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식물성의 사유로 읽어낸 역사 속의 여성

“나는 종종, 아주 종종 동틀 녘의 고요한 시각에 룰루의 청아한 방울 소리를 듣는 꿈을 꾸었고 꿈속에서 환희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러면 나는 매우 기이하고 달콤한 일이 금세 일어나기를 기대하며 잠에서 일어났다. … 만일 내가 아프리카의 노래를, 기린과, 등을 대고 누운 듯한 아프리카의 초승달과, 들판의 쟁기와, 커피 열매 따는 일꾼들의 땀에 젖은 얼굴에 대한 노래를 안다면 아프리카도 나의 노래를 알까?” ―『아웃 오브 아프리카』(1937), 「카만테와 룰루」 중에서 비록 원작의 내용과는 많이 다르지만, 우리는 영화「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통해 생명이 꿈틀거리는 아프리카를 본다. 그리고 그 속에서 조화롭게 살아가는 각종 인간과 동물, 식물들의 합창을 듣는다. 문명을 등지고 자연으로1913년 12월, 약혼자와 함께 배를 타고 아프리카에 도착한 여성이 있었다. 이듬해 결혼식을 올리고 케냐 나이로비 인근에 정착한 이 여성의 이름은 카렌 블릭센(Karen Christanze von Blixen-Finecke, 1885~1962)이다. 그녀는 28세에서 46세까지 20년 가까운 세월을 아프리카에서 지내며 자연의 일부가 됐다. 이후 고향 덴마크에 돌아와 그간의 경험을 소설로 엮은 것이『아웃 오브 아프리카』(1937)이다(책 제목인 ‘out of Africa’는 ‘아프리카를 떠나며’가 아니라 라틴어 경구 ‘Ex Africa semper aliquid novi’에서 따온 것으로, ‘아프리카로부터는 항상 무언가 새로운 것이 생겨난다’라는 뜻이다).물론 그의 첫 소설은 1934년 미국에서 출간한『일곱 개의 고딕 이야기』다. 흥미롭게도 그는 이삭 디네센(Isak Dinesen)이란 필명으로 이 작품을 발표했다. 필명 ‘디네센’은 그의 결혼 전 이름이었다. 그는 유명작가가 된 뒤에도 한사코 필명을 고집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여류작가의 새장’ 속에 갇히고 싶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소설 창작에 나선 40대의 블릭센의 재정 상황은 좋지 않았다. 남편과 이혼, 연인과의 사별, 빚에 넘어간 케냐 커피 농장 등 불운이 잇따른 상태였다. 일설에는 그가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첫 소설을 쓴 것도 ‘더 많이 팔기 위해서’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순탄치 않았다. 비록 남작 부인이라고는 하지만, 46세의 무명 여성 작가에게 유명 출판사들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그의 작품은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랐다.노벨상 후보에 두 번이나 오른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시드니 폴락 감독이 1985년에 영화로 만들었다. 작가 사후의 일이다. 카렌이 연인인 데니스 핀치해턴과 경비행기를 타고 아프리카 초원 위를 나는 장면은 유명하다. 오스카상 7개 부문을 수상한 영화지만 원작에서는 간단히 다뤄진 두 사람의 우정이 포장되고 주 내용인 아프리카 원주민 부족들과 야생동물들, 가축들과 은공 농장의 일화들이 단순화된 것은 유감이다. 이 소설은 다름 아닌 카렌 블릭센 남작 부인의 삶 그 자체였으니까. 스웨덴 코펜하겐에서 군인이자 정치가, 문필가인 아버지와 부유한 집안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3녀 2남 중 둘째로 태어난 카렌은 부계 6촌인 브로르 본 블릭센피네케 남작과 결혼해 케냐로 이주한다. 하지만 결혼 한 이듬해 남편에게서 매독이 옮아 고생하며 이후로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 되어, 몇 년 후 남편과 별거하고 결국 40세에 이혼한다. 열정적인 카렌은 커피농장을 운영하며 아프리카 속으로 녹아들어 간다. 활발하고 따뜻한 블릭센 남작 부인은 원주민들의 상처를 치료해주고 아픔을 감싸안으며 분쟁과 사고 등 온갖 문제를 끌어안고 생활한다. 백인이 흑인에게 가질 수 있는 편견 따윈 그녀에게 없었다. 케냐의 여러 부족인 소말리족·스와힐리족·키쿠유족·마사이족 각각의 관습을 상세히 파악해 존중했다. 식물과 동물, 사람을 함께 불러들이다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세우고 자신의 농장에 갈 곳 없는 원주민을 고용해 보살피고 환자들을 병원에 입원시키는 사랑과 정성으로 그녀는 그들의 보호자, 중재자, 재판관, 의사, 교사, 목사가 된다. 하지만 카렌의 이러한 삶은 결코 ‘신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단정한 ‘자연의 원리’를 따랐을 뿐이다. 그녀는 거리의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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