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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직을 떠난 지 벌써 8년째가 됐다. 지금은 시골에서 참기름을 짜며, 부모님을 도와 텃밭을 가꾸면서 살고 있다. 사람들이 내게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왜 교직을 그만두었는가?”다. 많은 시행착오 끝에 얻은 가장 편리한 대답은 “가르치기 힘들어서요”다. 다른 답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질문이 이어진다. 그러나 이렇게 답하면, 대부분 “요즘 선생님들, 애들 가르치기 참 힘들지”라고 맞장구쳐준다.


10년의 교직 생활 가운데 9년을 ‘학생부’에서 근무했다. 그렇지만 9년을 같은 부서에 있으면서 아이들과 무척 많이 부대끼며 울고 웃었다. 내 성격에 잘 맞고, 내가 생각하는 교사로서의 이상향에 가장 부합하기에 매년 업무분장에서 학생부 근무를 첫 번째로 지망했을 정도였다. 교직을 사랑했지만, 학교 교실에서 벌어진 작은 일 하나가 결국은 미련 없이 학교를 떠나게 했다는 것만 밝히고 싶다.


교직 생활을 접고 처음 3년은 닥치는 대로 일했다. 영화촬영장에서 스틸사진 찍는 일을 해보기도 하고, 욕실에 여러 기구를 설치하고 예쁘게 꾸미는 인테리어 기술도 배웠다. 그렇지만 학원을 차리자는 친구의 말도, 학원강사로 일해보라는 가족들의 권유만큼은 모두 거절했다. 다시는 가르치는 일만큼은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욕실 인테리어라는 것도 ‘공사판에서 굴러먹는 노가다’였다. 정확히 100일 동안 인테리어 하시는 분을 따라다니며 허드렛일을 도와주고 기술을 배웠다. 100일 동안 수입이 없었다. 결국 3년 만에 모두 내려놓고 고향으로 돌아와 부모님의 가게에서 참기름 짜는 일을 하게 됐다. 마침 부모님께서 힘에 부쳐 방앗간 일을 못 하겠다고 하시며, 남에게 넘기려고 하던 때였다.


시골 생활 초기에는 스스로 패배자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러나 그때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만나고 천천히 생각이 바뀌었다. 열다섯 때부터 오직 ‘영어교사’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만 꿈꾸었기에 주변을 둘러보지 못했다. 다른 직업이나 생활은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시골 고향에 살면서 다양한 사람들의 삶에 눈을 돌릴 수 있었다. 소설이나 영화가 아닌 실제 삶에서 다양한 군상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며, 함께 웃고 있는 나를 보면 지금은 스스로 대견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방앗간의 주 고객은 노인분들이다. 우리 가게를 이용하는 분들의 평균연령이 70세 이상이다. 최근에 젊은 분들이 많아졌지만, 여전히 고령의 손님들이 많다. 고령의 손님들이라 각자의 삶에서 숨겨놓은 이야기들이 무궁무진하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어떤 수업보다 재밌다. 웃으면서 지혜를 하나씩 쌓아가는 것 같다. 어떤 내용이든, 어떤 형식이든 내가 받아들일 자세만 있다면, 배우는 것이 이렇게 재밌을 수가 있을까 싶다.


고령의 손님들은 매번 새로운 이야기를 해주신다. 물론 똑같은 말만 하는 분이 왜 없겠느냐만, 할머니, 할아버지가 겪은 세월만큼의 이야기를 나는 거의 매일 듣는다. 만일 내가 글쓰기에 재능이 있었다면, 아마 소설 10편은 썼을 것 같다. 모두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았을까 감히 상상해본다.


시골 생활 6년차. 이젠 학교에서 배우는 것만이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됐다.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알게 됐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재밌게 사는 것은 내가 하기 나름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혹시 모르겠다. 기름을 짜면서 방송대에서 새로운 공부를 시작해볼지도. 어쩌면 새로운 공부는 기름처럼 고소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김용 (전 영어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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