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것도, 자랑할 것도 별로 없던 유년의 내게 아마도 남보다 조금 더 주어진 것이라면 책이었을 것이다. 그 시절, 시골의 가난한 집에서는 아이들이 읽을 만한 책이 그리 많을 리가 없었다. 나는 문자로 된 것이라면 닥치는 대로 읽어댔다. 그 맹렬한 욕망은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처럼 내 목을 졸랐다. 글자를 깨치고 교과서를 맨 먼저 외워버렸고(얼마나 읽고 또 읽었던지 아직도 초등학교 몇 학년까지의 국어책은 문장 그대로가 떠오른다. ‘햇볕 따뜻한 어느 봄날이었습니다. 노랑 병아리 한 마리가 농장 쪽으로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 그 다음에는 다섯 살 위의 오빠 교과서를 읽었고, 집안에 굴러다니는 월간 <새농민>을 읽고, 오빠들이 몰래 돌려 읽던 빨간 표지의 책도 6권, 8권까지 다 섭렵했다. 기드온 협회에서 나눠준 신약성서도 알뜰하게 읽었고 오빠의 국어사전도 먹어 치웠다. ‘문자’ 자체가 고팠던 것 같다.
가난했지만 유별나게 책을 좋아했던 분위기 덕분에 꽤 여러 권으로 된 한국 단편 문학 전집이 있었는데, 나중에 소설 공부를 한답시고 돌아다닐 때 끝까지 못 고치면서 눈총을 먹은 의고체의 말투들이 초등학교 이삼 학년 때 읽은 그 책들에서 받은 것이었다. 책은 유일한 내 친구였다.
오늘 그토록 오래 나를 지켜주었고 함께 했던 어린 시절의 그 이름들에게, 처음 만났을 때부터 여전히 변함없는 내 사랑과 마음을 다해 감사를 보냄으로 수상소감을 대신한다. 아킬레우스와 히스클리프와 김환과 박정만, 그리고 이제 두보의 이름을 더해서. 내 보잘것없는 삶에 그대들의 이름과 고통이 내 삶의 위로였고 빛이었고 꿈이었으니. 송대의 범중엄은 ‘심광신이, 총욕개망(心曠神怡 寵辱皆忘)’, 마음이 넓어지고 정신이 즐거워져 영광과 욕됨을 모두 잊는 경지를 말한 적이 있다. 문리를 깨치는 즐거움과 행복한 책 읽기가 있는 오늘이, 내겐 그러하다.
부족한 글을 선정해주신 심사위원과 방송대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를 드린다. 대전 충남지역대학 중문과 학우들과 선배님들께, 그리고 장호준 학장님께도 특히나 감사드린다. 나보다 더 기뻐해 주시고 축하해 주셨다. 앞으로 더 배움을 쌓아가며, 좋은 도반이 될 수 있기를 노력하겠다.

박성실(중어중문학과 3학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