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글쓰기, 멈출 수 없는 도전

지난 10월 초 제46회 방송대문학상 당선작과 2022 전 국민 독서분투기 한마당 수상자를 발표했다. 응모한 이들 모두가 다양한 ‘히/허스토리’를 가지고 있지만, ‘글쓰기를 향한 열정’만큼은 공통적이었다. 글쓰기가 무엇이길래 이토록 해마다 문학상과 분투기에 치열하게 도전하는 것일까? 이번 커버스토리에서 올해 방송대문학상과 독서분투기에 도전한 이들을 주목한 이유다. 1면에서는 문학상과 독서분투기 응모자 가운데 최고령 도전자로 방송대문학상 ‘특별상’을 수상한 류광석 학우(91세·국어국문학과 2)를 만나 그의 도전 이유를 들었다. 2면에서는 시·시조 부문 당선자인 박정주 학우(관광학과 3)를 서면 인터뷰했다. 18년째 복역 중인 그에게 시의 의미를 물었다. 3면에서는 독서분투기 본심 심사위원의 심사평을 소개했다.
부산=최익현 선임기자 bukhak@knou.ac.kr

방송대문학상과 독서분투기에 왜 도전하냐고요?
글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쓰는 것도 많은 공부가 되거든요.
많은 학우가 머리를 싸매고 도전하는
이런 기회가 올 때마다 동기부여를 받아
불굴의 욕망이 샘솟게 됩니다.

 

“70세에 방송대 공부를 시작했다면,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겠죠? 글의 기본부터 다져보려니 여간 쉽지 않습디다. 그동안 여기저기 써 놓았던 글들을 모아 개인 문집을 내는 게 필생의 꿈이죠. 신이 허락하는 시간까지는 방송대 공부와 글쓰기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부산 자택을 찾은 기자에게 류광석 학우는 또박또박 이렇게 말을 건넸다. 키가 컸고, 허리도 구부정하지 않았고, 시력은 아직도 좋았다. 다만 귀가 어두워져 잘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걸음걸이도 정정했다. 그가 부산지역대학 국어국문학과 학생회 홍보국장을 맡아 봉사하고 있다는 게 이해됐다.
1932년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있던 해 태어났다. 가난한 농가의 4형제 가운데 막내인 부친은 생계를 위해 일본으로 건너와 야마구치현 어느 대리석 채굴현장에서 경북 김천 출신 송씨와 결혼해 첫 아들을 봤다. 그가 바로 류 학우다. 일본에서 ‘국민학교’를 마쳤지만, 해방과 광복의 소식에 부친을 따라 부산으로 돌아왔을 때 13세 소년이었다. 딸만 있는 백부의 양자로 들어가 겨우 시골 중학교까지는 마칠 수 있었다. 그에게 공식 공부는 여기까지다.
20세에 한 살 아래 처자를 소개받아 결혼했다. 이웃의 소개로 면사무소 임시고원을 시작으로 말단 지방공무원의 길에 들어섰다. 직원 교양시험, 자질향상을 위한 보수교육 등을 통해 능력을 인정받아 경남도청 건설국, 기획관리실 등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1993년 부산기능대학(폴리텍) 관리부장으로 정년을 했다. 아파트관리사무 소장, 노인대학 학장을 하면서, 취미인 서예에 몰두하는 등 퇴임 이후 제2 인생을 살았다. 그때까지는 방송대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 그는 이 시기를 ‘허송세월’이라고 표현했다.

2021년 90세 나이에 방송대 진학
그의 인생길은 2018년에 완전히 달라진다. 어느 날 동래고등학교 담벼락에 걸린 학생 모집 공고를 보고 87세에 ‘주책없이 방송통신고등학교에 입학’한 것이다. 2021년 이곳을 졸업하면서 바로 방송대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했다. 
“때늦은 배움의 길을 택하게 된 것은 살아오면서 중졸이라는 저학력으로 세상에 나가야 하다 보니, 고비마다 사무치는 한이 맺혀 있었다고나 할까요. 방통고에 원서를 접수할 때 어찌나 가슴이 떨렸는지 몰라요.”
고등학교 졸업이 가까워지자 시내 각 대학에서 학교 홍보를 위한 설명회가 이어졌다. 대학 진학 욕심도 났지만 주저했다. 나이 90에 또 무슨 공부를 한단 말인가. 앞으로 4~5년 건강을 유지하면서 공부해 졸업이나 할 수 있을지 두려웠다.
“세상은 4차 산업혁명이니 메타버스니 하면서 눈부시게 발전하는데, 나는 여기에서 주저 앉으면 쓸모없는 인간으로 전락할 게 명약관화했어요. 그래, 사는 날까지 뇌를 단련하고 활동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이젠 주저할 게 없더군요.”

“방송대는 빡세다”라는 말에 오기 발동
사실 그가 방송대를 선택한 데는 ‘어설프게 공부해서는 졸업도 못한다’라는 소문을 듣고 발동한 오기가 한몫했다. 기왕 공부를 할양이면, 실컷 해보고 싶어 방송대를 선택했다. 학과를 어디로 정할지 잠시 고민했지만, 소년시절부터 소설 읽기, 글쓰기를 좋아했기에 망설일 게 없었다. 중학교 졸업하고 소를 먹이던 때도 손에 항상 소설책을 들고 다녔다. 이무영 작가의 『소설작법』(1949)도 즐겨 읽었다. ‘옳지! 항상 글을 맵시 있게 쓰는 것이 원이었는데, 국어국문학과로 가야겠다’라고 작심했다.
“지난해 겁도 없이 덜컥 단편소설 부문에 응모했는데, 무모했어요.(웃음) 소설을 쓰려면 공부를 더 깊게 해야 하는데, 힘에 부치더군요. 올해 마침 에세이 부문 주제가 ‘친구’여서, 그렇다면 이 주제로는 나의 지낸 인생을 돌아보면서 뭔가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46년의 방송대문학상 역사에서 ‘특별상’은 최초다. 본심 심사를 맡은 진보성 방송대 교수(문화교양학과)는 류 학우의 작품에 대해 “백수(白壽)를 바라보는 인생호에 처음 승선해 영원을 약속한 친구가 사랑하는 아내였다면 삶의 후반에 만난 친구 또한 ‘막역지우’가 될 수 있다. 이것이 인생이다. 지금은 떠난 그들을 생각하며 남은 자신의 인생을 다잡으려는 의지가 글 전반에 살아있다. 삶, 죽음, 그리고 인생. 삶의 정점에서 독자에게 주는 울림은 잔잔하지만 힘이 있다”라고 평가했다.
“늦어도 너무 늦은 늦깎이 학생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해 특별상으로 뽑아주신 학교 당국에 감사드립니다. 아마도 저처럼 늦깎이 공부를 하고 있는 많은 학우님들을 격려하기 위한 시상이 아닌가 싶어요. 그렇지만 기분이 참 좋습니다.”
방송대문학상 수상 소식을 부산지역대학 국어국문학과 스터디모임에서 먼저 알고 카톡으로 알려줬을 때, 인생 두 번째의 큰 기쁨을 맛보았다는 류 학우. 이 소식을 자녀와 손주손녀들이 모인 카톡 단체방에 알렸을 때, “우리 할비 최고!”라는 손주들의 축하에 또 한 번 놀랐다고 한다.
류 학우는 2014년 한자교육진흥회의 1급 공인자격을 취득했다. ‘아리아리’(스터디 모임)에서 동료 학우들의 한자 공부 안내는 그의 몫이다. 전공 공부도 벅찬데 이렇게 짬을 내서 공부도 돕고, 학과 학생회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60대, 70대 학우들에게 전화를 걸어 모임에 나오라고 재촉하는 것도 그에겐 익숙한 일이다. 

“쓰는 것도 많은 공부가 됩니다”
“문학상과 글쓰기에 왜 도전하냐고요? 글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쓰는 것도 많은 공부가 되거든요. 많은 학우가 머리를 싸매고 도전하는 이런 기회가 올 때마다 동기부여를 받아 불굴의 욕망이 샘솟게 됩니다. 방송대 학보 〈KNOU위클리〉를 구독하고 있는데, 문학상과 독서분투기 공고를 보면, 의욕이 막 치솟더군요. 시간이 허락한다면, 당선될 때까지 도전해보고 싶어요.”
그는 방송대 학우들에게 학교와 학과 행사, 스터디 모임 등에 적극 참여하길 권유했다. 얻어만 가려고 하지 말고, 와서 베풀기도 해달라는 주문도 잊지 않았다. 방송대 공부에 도전한 인생 후배들에게 ‘미망에서 한 겹씩 탈각하는 샘솟는 희열’을 맛보고, 새로운 공부를 통해 진일보할 것도 제안했다.
“인생의 남은 시간이 좀더 허락된다면, 방송대 농학과에도 도전해보고 싶어요. 특별히 건강관리를 하는 건 아니지만, 매주 2~3회 주말농장을 찾아 햇빛을 받으며 농사일을 하고나면 몸이 가뿐한 느낌이 들어요. 농사도 제대로 하려면 공부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자꾸 욕심이 생겨요.”
그의 에세이 「나의 친구들」에는 이런 인상적인 구절이 있다. “아무리 먼저 간 친구들이 자기네들의 곁에 올 때가 됐다고 성화를 부려도 나는 아직은 갈 수가 없다. 왜냐하면 지금 한참 진행하고 있는 몇 가지 할 일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방송대 졸업, 문집 한 권을 남기는 일이다. 그의 소망이 평강 속에서 아름답게 열매 맺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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