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식물성의 사유로 읽어낸 역사 속의 여성

“여성은 헝겊인형이나 동물이 아니라 인간이다. 인간은 … 인간으로서 사랑할 때, 그리고 과거와 다른 미래를 발견하고 창조하고 계획할 때에만 비로소 한 사람, 한 인간일 수 있다.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창조할 능력이 있고 교육을 받은, 그토록 많은 여성들이 왜 가사와 아이 기르는 데서 ‘무언가’를 찾으려고 다시 가정으로 들어갔는지는 정말 수수께끼 같은 일이다. 이상하게도 의지에 찬 신여성들이 행복한 가정주부로 대치되던 지난 15년 동안에 세계의 영역은 더욱더 넓어지고 변화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현실 생활도 생물적이며 물질적인 궁핍에서 더 많이 해방됐기 때문이다. 여성성의 신화가 미국 여성들이 세계 속에서 성장하는 것을 방해한 것은 아닐까?” ―『여성의 신비』(1963), 「더없이 ‘행복한’ 주부의 등장」 중에서 그녀의 네트워킹 덕분에 미국 여성운동은 제2의 물결을 맞았고, 세계여성사는 새로운 장을 열었다. 한 그루 한 그루 건강한 나무를 가꾸어 거대하고 단단한 숲을 우리에게 선사했다.  폭풍과 지진의 시작1963년, 미국을 뒤흔든 두꺼운 책이 출판됐다.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은 안온하게 지내던 주부들에게, 일과 가정을 양립하느라 고달픈 워킹맘에게, 그들 곁을 지키던 남성들에게 폭풍이자 지진이었다. 그 책은 『여성의 신비(The Feminine Mystique)』이며 저자는 베티 프리단(Betty Friedan, 1921~2006)이다. 그녀는 아이 셋을 둔 전업주부로 다양한 여성의 삶을 직접 겪어본 스케일 큰 여성이었다. 아름다움과 능력을 갖췄지만 전업주부로 살아야했던 어머니의 모습을 지켜보며 자란 유태인 소녀, 미국 명문 스미스여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이 여성은 자기성취를 사랑에서 찾으려 했다. 그것은 1950년대 전후 미국의 사회상과 맞물려 있었다. 1950년대는 전쟁에서 돌아온 남자들이 포근한 가정을 꿈꾸던 시기였다. 그곳에는 일찍 결혼한 갓 스물의 아내와 그녀가 낳은 수많은 자녀들이 기본이었다. 그 이전의 독립적인 여성상과는 달리 여성성의 신화는 여성의 가치와 목표가 자신의 여성다움을 완성하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베티 프리단도 그렇게 생각했다. 성공한 사업가인 아버지조차도 유태인이어서 지역사회에서 따돌림 당했고 그녀 또한 학창시절에 같은 이유로 서러움을 당했다. 그녀는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줄 남성, 사랑을 갈구해왔다.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대학원 장학생으로 뽑혀 계속 심리학을 연구할 수 있는 길이 열렸음에도 그녀의 선택은 연인과의 결혼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여성의 신비, 여성성의 신화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비좁은 지하방에서 시작한 행복한 신혼이었다. 하지만 남편의 사업 수입으로는 아이들의 육아와 생계가 쪼들리자 궁여지책으로 일감을 찾게 되면서 프리랜서로서 잡지사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여성성의 신화,  베일을 벗기다행복하게 세 자녀를 낳고 살던 그녀에게 엄청난 계기가 다가왔다. 바로 1957년 스미스대학 동창회의 제안이었다. 졸업 후 15년이 지난 동창들의 현황을 조사하는 일이었는데, 이 일을 계기로 베티 프리단은 여성성의 신화라는 베일을 하나씩 벗기게 됐다. 당시 미국사회는 가족의 신화를 강조했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여성을 뒀다. 1950년대 말에 1천400만 명의 미국 소녀들이 17세가 되면 약혼을 하고 10대 후반 혹은 20대 초반에 결혼했다. 이처럼 일찍이 결혼해 아이를 넷 낳고 교외에 있는 멋진 저택에 사는 것이 당시 미국 여성들의 일반적인 꿈이었다. 스미스대학 졸업생들도 이 신화의 세례를 받고 축복받은 결혼 속으로 다투어 들어갔다. 하지만 주부로서의 삶 속에는 자아실현이 없었다. 우울한 주부들은 정신과를 찾았고 의사들은 그들에게 ‘가정주부증후군’이란 병명을 선사했다. 그즈음 베티의 설문과 인터뷰가 시작된 것이다. 베티는 이 속에 거대한 광맥이 있음을 알았다. 그녀는 이 결과를 책으로 펴내기로 했다. 끈질긴 학구열과 완벽주의로 5년에 걸쳐 원고를 완성했다. 그리고 이 책은 폭풍과 지진이 됐다. 서구 역사에서 똑똑하고 현명한 여성은 철저히 배척됐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미국 근대까지 내려온 ‘마녀처형’이다. 베티도 처음에 그런 취급을 받았다. 유태인인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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