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독 … 토도독 … 톡톡톡”
이 소리는 산들바람이 숲속에 불기 시작하자 눈을 질끈 감은 내 형제자매들이 결정을 하고 아래로 뛰어내리는 소리다. 숲속엔 서로를 응원하는 소리와 수다쟁이 딱새도 욕심쟁이 산까치도 같이 소리를 질러주어서 시끌시끌 소란스러웠다. 나는 아직도 결정을 하지 못하고 안절부절하다 결국은 그들과 함께 하지 못하고 나뭇가지에 여전히 매달려 있다.
나는 북한산 자락길의 15번 표지판이 있는 곳에 있는 졸참나무의 중간쯤 달려있는 도토리들 중에 하나이다. 15번 표지판을 알게 된 건 언젠가 엄마랑 같이 산책길을 걸어오던 작은 아이가 계속 숫자를 읽어주면서 걸었기 때문이었다.
“엄마, 엄마! 여기도 도토리 나무가 있어. 여기는 15번이야.”
“그러네. 이 나무는 졸참나무라고 해. 역시 도토리가 열리는 나무야. 가을에 오면 아마 도토리가 많이 열릴거야.” 하고 이야기를 하면서 지나갔다.
우리는 북한산 숲 속 중간쯤에 나무로 만든 멋진 산책길 밖에 심어진 졸참나무에 자라고 있는 도토리들인것이다. 사람들은 매일 매일 운동을 하면서 우리를 지나쳐갔다.
따스한 햇살이 어른거리는 날에 눈을 뜬 나는 그때부터 운동하는 사람들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사는 곳의 주변에는 아카시나무, 소나무, 떡갈나무, 졸참나무, 굴참나무, 물오리나무, 당단풍나무, 팥배나무, 상수리나무등이 옹기종기 모여서 살고 있다. 우리 옆에서 자라는 떡갈나무는 은근히 우리를 무시하고는 했다. 도토리 중에서 제일 작게 자라는 우리보고 자신의 나뭇잎을 흔들어서 열매를 보여주고는 했다.
우리는 봄에는 온갖 숲에서 자라는 나무와 풀들의 소리를 들으며 행복했다. 또한 여러 가지 곤충들도 합세하기도 하고 가끔씩은 고양이랑, 개들, 새들과 드물게는 멧돼지도 보기도 했다. 그래도 내가 가장 흥미를 가진 건 천천히, 혹은 빠르게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었다. 매일 보는 사람들도 있었고 한번 보고는 다시는 오지 않는 사람도 있었고 재잘거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아이들은 귀엽긴 했지만 장난꾸러기들은 돌을 나무에 던지기도 하고 심지어 폴짝 뛰어서 우리 잎사귀를 잡아 뜯어가기도 했기 때문에 우리들은 아이가 보이면 바짝 긴장을 하고는 했다.
언제부터인가는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다녀서 누가 누군지 잘 분간이 되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은 자주 보는 사람들이라서 누군지 알 수도 있었다. 그중에서 내가 가장 관심이 가는 사람은 나이 드신 어떤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다른 사람들처럼 우리를 휙 지나가지는 않았다. 항상 천천히 걸어가다가 심어져있는 나무들과 꽃들을 한 번씩 살짝 어루만져 주고는 멈추어 서서는 이야기를 걸어주고는 했다.
조용한 목소리여서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우리를 쓰다듬으며 토닥여 줄때는 구름이 잔뜩 낀 흐린 날이었지만 왠지 따뜻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나는 사람들이 만지는 게 싫었지만 이 할머니의 손길은 왠지 햇살같이 나른하게 따뜻했다.
“아이고, 너는 여기서 열심히 살고 있구나” 하고 말을 걸어주었다. 우리에게 말을 걸어주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에 할머니가 지나가실 때마다 나는 인사를 하고 싶었다. 내 형제들은 사실 할머니에게는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형제들의 관심사는 도토리가 되려고 열심히 몸단장을 하고 옆 나무들 다른 도토리열매들의 근황을 알고 싶어 했다.
“얘, 저쪽 도토리들은 털옷을 입고 자란다네. 믿어지니?” 하거나 “어머, 어머 쟤는 왜 웃고 난리야” 하고 단풍나무가 계속 웃는 이유를 알고 싶어했다. 단풍나무는 알고 봤더니 자신의 몸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 넝쿨 때문에 간지럼을 타는 것이었다.
“별일이야. 담쟁이 넝쿨이 타고 오른다고 웃는 나무는 첨 보았어. 뭐가 간지럽다는 거지?” 하고 흉을 보기도 했다. 나는 목을 쑥 빼고 옆에서 웃고 있는 작은 단풍나무를 보았지만 아직 봄이라 초록 초록한 다섯 장의 잎사귀를 흔들면서 즐거워하고 있어서 나도 모르게 같이 웃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는 올망졸망 도토리들이 같이 자라고 있기 때문에 자리다툼을 늘 하느라 바쁘기도 했다. “얘, 저쪽으로 좀 가봐. 여기 좁잖아. 어이 … 거기” 하고 서로가 먼저 해를 보고 좀 더 통통하게 자라나고 싶어 했다. 내가 자라고 있는 가지의 도토리들은 한 개는 늘 잠을 자느라고 도통 끼어들지 않았고 다른 도토리들도 다들 느긋한 편이어서 다행히 자리다툼을 크게 하지는 않았다.
어느 날은 할머니가 혼자 오신 게 아니라 동행이 있었다. 할머니 옆에 할머니 보다 더 작은 여자가 봄인데도 꽁꽁 싸맨 옷을 입고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할머니의 딸이었다.
할머니는 우리를 가리켰다.
“수연아, 저 나무 보이니? 비스듬하게 자라고 있는데 어찌나 튼튼하고 야무지게 보이는지 모르겠다. 나중에 도토리가 아주 주렁주렁 열릴 거야.”
“엄마, 그럼 나 여기에 도토리들이 많이 자라게 되면 도토리가루 사다가 도토리묵 만들어줘. 엄마가 해준 도토리 묵 맛있잖아. 아픈것도 다 나을 것 같애.”
“그러자. 저 나무에는 도토리가 작게 열리는데 작은 도토리들이 더 맛있니라.” 할머니랑 딸은 우리 앞에 앉아서 한참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할머니는 매일 오시지는 않았다. 며칠 지나도 오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사실 그때의 봄에는 우리는 너무 재미있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계속 기다리지는 않았다. 북한산 자락길에는 사람도 많았고 볼 것들도 많았다. 온 산에 아카시아 꽃냄새가 진동을 할 때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지나다녀서 산 전체가 가 하루종일 시끌시끌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니 쓰레기들도 생기고 소음에 나무나 꽃들도 꺽어 가기도 해서 우리는 바짝 긴장을 하기도 했다. 산에는 아카시아 뿐만이 아니라 병꽃나무와 정향나무, 황매화, 찔레나무의 꽃들이 차례대로 피어나서 화려하고 향기도 좋아서 사람들이 산으로 몰려오는 이유도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는 무럭무럭 햇살과 바람으로 자라고 있었다. 나도 졸고 있는 옆에 도토리를 툭툭 건들이면서 딱새라도 와서 가지에 앉을 때면 수다쟁이 딱새의 이야기를 듣고는 했다. 딱새는 여기저기 다닌 곳이 많아서인지 말도 많았지만 아는 것도 많아서 놀러 올 때면 항상 새로운 이야기를 듣게 되기도 했다.
산 아래에서 계속 울리고 있는 소리가 아파트가 들어서는 공사장의 소음이라는 것도 딱새로 인해서 알게 되었으며 사람들 사이에서 나쁜 질병이 돌고 있어서 입을 막는 마스크를 쓴다는 것도 알게 되기도 했다.
“별일이다. 별일이야. 내가 오래 살았어도 저렇게 다 같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걸 보게 될 줄은 몰랐네.”하고 건너편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리기다 소나무 할머니가 한 마디하셨다.
“우리 같은 나무들을 많이 꺾어서 그런 거 아닐까요?”하고 기리다 소나무 아래서 자라고 있는 산개나리가 말했다.
“저 좀 보세요. 아직 다 자라지도 않았는데 꽃만 피기만 하면 잘라가고 있다니까요.”하고 투덜거렸다.
그럼에도 산은 점점 푸르러지고 기온이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점점 졸음이 오는 날이 많아져서 하품을 하면서 졸기도 했지만 할머니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할머니랑 딸을 만난 건 후덥지근한 더위가 시작되고 있는 여름의 초입이었다. 더운 날 임에도 딸은 긴팔과 긴 옷을 입고 아주 천천히 걷다가 내 아래에 있는 곳에 멈추어 섰다. 벤치에 잠시 앉았는데 몹시 힘든 얼굴로 할머니의 어깨에 기대고 있었다.
“엄마랑 같이 여기 오니까 너무 좋아. 산 냄새도 좋고 엄마 냄새도 좋고… 엄마가 만들어주는 도토리묵을 꼭 먹고 싶은데…. 꼭 도토리가 열리는 가을에 먹고 싶어. ” 할머니는 말도 없이 딸의 손을 잡고 계셨다.
“가을에는 여기가 더 예쁘겠지? 단풍도 울긋불긋 하고… 가을에 꼭 다시 오자.”
할머니는 그저 딸의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고 계셨다. 그날이 마지막으로 나는 다시는 할머니와 딸이 같이 있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할머니도 오랫동안 산에 오지 않으셨다.
우리는 점점 크게 자라고 있었다. 악을 쓰던 매미도 점점 사라져가기도 했고 쨍쨍하던 해도, 오랫동안 쏟아지던 빗줄기도다 지나가고 어느날 문득 바람이 시원해지고 있었다. 간지럽다고 그렇게 웃어대던 단풍나무도 어느샌가 웃음도 멈추고 점잖아지고 있었다.
“어랏.” 갑자기 나는 내 몸이 점점 단단해지고 있는 게 느껴졌다. 늘 잠만 자던 내 옆자리 도토리도 언젠가부터는 눈을 뜨고 하늘을 뚫어져라 쳐다 보기도 했다.
“넌 어떻게 할 거야?” 어느 날 나를 보고 묻기도 했다.
“뭘 어떻게 해?”
“우리의 꿈이 뭐야?”
“그야….” 나는 말을 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렇다. 우리가 눈을 뜨고 도토리로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의 꿈은 단 한 가지뿐이었다. 그것은 바로 도토리가 단단해지고 나뭇가지에서 떨어지기 시작할 때부터는 우리는 바람을 타고 아래로 뛰어내려야 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흙으로 떨어져서 흙에서 싹을 틔워서 다시 도토리나무로 자라는 게 우리의 유일한 목표이자 꿈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몹시 위험하기도 했다. 잘 뛰어내려서 흙으로 떨어져야 하는데 가끔씩은 바람을 잘못 타거나 혹은 사람들이나 다른 동물들에 의해서도, 자락길의 펜스나 나뭇길 위로 떨어지게 되면 거의 우리는 모두 다 사람들의 발에 밟혀서 부서지거나 깨져버리게 된다.
햇님과 바람과 산속의 모든 동식물들의 응원을 받으며 자랐지만 한순간의 선택으로 우리는 다시는 자라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언제 뛰어내릴 것인지 어디로 뛰어내릴 것인지는 몹시 중요하고 우리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의 선택이기도 했다.
“우리는 몹시 불리한 곳에 있어. 사람들이 다니는 쪽에 자라고 있기 때문에 잘못 뛰어내리면 저기 사람들이 다니는 길 위로 떨어질 수 있단 말이야. 되도록 안쪽으로 뛰어야 해.” 매일 잠만 자던 도토리치고는 몹시 논리정연한 말로 내게 알려주었다.
“우리가 흙 위에 떨어진다고 뿌리가 자라고 땅에서 자랄 확률도 몹시 낮아. 여기 사는 청솔모나 멧돼지, 다른 동물들에 의해서 먹힐 수도 있지. ”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가 되면 있는 힘껏 안쪽으로 뛰어내려. 알겠니?”
나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나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도토리가 도토리로 자라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왜 마음 한편이 간질간질 한 건지 모르겠다. 얼마 전부터 우리 도토리 나무 한 편에 자라고 있는 버섯 때문은 아닐 것이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단풍나무가 붉어지고, 풀벌레들의 노래가 들리기 시작하면서 성질 급한 도토리는 벌써 떨어지기도 했다.
“조심해. 안녕” “잘 있어. 나는 간다.” 시끌시끌 도토리들의 작별인사와 격려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었다. 우리는 흙 속에 잘 떨어지는 도토리들에게는 박수를 보내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밟힌 도토리를 보고는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산속의 모든 나무들이 몸을 흔들어서 초록이던 색들이 점점 빠지고 짙은 갈색이나 흙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내 옆의 짝꿍 도토리는 하늘과 바람을 가늠하고 생각에 잠기다가 어느 날 내게 말했다.
“오늘이 떨어지기 딱 좋은 날씨야. 북서풍이 불기 시작하고 바람의 흐름을 타고 나는 흙으로 돌아갈래. ” “넌 언제 떨어질 거야?” 하고 내게 물었다.
나도 내가 왜 망설이는지 잘 모르겠다. 옆 떡갈나무의 도토리를 지나가던 사람들이 한 움큼 꺾어가는 걸 보고 무서워서 덜덜 떨었는데도 아직도 뛸 준비가 안 된 것 같다. 결국 내 옆 짝꿍도 하나둘셋 하고 미련 없이 떨어졌고 그 애 말대로 흙 속으로 잘 떨어져서 모두들 환호성을 질러주었다. 거의 다 도토리들이 떨어지고 얼마 남지 않은 날, 나는 내가 왜 결심을 못 했는지 알게 되었다. 내 앞에 바로 할머니가 눈물을 흘리고 서 계셨다. 말없이 우시면서 우리 도토리나무를 붙잡고 계셨다.
“이때구나!” 나는 그때 눈을 딱 감고 흙이 아니라 할머니의 발아래로 힘껏 뛰어내렸다.
할머니는 우시다가 나를 내려다보다 허리를 굽혀 나를 잡아 올리셨다. 할머니의 온기가 느껴졌다.
“우리 수연이가 꼭 도토리묵을 먹고 싶다고 했는데… 너, 나랑 같이 갈까?” 나는 할머니랑 같이 가서 도토리묵이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내 주변의 모든 나무들이 숨을 헉 하고 멈추고 수다쟁이 딱새도 입을 다물었다. 나는 흙에서는 도토리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할머니의 마음속에서 푸르게 푸르게 도토리로 자랄 수 있을 것 같았다.
혹시나 북한산 자락길을 지나간다면 도토리나무 아래에서 자라고 있는 작은 도토리나무들을 살펴봐 주세요. 모두의 응원을 받고 땅에 떨어진 작은 도토리 열매에서 자란 도토리나무에요. 나는 북한산 자락길에서 자란 졸참나무 도토리였어요. 잊지 말아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