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졸업, 영광의 얼굴

지난 24일 2022년 후기 학위수여식에서 석사과정 졸업생 451명, 학사과정 졸업생 1만1천126명이 이 ‘꿈과 희망, 헌신의 증표’를 가슴에 안았다. 위클리 140호 커버스토리는 바로 이 지점에서 ‘졸업’의 의미를 되묻고자 한다. 40대 이상의 학우들이 많은 방송대에서 만학의 졸업은 도대체 어떤 의미냐는 질문이다. 1면에서는 충북 음성군 감곡에서 과수원을 하는 박연숙·이건호 부부가 맞은 졸업의 의미를 탐색했고, 2면에서는 방송대 공부를 통해 자기 정체성을 깨달아 공부에 도전한 50대 중반 주영옥 학우의 졸업 의미를 들었다. 3면에서는 후기 학위수여식 현장 스케치와 함께 이색 졸업자들의 이야기, 고성환 총장의 졸업식 축사를 담았다.
최익현 선임기자 bukhak@knou.ac.kr


복숭아 하면 한때 장호원을 최고의 산지로 쳤다. 그런데 이제는 충북 음성군 감곡도 그에 버금가는 곳으로 떠올랐다. 이들은 공동으로 ‘햇사레’라는 공동브랜드를 출하하고 있다. 중부지방에 비 소식이 있던 19일 충북 음성군 감곡면 원당리 958번지 새미농원을 찾았다. 넓은 복숭아 과수원 옆 작은 농막에서 박연숙 학우(62세)와 남편인 이건호 학우(67세)가 박스에 복숭아를 담느라 분주했다.
두 사람은 올해 결혼 13년 차에 접어든 ‘젊은’ 부부였다. 이런저런 일을 하다가 농사짓기 시작한 지 25년이 됐다. 박 학우는 대구가 고향이고, 이 학우는 감곡이 고향이다. 결혼할 팔자가 아닌가 보다 하고 주변 정리를 하던 무렵에 친구 소개로 부부의 연을 맺게 됐다.

 


평균 90세까지 살게 된다면,
그때까지 20여 년을 뭐하면서 살 거냐는 거죠.

방송대를 다니지 않았다면 전혀 생각도 하지 못했을 부분인데,
대안을 생각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놀랍죠.

그러니 내 인생을 바꾼 대학이 맞죠.

 


손잡고 방송대 입학한 만학도 부부
결혼 후 두 사람은 농사를 지으면서 함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남편의 고향이지만 그래도 낯선 타향이니 외롭지 말라고 권유한 일이었다. 그렇게 화업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10년이다. 아내가 그림에 더 뛰어난 소질을 보였다. 박 학우는 음성미협에서 수상 경력도 있다. 농원의 사과나무를 주제로 한 그림을 보여주는데, 솜씨가 예사롭지 않게 보였다.
부부가 방송대를 찾은 건 2018년 3월의 일이다. 이 학우는 농학과를, 박 학우는 영어영문학과를 선택했다. 아내는 대학 공부를 하지 않고 사회생활을 했기에 뭔가 제대로 공부하고 싶었다.
“그게 항상 걸렸어요. 그래서 남편에게 방송대 가자고 졸랐어요. 그랬더니, 나이 든 지금 그게 뭐 큰 필요가 있겠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당신 같이 안 가면 나 혼자라도 가겠다고 계속 우겼죠. 남편은 내가 하는 건 무조건 같이 해야 하는 스타일이라, 그제서야 그럼 나도 가겠다고 하더군요.(웃음)”
그렇지만 입학해 보니 영문과 공부는 생각보다 힘들었고, 남편이 다니는 농학과는 분위기가 너무 좋아 보였다. 아내는 다시 큰맘 먹고 2학년 올라가면서 농학과로 전과했다.
“웬걸요. 농학과 공부가 더 어렵더라고요. 영문학과는 영어 단어만 외면 되는데, 농학과는 공부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어요. 듣도 보도 못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정말 고생했죠. 그렇지만 남편이 있어서 힘도 되고, 재미있었어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내인 박 학우는 원래 미술에 더 관심을 두고 있었다. 그런데 방송대 개설 학과 가운데 미술 계통은 찾을 수가 없어 내심 아쉽기도 했다. 고민하다가 그러면 여행 갈 때 영어 한마디라도 해보자 해서 영문학과를 지원했다고 고백했다.
부부는 농학과에 재학하면서 충북 농업연구원에서 운영하는 농업마이스터과정도 이수했다. 방송대 공부가 이론적·학문적인 배경이 된다면, 마이스터과정은 그야말로 실무적인 코스였다. 복숭아, 사과 등을 재배하는 일이 생업이다 보니 이론과 실무를 모두 갖춰야 했기 때문. 물론 부부는 농업마이스터과정 2년도 함께 이수했다.

복숭아 농장 하는 그들에게 방송대는?
마침 인터뷰 자리에 합석했던 남연자 방송대 충북총학생회장은 이들을 가리켜 ‘방송대 농학과 대표 잉꼬부부’라고 귀띔했다. “아마 두 분은 농학과뿐만 아니라 전체 학과를 통틀어도 모범적인 부부일 거예요. 부부싸움도 안 하고, 솔선수범해서 선후배님들 일, 학교 일을 챙기거든요. 박 학우님은 충북 음성지역학생회 수석부회장을 지내면서 정말 많은 일을 하셨어요.”
농사짓는 틈을 이용해 아내인 박 학우는 2021년 산림산업기사 자격증을, 올해는 산림기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어렵기로 소문난 나무의사 자격증에도 도전하고 있는 그녀는 미술 계통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고 있다. 남편인 이 학우 역시 농학과 관련된 대학원 공부를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방송대는 어떤 의미일까? 이 60대 부부는 의외의 대답을 들려줬다. 복숭아, 사과를 재배하고 틈나면 그림을 그리는 두 사람인지라 다른 말을 하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방송대는 뭐니 뭐니 해도 ‘내 인생을 바꾼 대학’이 틀림없어요. 저희가 봐도 내 인생을 바꾼 대학이거든요. 방송대를 다니다 보면 인생이 바뀌어요. 네, 바뀌더라고요. 제가 지금 60대 후반인데, 지금 우리나라 의료 환경이 좋아졌잖아요. 만약 평균 90세까지 살게 된다면, 그때까지 20여 년을 뭐하면서 살 거냐는 거죠. 방송대는 바로 이런 부분에서 대안을 생각하게 하는 것 같아요. 방송대를 다니지 않았다면 전혀 생각도 하지 못했을 부분인데, 그걸 생각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놀랍죠. 그러니 내 인생을 바꾼 대학이 맞죠.”
아내인 박 학우도 옆에서 거들었다. “농사를 짓다 보니 농학과를 선택했지만, 좀더 나이 들면 다시 또 다른 학과를 선택해서 공부하며 노년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게 참 마음에 들어요. 방송대 공부가 그런 걸 일깨워줬죠. 뭐 엄청 큰 변화는 아니더라도, 인생 후반을 바라보는 시선을 넓혀줬다고나 할까요. 인생이나 노년의 시간을 바라보는 시선이 여유롭게 바뀌었어요. 다만, 방송대도 학과를 좀더 개설해서, 예컨대 예능 계열 학과도 새로 만들어줬으면 좋겠어요.”
지역 스터디를 활용해 방송대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부부는 만학이지만 여느 학우들 못지않게 4년 하고도 딱 한 학기를 더해서 졸업 테이프를 끊었다. “같이 공부하는 동료 학우님들과 함께하면 못해낼 게 없다고 생각해요. 조금 해보다가 성격에 안 맞는 거 같다고 지레 포기하지 말고 목표의식을 가지고 도전하면 못할 게 없다고 봐요. 60대의 저희 부부도 당당히 졸업장을 받는데, 다른 학우님들이라면 더 잘 해낼 거라고 믿어요.”
이들 부부의 새미농원에서는 복숭아만 해도 7가지 품종을 재배하고 있다. 품종 하나의 수확 시기는 대개 일주일에서 열흘이다. 그 기간이 지나면 또 다른 품종의 수확에 들어간다. 출하 시기를 계산해 다양한 품종을 기르는 게 과수 농사의 기본이다. 60대에 방송대 졸업장을 손에 든 만학도지만, 어쩌면 박연숙·이건호 동문 부부는 자연에서 공부의 원리를 이해했는지도 모르겠다. 이들이야말로 다가올 노년의 시간을 위해서는 또 다른 공부 길이 필요함을 이미 온몸으로 체득한 것처럼 보였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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