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U광장   강성남의 그노시스

그는 율리우스력으로 1642년 크리스마스에 돌로 지은 농가에서 출생했다. 조산아로 태어났기 때문에 너무 작아서 1.14리터짜리 머그잔에 쏙 들어갈 정도였다고 전한다. 게다가 농부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기 석 달 전에 사망했으니 유복자다. 보리와 가구, 키우던 양들을 유산으로 남겼다. 그가 3세 때 어머니 해나는 바너버스 스미스 목사와 재혼하는 바람에 외조부모 밑에서 자랐다. 새 남편 목사는 해나에게 그를 떼어놓고 올 것을 결혼 조건으로 요구했다. 나이가 해나보다 두 배가 많고 부유했던 스미스 목사는 젊은 아내를 원했지만 어린 의붓자식은 원치 않았던 것이다.


이 목사, 참으로 몰인정하다. 당연히 이 어린이가 의붓아버지에게 분노를 느꼈고 어머니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한 건 인지상정이다. 훗날 19세 이전에 자신이 저지른 죄 목록 열세 번째에는 “의붓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그들과 집을 불태우겠다고 협박한 죄”가 포함돼 있었다. 그다음에는 “일부 사람들이 죽길 바라고 그런 일이 일어나길 기대했다”가 나온다. 이어서 “많은 사람을 때렸다. 불결한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고 불결한 꿈을 꾸었다”라고 썼다.


그가 13세 때 어머니가 또다시 목사 남편을 여의고 친정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면서 목사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 2명과 아들 1명도 데려왔다. 그는 집에서 13킬로미터 떨어진 그랜섬의 학교에 다니다가 걸어 다니긴 멀어서 약제사이자 화학자인 윌리엄 클라크 집에서 하숙했다. 클라크에게 치료법과 물질을 끓이고 섞는 방법 등을 배웠다. 교장선생은 라틴어와 신학, 그리스어, 히브리어, 농부를 위한 측량 같은 실용 수학을 가르쳐줬다. 아르키메데스의 파이값 추정 방법도 가르쳤다. 생활기록부에는 그가 게으르고 주의력이 부족하다고 기록돼 있다. 그는 밤에 혼자 방에서 벽에 아르키메데스가 그렸던 원과 다각형 같은 도형들을 그렸다고 한다.


16세 때 어머니는 학교에 간 그를 데려와 농장 일을 시켰다. 그는 농사일이 싫어서 돼지들이 이웃 밭으로 들어가도 그냥 놔두고 울타리가 무너져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서 지방 법정에서 벌금형을 받기까지 했다. 어머니와 여동생은 자주 다퉜다. 그는 밭에 누워 책을 읽었다. 개울에 수차를 만들고, 물결이 생기는 소용돌이를 연구했다. 어머니가 주변의 권유로 그를 다시 학교로 보냈다.


시간이 흘러 1661년에 케임브리지대학교의 트리니티 칼리지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학비 면제 대가로 부유한 학생들 식사 시중을 드는 일을 해야 했다. 대학생 시절 그는 친구를 사귀지 않았다. 이 패턴은 평생 지속됐다. 결혼도 하지 않았고 우리가 아는 한 연애조차 하지 않았다. 거의 웃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는 대학 입학 후 2년 동안 아리스토텔레스 영향을 받은 스콜라철학(당시 표준 교과과정이었음)을 배워야 했지만, 점성술책을 읽고 수학에 큰 흥미를 느꼈다. 삼각법을 알아야 점성술을 이해할 수 있고, 삼각법을 알려면 기하학을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론』을 읽었다. 그 후 수학을 독학했다. 소수 계산, 기호 대수학, 피타고라스의 세 쌍 순열, 3차 방정식, 원뿔곡선, 무한소 등을 연구했다. 특히 데카르트와 무한과 구적법 연구에 관심을 둔 나머지 존 윌리스에게 큰 매력을 느꼈다.

 

행복은 추구의 대상이 아니라 발견의 대상이다.
경험으로 인해 인생이 결정되는 게 아니다.

스스로 경험에 부여한 의미에 따라 인생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뉴턴이 알려준다.

 

1665년 여름 케임브리사진 출처=heritage.unesco.or.kr지대학교는 흑사병 때문에 임시 휴교했다. 그는 고향 집으로 돌아갔다. 그다음 2년 동안 그는 세계적인 수학자가 됐다. 1671년 멱급수 방법을 개발했고 운동개념을 활용 기존의 접선 이론을 개선했다. 면적 문제를 해결한 기본 정리를 발견하고 증명했다. 곡선과 그 면적 함수들의 표를 작성했다.


그는 누구일까? 세상을 바꾼 사과의 주인공, 아이작 뉴턴이다. 우리가 세상에 대해 아는 건 뉴턴의 법칙 때문이다. 이후의 물리학 이론도 뉴턴에 빚진바 적지 않다. 뉴턴의 사과가 세상을 바꿨던 것이다.


행복은 낮은 정신력이 높은 정신력을 괴롭히지 않는 경지다. 뉴턴이 딱 이 경지에 이른 사람이다. 불운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도 그의 높은 정신력은 낮은 정신력에 굴하지 않았다. 행복은 잔디 이론으로 세상을 보지 않는 것이다. 저쪽 잔디가 더 푸르다, 좋다 비교하는 습관이면 불행하다. 행복과 불행은 조건이 아니고 선택이란 걸 뉴턴은 보여준다. 행복은 추구의 대상이 아니라 발견의 대상이다. 슬픔도 시간 속에서 풍화된다. 경험으로 인해 인생이 결정되는 게 아니다. 스스로 경험에 부여한 의미에 따라 인생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뉴턴이 알려준다.


지복(至福)이란 단어(beatitude)는 ‘복되게 하다. 행복하게 하다(beo)’와 ‘태도, 마음가짐(attitude)’이 합친 말이다. 즉 마음가짐이나 태도에 따라 행복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이란 삶의 의미이자 목적이요, 인간 존재의 끝’이라고 말했다.


네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운이고, 세 잎 클로버 꽃말은 행복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 주위에는 희귀한 행운보다는 수많은 행복이 존재한다. 태도만 바꾸면 행복이 보인다.

방송대 명예교수·행정학


4좋아요 URL복사 공유
현재 댓글 0
댓글쓰기
0/300

사람과 삶

영상으로 보는 KNOU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