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서고금 어느 땅에서나 시는 그 시대의 아름다운 지도이다. 살았던 시대와 불화하거나 동락하였거나, 자신의 목소리로 시대를 그려 후대에 남긴 이들은 또 그 지도 위의 가장 아름다운 별이 되었다. 그 별들을 아득하게 바라보고 흠모하며 살아왔으나 나의 백지는 너무도 작고 시를 짓는 재주 또한 갖지 못했으니 좋은 시와 시인을 만나는 인연만으로도 감격하게 되었다. 머리통에 먹물이 스며들기 시작한 유년 이후 스스로 글줄을 다듬으며 살게 되리라 감히 꿈꾸었던 날들이 부질없이 지났다. 별은 멀리 있으나 그 빛은 여전히 아름답고 맑으니 가끔 고단한 삶에서 밤하늘을 바라보며 길을 찾던 고인들의 모습을 흉내만이라도 내는 것이 내게 족하지 아니한가 위안을 삼을 뿐이다.
우리 문학사의 시인들과 서양의 시인들은 어느 정도 익숙하였다. 하지만 가장 가까이 있는 나라인 중국의 시(漢詩) 문학사에는 무지에 가까웠다. 당송팔대가와 이백, 두보 정도의 시 몇 편을 상식적인 한에서 겨우 알 뿐이었다. 그러니 솔직히 말하자면 한시의 계보를 시대별로 그려내야 했던 1학기 전공 시험이 내겐 꽤 만만찮은 허들이기도 했음을 자복한다.
저자의 방송대 중국 명시 감상 강의에서 만났던 한시들이 많이 등장해서 독자로서 조금 더 익숙하고 반가웠다. 그 한시 강의를 통해 하늘 너머의 하늘, 별 너머 다른 별 무리의 노래를 들었다. 장강의 강물처럼 수천 년 중국 민중의 애환을 함께 해 왔던 그 아름답고 웅혼한 노래들을 이제야 이렇게 만났다니. 강의가 끝나고 벅차고도 설렜다. 수업을 들으며 인터넷서점에서 당송시를 죄다 뒤져서 사재기를 했다. 아직 넘겨야 하는 책장들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지만, 이 행복한 숙제라니. 졸업하기 전에 제대로 된 한시를 한 수라도 지어보리라. 아마도 이루지 못할 어리석은 꿈이겠으나 나 혼자 꾸는 꿈을 누가 뭐랄 것인가.
그 수업을 듣지 않은 이라도 저자와 함께 하는 한시 여행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여행길은 청년의 발걸음처럼 경쾌하고 시와 시인들에 대한 눈길은 따뜻하다. 그의 문장은 그가 사랑하는 시인들을 닮았다. 그는 그 시대의 시인들과 이 시대의 우리, 중간에 서서 목소리를 전달해주는 이다. 시대의 간난을 견뎌야 했던 민중과 그들과 함께 하는 시인들의 고통을 독자에게 전해주는 그 목소리는 애틋하다. 그의 시선을 따라 이백의 호탕한 장진주에 무릎을 치며 크게 웃다가, 전쟁으로 폐허가 된 조국을 헤매며 그들의 고통을 위로해주었던 두보의 달밤에 목이 멘다. 이루지 못하는 열망과 탄식을 에둘러 표현한 이백의 장쾌한 시도 아름답고, 시랑(豺狼)같은 관리의 횡포에 고통받는 백성의 눈물을 직격한 두보의 위무는 얼음으로 된 칼날이 심장을 저미는 듯 하다. 고통의 시대를 견디는 시인들의 명징한 시는 겨울밤 시리게 빛나는 별처럼 아름답다. 처절한 시대를 차라리 잊고 죽림에 마음을 묻은 시어들에서는 대숲을 스쳐 가는 바람 냄새가 난다.
잠시 유배 온 하늘의 신선 이백과 시의 집대성인 두보, 이 중에서 그래도 내가 조금 더 좋아하는 시인이라면 아무래도 두보 쪽인 것 같다. 제 생각을 드러내기에 ‘~것 같다’라는 식의 두루뭉술한 말을 싫어하지만, 이쪽에서는 어쩔 수 없다.
두보의 「석호리」를 강의로 듣던 날은 새벽이었는데, 이 시의 해석을 들으며 펑펑 울었다.
한밤중에 서슬푸른 관리가 석호촌을 급습한다. 세 아들 중 두 아들은 전장에 뺏겨 전사 통지서로 돌아왔다. 업성에 끌려가 있는 막내아들도 잠시 생을 도둑질한 듯 머물 뿐 곧 잃을 것을 어미는 안다. 늙은 어미가 마지막 남은 젖먹이 손자를 지키기 위해 며느리를 대신해 끌려간다. 이 참상을 임지로 전출되어 가며 하룻밤을 의탁한 시인이 목격한다. 아기를 품에 안고 소리죽여 흐느끼는 젊은 여인의 울음소리가 무력한 목민관의 심장을 때린다. 이 참담한 장면은 독일의 판화가 케테 콜비츠의 피에타와 겹쳐 보인다.
문학이 그것을 산출케 한 사회의 정신적 모습을 가장 날카롭게 보여주고 있다면, 시는 그 문학의 가장 예민한 성감대를 이룬다고 설파했던 노시인의 말이 떠올랐다. 문학, 그것도 위대한 문학은 애도로 표현된다고 한다. 수천 년 전 무겁고 쓸쓸한 망각의 바닷속에서 억울하게 살다 간 삶의 숱한 고난을, 가장 따뜻하고도 날카롭게 벼린 붓으로 보여주었던 두보의 절창이었다. 슬픔과 고통이 아름다울 수 있다면 두보의 시를 입었으리라.
두보의 시들은 이렇게 시종일관 민중을 향한 따뜻한 슬픔에 젖어 있다. 시대와 불화한 자신의 처지에 괴로워하면서도 그의 슬픔은 절망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세상을 경영하려는 원대한 뜻을 품었으나 때를 만나지 못하고(懷才不遇), 태어났으나 만나지 못하는(生不逢時) 그가 사랑하는 영웅과 군자들. 좌절 속에서도 그의 신념은 웅혼한 비장미로 승화한다.
낙엽이 쓸쓸히 내리는 장강삼협의 중양절, 피붙이는 뿔뿔이 흩어져 언제 다시 만날지 기약을 할 수 없다. 늙고 지친 두보는 자신을 대신 울어주는 삼협의 원숭이들에게 귀를 기울이다 시선이 강물에 닿는다. 고단한 노시인의 슬픔은 굽이쳐 흐르는 장강의 거대한 물결 속에서 공간을 확장한 깨달음과 위로가 된다. 전란 속에서 낙엽처럼 떠돌던 그의 고통이 천 이백 년을 넘어 지금도 고단하고 슬픈 사람들의 눈물과 함께 젖는다. 사소한 고독과 슬픔이 장엄한 그림 속에서 시경의 높은 경지로 가 닿는다. 끝없는 방랑과 가난으로 평생을 시달려 온 시인이 남긴 남겨진 몇 줄 시의 힘은, 아득한 밤하늘의 별을 보며 갈 곳을 찾아 헤매야 했던 후대의 사람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 든든한 지도가 된다.
두보에게 반해 길게 언급했으나 이 책은 이백과 두보만 등장하지는 않는다. 각각 3부로 나눠 이백, 두보와 함께 성당의 황금기를 이룬 왕유와 도연명의 맑고 아름다운 시들이 1부를 차지하고 2부에는 저자가 방송에 출연하여 진행한 한시 관련 대담이나 특강 자료로 채워진다. 참석하지도 않은 귀한 강연에 몰래 들어가 귀가 황홀하다. 3부에서는 저자가 직접 지은 한시로 만난다. ‘한시와 함께 하는 중국 여행’ 티브이 프로그램 진행자로도 유명한 저자의 여행담이다. 글을 따라가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이 여행에 얹혀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옛 시의 고향을 찾아가는 길은, 때로 유쾌하고도 즐거운 여행이기도 하고 이미 변한 산천 속에서 허전한 그림자를 더듬어보는 길이 되기도 하다.
깊고도 넓은 한시의 바다에서 자유롭게 노닐고 있는 저자의 시는 발랄하고 유쾌하다가도 때와 정취에 맞춰 시어를 고르는 모습에서 그가 마냥 사랑하는 이백의 모습을 본다. 그 기상이 이렇게 닮아서였구나. 은연중 미소와 감탄이 절로 나온다.
늦은 나이에 방송대에 들어와 공부를 시작하며, 따라갈 수 있을까 겁이 나기도 했다. 미련하고 아둔했다. 이렇게 멋진 시인들을 만나고 그들의 시로 짠 양탄자를 타고 시공을 건너 그들이 누볐던 지경을 함께 따라가는 행복이 있을 줄 왜 좀 더 일찍 알지 못했던가.
내가 좋아하는 우리의 근대 화가 중에 청전 이상범이 있다. 그의 그림에는 세심한 필선과 미점을 반복하며 그리는, 낮고 언덕과 쓸쓸한 잡목 사이의 초가집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가 보여주는 그 풍경들은 세상 어딘가에 꼭 있을 것도 같고, 살아있는 숨결들은 모두 지워지고 가을바람과 산골의 물소리만 남은 것 같은, 존재할 수 없는 다른 세상의 아득한 쓸쓸함처럼 상반된 감상을 주기도 한다.
여러 해 전, 전시 소식을 듣고 그의 그림을 보기 위해 상경했다. 더디고 둔한 촌사람이 여러 번 물어 찾아간 갤러리에서, 화집에서만 보았던 그 아득하고 쓸쓸한 그림들을 보았다. 청전의 그림을 보며 나는 내 서가의 두보를 떠올렸다.
淸江一曲抱村流(청강일곡포촌류) 長夏江村事事幽(장하강촌사사유)
自去自來梁上燕(자거자래양상연) 相親相近水中鷗(상친상근수중구)
老妻畵紙爲棋局(노처화지위기국) 稚子敲針作釣鉤(치자고침작조구)
多病所須唯藥物(다병소수유약물) 微軀此外更何求(미구차외갱하구)
맑은 강이 한 번 굽어 마을을 안고 흐르나니 긴 여름 강촌은 일마다 그윽하구나.
절로 오가는 것은 대들보 위의 제비요 서로 친한 것은 물가의 갈매기라.
늙은 아내는 종이 위에 바둑판을 그리고 어린 아들은 바늘을 두들겨 낚싯바늘을 만든다.
벗이 보내준 쌀 또한 있으니 미천한 이 몸 또 무엇을 구하리.
-두보 <강촌>, 번역 김성곤
개인이 감당하기 버거운 짐들은, 스스로의 숙명이라고 체념하거나 나를 위협하는 사회의 책임이라고 화살을 돌리거나… 흔히 그럴 것이다. 체념이나 분노에서 벗어나는 길은 자신을 극도로 훈련해서 그 상황을 뛰어넘거나 반대로 도망치는 길이다.나는 도망치는 쪽이었을 게다. (예나 지금이나 비겁한 건 마찬가지다) 젊은 나는 무겁고 쓸쓸한 문장을 사랑하는 쪽으로 숨었다. 그때 스쳐 간 두보는 청전의 붓과 닮아 있었다. 이 시를 빚기까지 그가 온 생애를 기울여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고 쓰러지고 부딪치며 단련했는지를 몰랐다. 세상을 잊고, 버리고, 혹은 버림받은 이의 고독이라고 생각했다. 두보가 들었다면 웃고 말았을까. 무지였고 치기였다. 너무 탓하지는 않았으리라. 때 묻은 나이가 되기 전이었다. 치기는 인생이 젊음에 허락하는 선물이다. 누구라도 이 선물을 누려보지 않았으랴.
길지도 않은 글을 쓰고 있는 동안 온 나라가 물에 젖었다. 다치고 아픈 사람들이 너무 많고 아까운 생명도 많이 졌다. 뉴스를 보기 괴롭고 가슴이 아프다. 나의 죽음을 구경하지 말라 일갈하는 네티즌의 시를 읽는 새벽이다.
空山新雨後(공산신우후) 빈 산에 새로 비 내린 후
天氣晩來秋(천기만래추) 저물녘 완연한 가을 날씨라.
隨意春芳歇(수의춘방헐) 꽃들이야 제멋대로 다 졌어도
王孫自可留(왕손자가류) 나는야 이 산중에 오래오래 머물러 있으려네.
- 왕유 <산가추명> 부분
비가 길어지고 세상은 다쳐도 천기는 가을을 마련해줄 것이고 우리는 이겨낼 것이다. 다만 이 비에 너무 많은 꽃이 상하고 어지러움이 아플 뿐이다. 젖은 마음을 위로해주던 책을 덮고 창밖을 바라본다. 창밖은 아직 미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