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현대 명저 106선 해제

생명이란 무엇인가? 이토록 무구하면서도 무궁한 물음이 또 있을까? 원리적으로 생명을 이용해야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생명체는 다양한 층위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생명을 분별하거나 인식하고 있을 터이다. 세균을 비롯한 원핵생물에서 영장류에 이르기까지, 자연의 차원에서 모든 생명체에는 이러한 ‘물음’이 내재한다. 문화의 차원에서 인간 개개인은 자기 나름의 생명관을 정립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며, 나아가 생명 자체를 사유하려고 한다. 보편과 근본의 탐구를 동반하는 이러한 물음은 유사 이래 끊임없이 던져졌고, 인류가 존속하는 한 계속될 것이다. 인류 정신사에 변곡점 찍은 사건에르빈 슈뢰딩거(Erwin Schrodinger, 1887∼1961)의 『생명이란 무엇인가?: 물리학자의 관점에서 본 생명현상(What is Life?: The Physical Aspect of the Living Cell)』(1944)는 이와 같은 인류의 정신사적 흐름에 변곡점을 찍은 하나의 사건이다. 이 저작은 1943년 2월, 아일랜드 더블린(Dublin)의 트리니티 칼리지(Trinity College)에서 열린 슈뢰딩거의 연속 공개 강연을 토대로 출간된 것이다. 1887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빈(Wien)에서 태어난 슈뢰딩거는 양자계의 파동함수를 구하는 ‘슈뢰딩거 방정식’(1926)으로 양자역학의 기초를 확립하고 ‘슈뢰딩거의 고양이’(1935)라는 사고실험을 통해 양자역학의 불완전성을 설명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33년에는 “새롭고 생산적인 형식의 원자 이론을 발견한” 업적으로 영국의 물리학자 폴 디랙(1902∼1984)과 함께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이처럼 물리학에서 ‘성공’을 거둔 그가 이후 주류 물리학계와 다소 거리를 두고 일견 생물학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생명의 문제에 몰두한 것은 “모든 것을 포괄하는 통일적인 지식에의 열망”을 품고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당시에는 갓 탄생한 양자역학이 생명의 신비를 풀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 많은 물리학자가 생물학에 관여했다. 양자역학의 창시자 중 한 명인 닐스 보어(1885∼1962)는 자신의 ‘상보성 원리’로 생명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이에 영향을 받은 막스 델브뤼크(1906∼1981)는 유전자가 원자 103(=1,000)개 정도로 이뤄진 분자일 것이라는 ‘델브뤼크 모델’을 제시했다. 바로 이 모델로부터 슈뢰딩거는 생명 물질이 이미 확립된 ‘물리학의 법칙들’뿐만 아니라 아직 발견되지 않은 ‘물리학의 다른 법칙들’을 통해 해명될 것이라는 결론을 도출하고 이것이 『생명이란 무엇인가?』의 유일한 동기라고 언명했다. 생명체를 작동시키는 그러한 새로운 물리학 법칙은 양자역학의 원리일 수밖에 없다는 논조가 이 저작의 저변에 깔려 있다. 이 책이 과학사를 수놓는 ‘고전’으로서의 가치만 지니는 것은 아니다. 미시세계와 거시세계의 관계를해설한 현대과학의 교양서로도여전히 읽힐 수 있으며, 슈뢰딩거의 의도와 달리 양자역학과 ‘담을 쌓은’ 현대의 분자생물학과 그 파생 분야에 시사하는 바도적지 않다.생명체의 작동과 ‘음의 엔트로피’매우 적은 수의 원자로 구성된 유전자가 안정적인 구조를 유지하며 유전 정보를 전달하는 현상을 통계적인 질서를 다루는 고전물리학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데, 돌연변이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에 대해 슈뢰딩거는 양자역학의 입장에서 유전자 내부에 하이틀러-런던 이론(Heitler-London theory)에 의한 결합이 존재하며, 돌연변이는 어떤 안정상태에서 다른 안정상태로 이행하는 양자 도약(quantum jump)이라는 가설을 세운다. 그리고 유전자가 비주기적 결정(aperiodic crystal)이기 때문에 적은 수의 원자로도 질서가 유지되고 무수한 배열이 가능해 유전 정보를 일종의 ‘암호문(code-script)’의 형태로 저장할 수 있다는 논의를 전개한다. 생명체가 “질서로부터의 질서”를 만들어내는 장치를 표현하는 이러한 예견은 1953년에 제임스 왓슨(James Watson, 1928∼)과 프랜시스 크릭(Francis Crick, 1916∼2004)이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함으로써 그 진가가 증명됐다.그런데 질서가 붕괴해 평형상태에 도달하는 무생물과 달리, 살아 있는 생명체는 위와 같은 질서 잡힌 구조를 유지한다. 마치 열역학 제2 법칙(엔트로피의 법칙)을 위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러한 현상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슈뢰딩거는 ‘음의 엔트로피(negative entropy)’라는 개념을 내놓는다. 열역학적으로 열린계(open system)인 생명체는 죽음을 의미하는 최대 엔트로피 상태에 빠지지 않기 위해 외부로부터 음의 엔트로피를 흡수함으로써 생명 활동에 동반하는 엔트로피의 증대를 상쇄하고 엔트로피를 낮은 수준으로 유지한다는 것이다. 이는 생명체가 “무질서로부터의 질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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