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   캠퍼스 패밀리 6.

2022학년도 1학기 기말평가가 치러지는 서울지역대학. 유난히 앳된 얼굴로 태블릿 PC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문제를 척척 풀어나가는 한 학우가 눈에 들어왔다. 40대 이상이 재학생의 절반을 넘는 방송대에서 흔히 만날 수 없는 20대 학우였다. 시험을 마치고 학우를 만나 어린 나이에 어떻게 방송대에 오게 됐는지 묻는데, 복도 끝에서 “언니! 무슨 일이야?”라며 또 한 학우가 다가왔다. 동생이었다. 방송대에서 가족이 함께 공부하는 경우가 많지만, 기자에게 20대 초반 자매 학우는 처음이었다. ‘캠퍼스 패밀리’ 여섯 번째 주인공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유학 대신 선택한 방송대 입학
언니 이하빈 학우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방송대에 입학했다. 사실 영문학과와 문헌정보학과로 진학하고 싶었지만, 안정된 직장을 원하는 부모님의 뜻을 따라 일반대학 간호학과에 합격했다. 하지만 피를 보며 일하는 직업은 적성에 맞지 않아 고민 끝에 부모님을 설득했다. 공부해서 유학 가겠다고. ‘자식 이기는 장사 없다’라는 속담처럼 이 학우의 부모님은 딸의 선택을 존중해줬다. 단, 조건이 붙었다. 유학 자금은 스스로 모을 것, 방송대에서 학부를 졸업할 것, 그리고 전공은 실용적인 학문으로 할 것이었다.

 

영문학을 전공하려던 언니는 유학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바로 취업하고 방송대에 원서를 냈다. “이왕 방송대에 진학하는데, 아버지가 나중에 졸업하고도 도움받을 수 있는 전문적인 공부를 해 보는 게 좋겠다고 조언해주셨어요. 법무사나 공무원, 공인중개사 시험 등에 쓰일 수 있으니 하고 싶은 공부는 유학에서 할 거라 생각하고 덜컥 법학과를 선택한 거죠.(웃음)”

 

부모님은 딸의 선택을 존중했다.
단, 조건이 붙었다.
유학 자금은 스스로 모을 것,
방송대 학부를 졸업할 것,
실용적 학문을 전공할 것이었다.

 

‘선취업 후진학’을 장려하는 특성화고에서 중국어를 전공했던 동생 이주빈 학우에게도 언니의 선택은 영향을 끼쳤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당연히 취업해야지 하고 생각했던 동생이 보기에 일하면서 공부하는 언니는 멋진 모습 그 자체였다. 언니와 같은 직종으로 취업하고 자연스럽게 방송대에 입학했다. 언니가 이미 다니는 학교라 방법은 알고 있었기 때문. 전공은 물론 중어중문학과였다.

 

동생은 경기도에서, 언니는 강원도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며 일하면서도 자매는 열심히 공부했다. 시험 기간만 되면 우울해지는데, 함께 공부하니 즐거움은 두 배요, 시너지도 크다. 동생은 청년장학금을 받았다. 어렵다는 HSK 4급도 취득했다. 재학생 중 기준 성적 이상에 나이가 어린 순으로 받는 거라며 쑥스러워했다. 4학년인 언니는 성적우수장학금을 받았다. 일상생활에 적용되는 법률을 알 수 있어 조승현 교수(법학과)의 강의를 가장 좋아한다. 언니는 근로기준법 등을 배우면서 회사 업무도 더 잘 파악하게 됐다. 학문으로서의 법을 실생활에서 적용한 예다.

 

20대들에게는 대학보다 취업이 중요
언니는 어느덧 졸업반이다. 가끔 4년제 일반대에 진학했던 친구들을 만나면 오히려 자신을 부러워한다고 말한다. “일반대에 같이 가는 게 좋지 않겠냐는 친구도 있었고, 중간에 적성이 안 맞아서 휴학할 거면 재수하는 게 나을 거란 친구도 있었죠. 그런데 요즘 일반대 간 친구들 만나면 취업이 안 돼서 졸업을 유보하는 경우가 정말 많더라고요.” 동생도 마찬가지다. 직장 동료들을 만나면 일하면서 어떻게 대학을 다니느냐며 대단하다고 많이 격려해준다는 점에서 방송대에 온 것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도, 캠퍼스의 낭만을 즐기기 쉽지 않다는 점이 20대에겐 방송대의 매력을 반감시키는 요소가 되지 않을까 궁금했다. 예상과 전혀 다른 답이 돌아왔다. 이하빈 학우는 “저는 원래 목표가 4년제 대학 가는 게 아니었어요. 그래서 입학 포기 원서 낼 때도 전혀 아쉽지 않았죠. 사실 저희 또래들은 대학은 ‘SKY’나 ‘서성한’ 아니면 다 똑같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일반대 가서 시간 낭비한다는 것 같다고 이야기하기도 하고요. 지금은 대학이 중요한 게 아니라, 취업이 더 중요해요. 20대 제 친구들 말 들어보면 그렇더라고요”라고 말했다.

 

그런 면에서 방송대는 2030 세대들에게 효율적인 학교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프로N잡러’라고 하나요? 여러 직업을 갖는 현대인이 많은데요. 일반대에 묶여 있으면 학교 일도 바쁜데 다른 일 하기가 어렵잖아요. 방송대는 공부도 하면서 취업도 할 수 있으니 시간 절약도 되고 효율적일 수 있는 학교죠!”라고 말했다.

 

“인강 세대에게 강의 업데이트는 필수”
MZ세대들이 방송대를 찾기 위해서는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할까? 20대의 대답은 정직했다. 언니는 강의 업데이트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강 세대들에게 강의는 정말 중요해요. 법은 계속 개정되는데 강의는 제작 연도에 머물러 있어요. 잘못된 정보 때문에 새로 공부해야 하는 건 비효율적이잖아요. 자막이 모든 강의에 적용되지 않는 점도 아쉬워요.”

 

동생은 고교 졸업 예정자들에게 방송대를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입 과정에서 고교 졸업 예정자들에게 방송대 오라고 한마디라도 해주는 홍보가 없잖아요. 모르는 학생들이 훨씬 많아요. 홍보가 된다면 젊은 사람들이 한 번쯤 입학을 고려해볼 수 있을 텐데 말이죠.”

 

방송대 졸업 후 계획은 처음 그대로 유학일까? 언니의 꿈은 ‘로스쿨 진학’으로 바뀌었다. 법학에 흥미를 붙여 더 전문적인 공부를 할 계획이다. 이직을 위해 법무사 시험도 준비해볼까 고민 중이다. 동생은 처음 마음 그대로 중국으로 갈 생각이다. 코로나19로 늦어졌지만, 오히려 그 기간을 착실하게 중어중문학과 학부 과정을 밟고 있으니, 중국에서 한 단계 더 도약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구상이다. 거기서 마음이 동하면 유학을 할 수도 있다고 했다. 고교 졸업 직후 방송대에 입학한 20대 자매 학우의 이야기는 이제 막 시작됐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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