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기후위기가 던진 질문들

기후위기를 놓고 많은 전문가들이 해법을 제안하고 있는 가운데, 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 초대 원장을 지냈던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커뮤니케이션)는 조금 색다른 주장을 제안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기후위기의 주범=탄소라는 단순 도식을 거부하는 그는, 지금 인류가 머리를 맞대야 하는 문제는 ‘탄소중립’보다는 기후변화에 ‘적응’하는 일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탄소중립의 열기가 뜨겁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하지 못하면 지구가 펄펄 끓어오르게 될 것이라는 UN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의 절박한 주장 때문이다. 물론 지구의 대기가 빠르게 뜨거워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지구가 열에 들떠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구의 대기 환경 변화로 고통을 겪는 것인 ‘지구’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지구가 방출하는 열기를 가둬서 대기를 뜨겁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은 ‘탄소’가 아니라 ‘이산화탄소’다. 탄소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수증기’도 대기 환경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온실가스다. 사실 ‘탄소’가 기후를 망치고 있다는 지적은 우리의 실수를 탄소에게 떠넘겨버리겠다는 비겁한 주장이다. 더욱이 이산화탄소가 지구 생태계에 악역만 하는 것도 아니다. 이산화탄소는 녹색식물의 영양분으로 지구를 푸르게 만들어주는 소중한 물질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기후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기술적 적응과 사회·제도적 적응 노력을

모두 동원해야만 한다. 점점 더 잦아지는 자연 재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는 노력이 기본이다.


나날이 심각해지는 기후위기
지구 온난화에 의한 기후위기가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다. 우리가 직접 경험하고 있는 일이다. 전 세계가 폭염·폭우·가뭄·산불 등의 끔찍한 기상 이변에 시달렸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었다. 80년 만의 폭우로 서울 강남이 물바다가 돼버렸고, 추석 직전 거제도에 상륙해서 고작 2시간을 머물렀던 제11호 태풍 힌남노의 피해도 심각했다. 일본·대만·중국·필리핀도 기록적인 가을 태풍에 시달렸고, 미국도 초대형 가을 허리케인에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18세기 산업혁명 이후에 지구의 평균 표면 온도는 이미 1.09도나 높아졌다는 것이 기후학자들의 주장이다. 산업혁명 이후 지구의 평균 온도가 지속적으로 상승했던 것은 아니다. 실제로 지구의 평균 온도가 본격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부터였다. 현재의 상황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지난 5월의 전 세계 평균 기온은 20세기 예년보다 0.77도나 높았다는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의 분석도 있다. 20세기 평균보다 높은 온도가 37년 이상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온난화의 완화를 위한 탄소중립
오늘날의 기후위기는 ‘인류학적 요인’에 의한 것이고, 우리는 ‘인류세(anthropocene)’에 살고 있다는 주장이 있다. 인류가 집중적으로 소비하기 시작한 석탄과 같은 화석 연료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가 문제라는 것이다. 실제로 1750년, 277ppm 수준이었던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2022년 8월에는 417ppm으로 높아졌다.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는 지구 표면에서 반사되는 적외선을 집중적으로 흡수해서 지구 온난화를 일으키는 대표적인 온실가스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에 잠시 줄어들었던 이산화탄소의 배출량은 1년 만에 다시 364억 톤으로 늘어나고 말았다.
2050년까지 지구의 평균 기온 상승 1.5도를 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IPCC의 강력한 요구다. 2020년 10월 대통령의 국회 시정 연설 덕분에 우리 사회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탄소중립(carbon neutral)’이 바로 IPCC가 강조하는 가장 대표적인 지구 온난화 ‘완화(mitigation)’의 방법론이다. ‘넷제로(net zero)’ 또는 ‘제로 카본(zero-carbo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탄소중립은 2009년 코펜하겐 협약에서 처음 언급되기 시작했고, 2015년 파리 기후협약에서 탄소시장·탈탄소화와 함께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우리 정부도 국제 사회에 탄소중립의 목표를 약속했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의 40%로 감축하고, 2050년까지 실질적인 탄소중립을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탄소중립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가정에서 난방·온수·취사를 위해 사용하는 천연가스(LNG)도 포기해야 하고, 제철·정유·시멘트 산업도 포기해야 한다. 운송용으로 사용하는 휘발유·경유를 대체하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탄소중립의 규모는 엄청나다. 앞으로 7년 동안에 포스코 크기의 기업 4개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를 포기해야 하고, 석탄과 LNG 화력도 모두 원전·태양광·풍력을 비롯한 무(無)탄소 전원으로 교체해야 한다. 기술을 확보하는 일도 어렵지만, 비용을 마련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더욱이 가장 현실적인 무탄소 전원인 원전을 포기하면 우리에게 탄소중립은 그림의 떡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2018년 우리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7억2천760만 톤이었다. 우리 처지에서는 적지 않은 양이지만, 전 세계 배출량(366억 톤)의 1.99% 수준에 불과하다. 우리의 탄소중립이 전 지구적 기후위기의 완화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잘못된 진단, 합리적 처방 가로 막아
기후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진단이 잘못되면 합리적인 처방은 불가능해진다.
600만년 전 아프리카 남쪽의 관목 숲에서 처음 등장한 인류에게 어둠과 추위를 극복하고, 먹을 것을 찾아내고, 맹수의 공격을 피하는 기술을 확보하는 일은 결코 만만찮은 부담이었다. 무엇보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때로는 흉포하게 돌변하기도 하는 자연 환경에 적응하는 노력이 필요했다.
누구나 인식할 수 있는 날씨와 달리 기후의 변화는 개인의 차원에서 체감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지구 온난화에 의해 더욱 잦아지고, 심각해지는 극한 기상 현상에 대한 적극적인 적응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빠르게 변화하는 기후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기술적 적응과 사회·제도적 적응 노력을 모두 동원해야만 한다.
점점 더 잦아지는 자연 재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는 노력이 기본이다. 다양한 재해에 대응하기 위한 정교한 매뉴얼이 필요하고, 둑을 튼튼하고 높게 쌓고, 냉난방 설비를 충분히 갖추기 위한 사회적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안전에 대한 투자를 낭비로 여기는 사회에서는 빠르게 변화하는 기후에 적응할 능력을 기대할 수 없다. 상습 침수 지역에 대형 수로를 건설해야 한다. 재해에 의한 피해를 줄이기 위한 제도를 정비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주거 환경도 개선해야 하고, 새로운 기후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미국 코넬대 화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프린스턴대 연구원을 거쳤다. 초대 탄소문화원 원장을 지냈으며, 현재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로 있다.환경에 맞는 품종의 농작물도 개발해야 한다. 우리의 생활양식도 완전히 뜯어고쳐야 한다. 모두 상당한 시간·노력·투자가 필요한 일이다.
기후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은 화려한 구호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천재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이 “악령이 춤추는 세상에서 우리를 지켜줄 수 있는 유일한 등불”이라고 했던 ‘과학’을 믿을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겉으로만 그럴싸한 구호로 채워진 정치적 선동은 철저하게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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