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식물성의 사유로 읽어낸 역사 속의 여성

“나는 스탕달처럼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재능을 찾는 것을 좋아한다. … 폐허 속의 도마뱀과 같은 손을 가진 이 작은 여자를 보라. 나폴레옹을 닮은 이마에 금방 시력을 되찾은 장님 같은 눈을 한 여자, 그렇게 좁다란 가슴에서 어떻게 밤의 고통과 같은 목소리가 나올 수 있을까? 그녀는 4월의 나이팅게일처럼 노래한다. 그녀의 목소리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검은 벨벳의 파도처럼 그녀를 감싸고 있다. 노래하는 이는 더 이상 에디트가 아니다. 불어오는 바람과 우리를 감싸는 달빛이 노래하고 있다.” ―『에디트 피아프』,「죽음은 피아프를 원하지 않았다」中 쟝 콕토의 에디트 묘사(실뱅 레네 지음, 신이현 옮김, 이마고, 2002)  충매화는 곤충의 도움으로 수분하지만 풍매화는 바람을 매개로 한다. 그래서 더욱 독립적이다. 엄청난 양의 꽃가루를 만들어 사방으로 흩날린다. 에디트는 풍매화였다. 풍매화로 태어나 바람 속에서 자랐고 나무가 되어서는세상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꽃가루를 만들어 흩뿌렸다.작지만 거대한 여인교회는, 평생 십자가 목걸이를 걸었던 그녀의 장례식을 거절했다. 팬들은 그녀를 차별하지 않았다. 그녀가 세상을 차별하지 않았듯이. 장례차를 따르는 사람들은 발을 구르며 슬퍼했고 로케트 거리의 길은 막혀 버렸다. 그녀를 떠나보내는 수백만개의 꽃송이들이 폭죽처럼 터졌다. 지인 한 사람은 군중에 밀려 그녀의 무덤 속으로 떨어져 들어갔다. 사람들은 그녀를 무덤 속에 버려둔 채 떠나려 하지 않고 날이 밝을 때까지 함께 했다. 1963년 10월 14일, 그 날은 프랑스의 국민가수 에디트 피아프(Edith Piaf, 1915.12.15.~1963.10.11.)의 장례일이었다. 그녀의 본명은 에디트 조반나 가시옹(dith Giovanna Gassion)이다.에디트는 신(Chine)거리의 트농병원에서 세상을 만났다. 그녀는 거리의 곡예사와 가수 사이에서 태어났다. 거리는 그녀의 집이고 무대, 학교였으며 터전이었다. 그 곳에서 그녀는 사랑과 꿈과 돈과 낭만을 배우고 익혔다. 에디트의 무대는 점점 넓어졌다. 클럽에서 극장으로,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아버지 루이 가시옹과 어머니 린 마르사는 거리에서 만났고 금방 헤어졌다. 린은 갓난아기를 친정엄마에게 맡겼다. 아버지 루이 가시옹이 아기를 찾아갔을 때 환경은 매우 열악했다. 에디트는 2세 때 베르네에서 여관을 운영하는 친할머니에게 옮겨져 몸 파는 여인들의 사랑을 받고 자랐다. 영양실조로 각막염에 걸려 실명했었는데 아이를 아끼는 여인들이 테레사상에 기도했고 기적적으로 눈을 떴다. 그때부터 아이는 평생 십자가 목걸이를 몸에서 떼지 않았다. 8세부터 에디트는 아버지와 함께 거리의 생활을 시작했다.  거리에서 인생을 배우다아버지는 곡예를 하고 딸은 모자를 들고 돈을 거뒀다. 그렇게 15세까지 지내다 독립해 혼자 노래하며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다 루이 루플레의 눈에 들어 제니스 클럽에서 노래하게 됐다. 1935년, 스무살이 되던 해였다. 루이는 에디트에게 ‘참새’라는 뜻의 예명 ‘피아프’을 지어주고, 마들렌 극장에서 노래할 수 있게 해줬다. 에디트의 뛰어난 재능이 꽃 피울 무렵, 급작스레 루플레가 살해되면서 에디트는 경찰조사를 받게 되고 추문의 중심에 섰다. ‘파파 루이’였던 루플레의 죽음으로 나락에 떨어진 그녀는 다시금 몇몇 은인들의 도움을 받으며 가수로서 성장했다. 자크 브루제는 그녀에게 글쓰기를 가르쳤고, 레몽 아소는 엄격한 노래교육과 무대예절을 교육시켜 1937년 뮤직홀 ABC에 데뷔시켰다. 또한 평생의 매니저인 루이 파리에도 만났다. 거리에서 배운 세상의 법칙과 타고난 재능과 열정으로 에디트는 상실을 딛고 단숨에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그녀는 거리의 생활원칙을 버리지 않았다. 매일 벌어 매일 쓰는 자유로움, 누구와도 친해지는 개방성, 밤새 이어지는 떠들썩한 파티와 노래, 오가는 연인과의 사랑, 찰나를 불태우는 정열…. 처음 거리에서 노래할 때나 샹송의 거목이 됐을 때나 그녀의 삶은 한결같았다. 노래도 사랑도 바람처럼에디트의 넓은 집은 그녀에게 곡을 팔려는 사람들로 붐볐으며 그녀의 침실은 애인으로 채워졌다. 에디트의 평생은 자유와 열정, 사랑과 노래였다. 그 어떤 망설임이나 두려움도 없었다. 이제는 자신을 키워줄 사람이 필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키울 사람을 고를 차례가 됐다. 에디트가 키워낸 대표적인 가수는 이브 몽탕이다. 부두 노동자였던 이 이태리 청년은 에디트의 연인이 되어 빼어난 가수로 자라났다. 그들의 사랑은 「장밋빛 인생(La Vie En Rose)」이란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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