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U광장   프리즘

방송대에 처음 출근한 날, 대학로의 파릇파릇한 나무들과 초가을의 청명한 하늘을 잊을 수가 없다. 임용장 수여식에서의 따뜻한 환영과 연구실에 미리 마련된 책상과 컴퓨터를 보며 신임교원에 대한 학교의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가진 재능과 경험을 이곳에서 앞으로 어떻게 펼칠 수 있을까 기대하며 새 시스템에 적응하고 있다.


내가 전공한 ‘보건경제학’은 한정된 보건의료자원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다루는 분야다.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공적 보건의료시스템을 운영하고 있고 보건의료서비스를 구매하기 위해 자원을 지출하는 결정은 정부나 공공기관에서 담당한다. 이를 제3의 지불자라고 하며 우리나라는 국민건강보험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보건의료서비스의 소비, 공급, 구매에는 아주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 여기에 도덕적 해이, 의뢰인-대리인 관계를 비롯한 경제학의 기본 이론들이 적용된다.


중요한 보건의료자원 중 하나인 의약품을 예로 들어보자. 값비싼 항암제를 개발한 제약사는 제품을 높은 가격으로 판매하려고 하고, 위중한 환자들은 새로운 시도에 희망을 건다. 새로 도입된 치료가 건강보험에 적용되는 순간 사용량은 급증한다. 공적 보험이 서비스와 물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하고 행위를 통제해야 하는 구조다.


예컨대 이런 질문을 던져 보자. 공적 건강보험이 고가의 중증 희귀질환 치료제와 안구건조증에 사용되는 인공눈물 중에 어떤 것을 우선으로 보장해야 하는가? 이와 같은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학술적·정책적으로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효율성을 따지는 공리주의를 기본으로 위급한 환자를 먼저 보장해주자는 윤리적 원칙뿐 아니라, 건강보험 제도에 대한 다수의 수용성을 고려한 정치적 접근도 작용한다.


많은 부문에서 변화가 일고 있는 제4차 산업혁명 시대다. 보건의료기술 영역도 기상천외하게 발전하고 있다. 기술의 허가와 건강보험 적용이라는 의사결정도 진화하고 있다. 1회 주사에 25억 원짜리 초고가 신약이 있는가 하면, 환자의 혈액에 있는 면역세포를 채취해 유전자재조합을 거쳐 면역기능을 증강시킨 뒤 다시 환자에게 주입하는 세포치료항암제도 있다. 이것들은 의약품인가?


여기서부터의 약은 더 이상 ‘물질’이 아니고 세포와 실험실적 기술과 의료인의 시술이 조합된 복합 기술이다(그렇지만 의약품으로 허가받았다). 이에 맞춰 규제와 정책이 변해야 하며, 나는 이러한 혁신 기술과 관련된 정책과제와 학술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나의 이전 직장이었던 글로벌 제약회사와 건강보험공단에서의 경험은 균형 잡힌 시각으로 연구와 교육을 수행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이렇게 비싼 첨단 의료기술들이 과연 인류의 건강을 얼마나 향상시킬 수 있냐는 비판도 한다. 따지고 보면, 건강한 사람들의 건강을 지키고, 질병을 예방하도록 하는 것이 개인에게나 사회에서나 저렴한 투입으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좋은 개입이다. 우리나라는 1995년 국민건강증진법을 제정해 중장기 건강증진종합계획을 발표하고 이에 따라 각 영역에서 건강증진 활동을 펼치고 있다. 보건환경학과 학우분들 중 많은 수가 이와 관련된 일에 종사하거나 계획하고 있다. 첨단의료기술을 제도권 안으로 도입하는 문제와 예방건강증진 문제는 내가 몸담고 있는 분야에서 수행하는 중요한 두 마리 토끼다. 앞으로 수업과 여러 활동을 통해 나의 경험과 지식이 때로는 재미난 일화로, 때로는 이론적 소양으로 녹아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혜재 (방송대 교수·보건환경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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