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음식과 권력

명예혁명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영국은 더 이상 왕위를 계승할 스튜어트 왕가의 자손이 없었다. 영국 의회는 부득이 독일에서 스튜어트 가문의 먼 친척을 데려다 왕으로 삼았다. 하노버 왕조의 조지 1세가 바로 그다. 그는 영국의 정치 상황을 잘 몰랐다. 영어도 알지 못했다. 당연히 정치적 실권은 의회가 쥐게 되고, 왕은 정치에서 배제됐다. 이때부터의 정치 형태를 입헌군주제라 하고, 이 형태가 빅토리아 시대를 지나 최근에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대까지 이어지게 된다. “왕은 군림은 하되 통치하지 않는다(The king reigns but doesn’t govern)”라는 말은 16세기 폴란드의 재상 얀 자모이스키가 “우리 국가는 국왕의 감독 하에 있는 공화국이다”라는 당시 폴란드 연합공화국의 정치 원칙을 요약한 것이다. 여왕은 빨리 먹고, 많이 먹고, 여러 번 먹었다. 워낙 빨리 먹어서 동석했던 귀족들은 제대로 먹어보지도 못하고 식기가 치워지곤 했다. 7, 8 코스로 된 한 끼 식사를 30분 내에 끝내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래서 함께 식사하는 사람들은 다 먹지도 못한 채번번이 코스만큼 접시를 시종에게 뺏겨야 했다. “여왕께서 승하하셨다. 모든 대문과 창틀을 검은색으로 칠하고 검은 커튼을 덮어 조의를 표하라!”1819년에 태어나 1837년 18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른 빅토리아 여왕(재위 1837.6.20.~ 1901.1.22)이 숨을 거뒀을 때 영국왕실은 위와 같은 지침을 내렸다. 긴 치세동안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군주로서 그녀는 다만 군림할 뿐 지배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다고 그녀가 허수아비였던 것은 아니었다. 영국인들은 여왕의 품격을 높임으로써 자신들의 자존심을 지켰다. ‘빅토리아풍’을 만들어낸 여제(女帝)빅토리아 시대, 빅토리아 풍, 빅토리아 무용, 예술 등의 복합어를 남긴 빅토리아 여왕은 무려 64년을 재위에 있었다. 여왕의 재위 기간은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era)’로 통칭하며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렸던 대영제국 최전성기와 일치한다. 그녀 소생의 자녀 아홉이 유럽의 여러 왕가 및 귀족 가문들과 혼인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유럽의 할머니’라고도 불린다. 앨버트라는 남자를 만나 빅토리아는 걷잡을 수 없는 사랑에 빠졌다. 그녀에게 그는 첫사랑이자 유일한 사랑이었다. 사랑의 황홀경을 표현한 그녀의 일기에 부끄러움은 어디에도 없다. 결혼식 날의 기억을 기록한 일기 한 부분이다.“나는 한 번도 이런 저녁을 맞이한 적이 없다. 더 없이 사랑하고 한없이 소중한 나의 앨버트 … 그가 보여준 격한 사랑과 애정은 내게 천상의 사랑과 행복감을 안겨주었다. 그건 내가 예전에는 느꼈으리라 희망조차 할 수 없었던 엄청난 감정이었다. 앨버트가 두 팔로 나를 꽉 끌어안았고, 우리는 입맞춤을 하고 또 하고 다시 또 했다! 그의 아름다움, 그의 달콤함, 부드러움이란 … 어떻게 이 고마운 마음을 전해야 할지. 이건 믿을 수 없는 축복이야! 오늘은 내 인생 가장 행복한 날이었어.”영국의 여왕이 아닌 사랑에 빠진 여자로서의 이런 모습 속에 드러나는 유약한 여성성과는 달리, 빅토리아 여왕은 단호하고 강인한 성격의 소유자였다.금슬이 각별한 탓인지, 빅토리아와 앨버트 둘 사이의 친밀감과 유대감 또한 컸다. 20년의 결혼생활 동안 무려 9명의 자녀를 낳았다. 결혼 기간의 반은 임신 기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빅토리아는 앨버트 공의 머리카락이 담긴 장신구를 달고 다녔는데 이게 유행이 되어 죽은 자를 기리기 위해 머리카락을 담은 장신구를 몸에 부착하는 풍습이 생겼다고 한다. 5피트 단신이지만 젊은 시절 그녀는 날씬했다. 군주로서 직무를 수행하며, 결정적으로는 결혼생활 20년 만에 남편 앨버트 공이 세상을 뜨자 그녀는 대식가요, 뚱보 여왕이 됐다. 권력자는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손에 넣고 당연한 얘기지만 먹고 싶은 것을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 그런데 늘 별미만을 맛본다거나 반드시 진귀한 음식을 원한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누구에게나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소박한 식단이 있기 마련이다. 빅토리아 여왕은 카레를 좋아했다. 13년 동안 여왕의 점심 메뉴가 된 카레모든 일에는 운명적인 만남이라는 것이 있다. 1887년 즉위 50주년 기념식에 인도 총독이 만들어 보낸 기념주화를 가져온 인도인 압둘 카림과의 만남이 그러하다. 예상치 않게 여왕은 카림을 친하게 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문쉬(우르드어로 ‘수행자, 스승’이라는 뜻)라 부르며 늘 친구처럼 지낸다. 어느 날 카림이 여왕에게 인도 전통 음식인 카레를 대접했다. 여왕은 카레 맛에 반해서 매일매일 치킨 카레를 만들라고 왕실 조리사에게 명령했다. 그리고 그녀가 죽을 때까지 13년 동안 점심 메뉴로 카레가 나왔다. 빅토리아가 제일 좋아하는 요리는 치킨 카레와 달(dal, 마른 콩류에 향신료를 넣고 끓인 인도의 스튜)이었다.커리는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대표적 인도 음식으로 인도사람들은 인더스 문명 시기부터 커리를 먹기 시작했다고 믿는다. 영어로 커리(curry), 타밀어와 힌디어로 카리(kari)라고 부르는 카레의 어원에는 크게 두 가지 설이 있다. 인도 드라비다어의 하나인 타밀어로 ‘국물 또는 소스’라는 뜻의 ‘카리’에서 유래됐다는 설과, ‘향기롭고 맛있다’는 의미의 힌두어 ‘투라리(turar)’로 불리다가, 후일 영국에 전해지면서 ‘커리’가 됐다는 설이다. 우리말에 들어와서 카레라고 불리는 이 음식은 강황을 비롯해 후추, 정향, 계피, 육두구, 카다멈 등 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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