일반대학에서 사학과를 졸업한 30대의 이아무개씨는 이번 2학기에 방송대 통계·데이터과학과 3학년으로 편입했다. 그의 현재 직업은 출판사 편집자다. 그가 해당 학과에 입학한 이유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데이터 과학자가 편집자의 일보다 재미있고, 전도유망하며 더 많은 급여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그는 인생 전반부를 ‘문돌이(문과생을 이르는 별칭)’로 살아와 수학 과목이 취약하다며 기본적인 3학년 2학기 교과목 외에도 수학과 프로그래밍 과목을 대거 추가했다. 이미 개발자거나 데이터과학자인 학우들을 따라잡기 어려울 테니, 입학 전에 이 과목들을 예습하겠다는 당찬 포부도 밝혔다. 이 씨는 “직장과 병행하느라 시간이 없어서 그렇지, 여유가 된다면 방송대의 유명한 교양과목들도 들어보고 싶다”라며 “학점이 더 넉넉했다면 교양과목들도 추가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젊은 직장인들 늘고 있는 방송대
젊은 직장인들이 방송대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현상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지난 1학기 방송대 재학생 현황을 보면 20대 이하 비율은 21.19%, 30대 비율은 21.88%를 보였다. 반면 1학기 신·편입생 가운데 20대 이하와 30대는 각각 23.6%로, 같은 연령대 재학생의 비율보다 더 높게 나타났다. 이 결과, 재학생 중 40대는 25.87%, 50대는 21.25%인 반면, 신·편입생 중 40대와 50대는 각각 22.9%, 20.1%를 차지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올해 1학기 신·편입생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방송대 입학 동기를 묻는 질문에 ‘취업·승진·이직·창업’을 꼽은 대답이 가장 많았다(41%). 물론 이 항목은 2020학년도 1학기 같은 조사에서도 1위(35.2%)를 기록했지만, 그보다 5.8%p 높아진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이어 ‘지적 호기심 충족’(26.3%), ‘못다 한 학업의 꿈 성취’(14.0%), ‘사회적 인정·자신감’(7.1%) 순으로 입학 동기를 꼽았다. 이는 많은 국민이 고등교육의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교육 ‘사다리’ 역할을 하고자 설립된 방송대가 점점 직장인들의 이직 혹은 은퇴자들의 재취업 ‘징검다리’로 활용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평균 수명이 연장됨에 따라 방송대를 전 생애에 걸쳐 단 한 번의 학위가 아닌 제2, 제3의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교육 기관으로 새롭게 인식하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경향은 국내 원격대학 학습자의 세대별 특성을 분석한 또 다른 조사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2018년 〈평생학습사회〉 제14권 4호에 발표된 논문 「원격대학 학습자의 세대별 사회문화적 특성 및 학업에 대한 인식 차이 분석」(정연희·한송이)에 따르면, 청년(39세 이하), 중년(40~50세), 그리고 중년 이후(55세 이상) 연령대의 대학 입학 동기에는 차이가 분명하게 나타났다. 전반적으로 나이가 적을수록 ‘취직, 승진’과 ‘상급 학교 진학’을, 나이가 많을수록 ‘사회관계 확장’과 ‘보람·가치 있는 시간’을 주된 대학 입학 동기로 꼽았다.
방송대가 원격학습 방식을 취하는 것은 직장에 쫓기고 가정을 돌보느라 공부할 시간이 적은 성인 학습자들의 페인포인트(pain point, 고충점)에 부합한 측면도 있다. 여러 조사에서 확인됐듯, 성인 학습자들은 대학 학위과정을 선택할 때 편의성과 유연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Tina Stavredes, Effective Online Teaching: Foundations and Strategies for Student Success, Jossey-Bass, 2011. 최은수 외 공저, 『성인학습: 이론과 실천』, 아카데미프린스, 2016). 아울러 대학 강좌 등록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는 ‘편의성, 유연한 진도, 학업 일정, 필수 과목, 학교 평판, 재정 보조 이용 가능성, 학점 인정의 가능성, 장래의 고용기회, 캠퍼스로부터의 거리와 고용주의 추천’ 등이 제시됐다.
다양한 니즈 반영한 정책들로 변화 모색
한국의 일반 대학들은 2000년대 초반부터 자신들이 처한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바탕으로 향후 대학이 나아가야 할 미래 방향과 구체적 방안을 담기 위해 대학발전계획을 수립해왔다. 이때 방송대는 원격교육 방식을 취하고 있어 고령화, 디지털 기기의 발전 등 환경변화에도 적합한 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원격교육은 더이상 방송대만의 것이 아니다. 사이버 대학과의 차별화가 절실해졌다.
방송대도 ‘학생 고객’을 맞이하기 위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보통 5년을 주기로 대학의 환경변화에 따른 발전전략 및 계획 수립과 관련된 연구를 수행해왔는데, ‘차세대 연구’(2005년), ‘비전 연구’(2012년) 등 선행 연구 등에 이어 2018~2021년엔 중장기발전계획에 해당하는 ‘대학발전과제’를 수립했다.
실제로 방송대는 입학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2013년도부터는 ‘학기별 입학제’를 도입했다. 1년에 2번 1, 2학기에 걸쳐 신입생을 받는 제도다. 이 제도로 줄어가던 신입생 수를 끌어 올렸을 뿐 아니라, 직장인들의 입학 편의성을 높이기도 했다. 바쁜 직장 생활 중 방송대 입시 정보를 놓치지 않고 받아볼 수 있는 ‘예비지원자제도’도 운영 중이다. 예비지원자 특별 혜택으로는 1강 무료수강, OUN 교양프로그램 시청, 입시자료 및 소식지가 홈페이지 상에서 제공되고 있다. 이밖에도 모집기간과 지원자격 등을 담은 입시정보를 이메일을 통해 정기적으로 보내고 있다.
요즘 방송대가 주안점을 두는 것은 ‘학사제도의 유연화’다. 교육부가 추진 중인 대학 학사제도의 유연화 과제와 궤를 같이 한다. 출석 수업 및 평가체계를 유연화함으로써 학습자가 방송대의 어떤 강의든 자유롭게 수강해 학점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하자는 방향이다. 별도의 단기 학위과정 신설, 특화된 인증과정 도입 등이 검토되고 있다.
김민선 기자 minsunkim@kno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