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K-영화’와 ‘미영씨’들

한국인이 사랑하는 배우 양조위가 7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2022년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수상을 위해서다. 10월 5일 개막식 때 레드카펫에등장하며 숱한 이들의 탄성과 함성을 자아낸 그는 7일 이동진 영화평론가와 오픈토크를 나눴다. 아래는 이 평론가와 양조위의 일문일답.

오랜만에 한국 팬들을 만나게 된 감회는?
사실 한국에 오고 싶었는데 핑계가 없어서 못 왔습니다. 이렇게 부산국제영화제라는 이유가 생기고 여러분의 얼굴을 뵙고 인사드릴 수 있어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했는데, 다음에 올 때는 이번처럼 오래 뜸들이지 않고 작품을 가지고 오는 등 최대한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오겠습니다.

 

‘양조위 눈 마주치는 것을 조심하라. 집에 돌아갈 길을 그 눈빛 속에서 잃을 수 있다’라는 댓글을 봤다(웃음). ‘배우는 눈을 파는 직업’이라는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출연작에서 본인의 눈빛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드는지 궁금하다.
눈은 한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몸짓이나 행동으로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숨길 수 있어도, 눈을 통해서는 숨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표현을 잘 못하는 성격이기도 하고, 언어로 감정이나 스트레스를 표현하지 않는 편인데, 그래서인지 연기할 때는 눈을 통해 더욱 표현하려고 했죠. 사실 제가 연기한 작품을 잘 못 봅니다. 볼 때마다 ‘조금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들어서요.

 

초기작 「비정성시」의 허오 샤오시엔 감독은 대만어를 할 수 없는 양조위를 캐스팅하기 위해 대만어로 쓴 대사의 상당부분을 없앴다. 훌륭한 감독들이 대본까지 수정하면서 당신과 함께 작업하고 싶어한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배우로서, 이런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운이 좋았다는 것입니다. 다양한 감독들과 일하며 많은 것을 배웠고 그럼으로써 오늘의 양조위가 있지 않나 싶어요. 허오 샤오시엔 감독님과의 작업은 배우 인생에서 초기 작품이었기 때문에 특히나 많은 것을 배웠죠. 당시 대만어를 몰랐던 터라 촬영 시간 외에는 방에만 있었는데, 감독님이 그때 책을 많이 가져다 주셨어요. 작품 속 캐릭터를 소화하기 위해 대만 역사에 대한 책은 물론, 일본이나 미국의 문학작품도 많이 읽었습니다. 매번 다른 감독님들과 같이 일하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좋은 경험을 많이 쌓았죠.

 

이안 감독님은 캐릭터를 어떻게 연구하면 좋을지 많이 알려주셨고요. 당시 레퍼런스도 많이 주시고, 「색계」 속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1940년대 역사책을 주시거나, ‘박물관에서 이 그림을 보면서 네 캐릭터가 어떤 캐릭터인지 상상해보라’는 조언도 해주셨어요. 그리고 왕가위 감독님은 제 연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감독님이죠.

 

「무간도」에서 연기하는 진영인이라는 인물은 조직폭력배로 위장한 경찰이다. 10년이 지나도 위장임무가 끝나지 않는 이야기를 다뤘는데, 이는 왕가위 감독의 영화에 출연하는 양조위의 심정이 아닐까 싶다. 왕가위 영화에 무려 7편이나 출연했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도 시작과 끝이 불분명한 측면이 있고 배우들을 지치게 한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참아냈나?
음…(웃음). 또 다른 창작방법인 것 같아요. 이전에 다른 감독들과 일했을 땐 이런 방식의 창작방법을 겪어본 적이 없었거든요. 왕가위 감독님과 일할 땐 대본도 거의 없고 캐릭터에 대한 정보도 없는 상황에서 촬영이 들어가요. 언제까지 촬영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래서 어떻게 보면 재미있는 방식이죠. 일상생활도 그렇지 않나요? 당장 서른 살 이후의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모르는 사람이 많은데, 불확실한 현장에서 매일 대본을 받는 거죠.

 

그렇게 하루하루 받은 대본을 제대로 대하고 연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역할에 녹아들게 되더라고요. 생활도 그렇지 않나요? 하루하루 살다 보면 살아지는 그런. 그런데 사실 왕가위 감독님은 욕심이 많은 편인 것 같아요(웃음). 같은 신을 여름에 3일 찍고, 가을에도 3일 찍는 등, 이런 쪽으로 욕심이 많으셔서 가끔씩 힘들었습니다(웃음). 아마 감독님도 이 신을 여름으로 설정해야 될지 가을로 설정해야 될지 결정을 못하셔서 그런 것 같아요.

 

가끔 힘들 뿐이라고 말하긴 했으나, 왕가위 감독과 만든 7편의 작품 중 가장 힘들었던 작품은 무엇인가?
「동사서독」이죠. 지금으로부터 이십 몇 년 전 촬영했는데, 촬영 장소 자체가 아주, 아주, 아주 먼 사막이었습니다. 사막 한가운데 길 하나만 있고, 나무로 대충 지은 민박집 몇 개만 있는데 그곳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한 일이 방 청소와 소독이에요. 촬영하면서 이렇게 힘든 적은 처음이었죠. 게다가 왕가위 감독님과 촬영하면 당일이 돼서야 내 촬영분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에 힘든 점이 있었죠. 그땐 스마트폰이나 인터넷도 없어서 집에 전화도 마음대로 걸 수 없었어요. 그런 올드한 방식으로 생활했던 기억이 나네요.

 

영화 「일대종사」에서 “쿵푸라는 것은 결국 수직 아니면 수평이다. 끝까지 살아남는 자만이 말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라는 대사가 있다. 올해 스크린 기준으로 데뷔 40주년을 맞이했는데, 40년 동안 그렇게 좋은 작품을 많이 찍고 꼿꼿이 서 있다는 것이 팬의 입장에서 경이롭기까지 하다.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40년간 본인의 연기 인생을 돌아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40년을 바쁘게 보내고, 수많은 훌륭한 사람들과 같이 일하며 다양한 캐릭터를 만들어 냈으니까요. 40년 동안 행복하게 살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부산=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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