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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자세가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젊은 연구자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를 바랐다.
어디서나 진실 그 자체에 관심을 기울이고

자신의 생을 바치고 싶어 하는
젊은이가 있게 마련이다.

이 책의 머리말을 쓸 때 현장연구자의 삶에서 퇴장을 예견했지만, 그 불길한 예감이 들어맞았다. 이 책은 나의 마지막 저술이다. 발간 후까지 얼마간 잔명을 유지하더라도 피폐해진 육체와 정신으로 어떤 일도 할 수 없을 것이다. 한편으로 허전하고 쓸쓸하기도 하나 다른 한편으로 허허롭고 평화롭다.


학술논문을 처음 발표한 지 40년, 내 이름의 첫 연구서를 펴낸 지 28년이 흘렀다. 그동안 내가 관심 갖는 분야에 자료를 모으고 책들을 탐독하고 논문과 책을 펴내는 작업을 한시도 중단한 적이 없다. 이것이 나의 성품이나 기질에서 나온 것만은 아닐 터이다. 나는 일생 동안 비주류로 살았다. 일류 대학 출신이거나 서양사 학계에서 거의 일반적인 유학파가 아니다. 국내에서 학위 과정을 마쳤고 지방 중소대학의 교양과목 선생으로 30년을 지내다 퇴직했다. 중년에 이르러 주로 영국의 대학에 자주 출입하는 행운을 누렸을 정도다.


비주류라는 의식 때문에 스스로 겸손하고 싶었을 것이다. 서양사학회나 영국사학회 세미나에 가능하면 참석해 다른 연구자의 새로운 지식과 식견을 받아들였다. 나 스스로 부족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학회 동료, 선배, 후배 연구자들에게 가능하면 겸손한 태도로 일관했다. 스스로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나의 자세가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젊은 연구자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를 바랐다. 어디서나 진실 그 자체에 관심을 기울이고 자신의 생을 바치고 싶어 하는 젊은이가 있게 마련이다.


그간 펴낸 연구들이 과연 이 땅의 학술 발전과 인문 진화에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을지 나로서는 알지 못한다. 다만 그런 기대를 가질 뿐이다. 지금 내는 논문 엔솔로지에 수록된 글들도 이미 해체해 중요한 내용들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러니까 논문과 저술의 중요한 부분들은 ‘지식의 민주화’라는 말을 내걸고 대부분 포스팅한 셈이다.


언제부터인가 서양사 학계의 젊은 연구자, 중진 연구자들이 나와 대화를 나누려 하고 나의 공부법에 관해 질문하는 경우도 여러 번 있었다. 약간 농담 섞인 말이겠지만, 어떤 이는 롤모델이라는 표현도 쓴다. 나의 삶의 궤적이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인상을 남겼다면 과분한 상찬이자 기쁨이다.


한국의 국격이 일취월장하는 이 시기에 한국의 서양사 학자들, 나아가 인문학자들이 지구 문명의 위기를 극복하고 세계 평화를 이루는 데 큰 기여를 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이제는 촉망받는 과학철학자로 성장한 아들 이승일의 대견한 모습과 피폐해진 내 모습을 보고 애통해하는 아내 최옥희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며 이 짧은 글을 맺는다.


 

 

□ 이 글은 2022년 2월 13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고 이영석 광주대 명예교수(서양사)가 타계 1주일 전 유고 『나의 공부는 여기서 멈추지만』(푸른역사, 2022.11)에 실은 내용(‘책을 마치며’)입니다. 페이스북을 통해 대중과 지식을 공유해왔던 고인의 공부는 ‘평생학습’ 관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에 푸른역사와 유족의 허락을 받아 여기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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