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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인공지능 연구소 ‘오픈 AI’가 개발한 챗지피티(ChatGPT)가 세계적인 화제다. 인공지능계에서는 1969년 인류가 처음 달에 착륙한 사건에 비견할 만큼 획기적이라며 열광하고 있다. 챗봇의 대화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 대화형 인공지능으로, AI의 딥러닝 능력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영역인 언어능력의 도약을 이뤄냈다고 평가받고 있다.

 

챗지피티의 사용을 적극 장려하거나 의무적으로 사용하도록 한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의 이선 몰릭 교수는 자신의 학생들에게 과제를 작성하기 위해 자료를 긁어모으고 효율적으로 정리하는 일 등은 인공지능에게 맡기고 인간은 변화에 적응하고 변화를 이용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며, 인간은 갈수록 진화할 과학기술을 지휘하는 일, 그들이 아직 하지 못하는 상상력의 영역을 담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간은 자신의 불완전함을 메우기 위한 과정을 사유하는 유일한 존재이며, 상상력을 통해 그 같은 과정을 이뤄간다. 인류의 과학기술은 계속 발전해갈 것이고, 인간이 상상한 존재를 빚어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왜 인간을 닮은, 또는 넘어서는 새로운 존재를 만들고자 하는가.

 

어니스트 베커의 『죽음의 부정』에 따르면, 인간이 불행한 것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이 거침없는 팽창욕구를 지닌 존재이자 몸이라는 물성의 한계가 뚜렷한 존재임을 확인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오이디푸스 기획’이라는 개념이 나오는데, 이것은 ‘자신의 의미를 창조하고 지탱함으로써 인간으로서 완성하고자 하는’ 것을 말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성격’이라는 신경증을 구축한다.

 

죽음의 불안을 회피하기 위해 태어나자마자 구축하기 시작한 방어기제다. 이것은 끊임없이 팽창하고자 하나 쉽게 무너져버리기도 한다. 이 거대한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인간은 또 하나의 나를 빚고자 하지만, 더욱 두려움에 휩싸인다. 그럼에도 인간은 새로운 존재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못한다.

 

또한 인간은 본능에 따른 유전자를 물려주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지적 작업을 통해 인간을 닮은 존재를 창조하는 이야기를 창작해왔다. 성스러운 흙으로 빚어진 골렘은 말을 할 줄 모른다. 말을 할 줄 모른다는 것은 자기 존재를 사유할 수 없다는 의미다. 확장하고자 하는 욕망을 지닌 인간은 골렘으로 만족할 수 없다.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만든 괴물도 마찬가지다. 이 괴물은 이름을 갖지 못해 괴물로 불리고, 괴물은 이름이 없다는 것을 슬퍼한다. 정체를 부여받지 못해 자신이 어떤 인물이 돼야 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실패와 오류를 바탕으로 인간은 확장하고자 하는 욕망을 이뤄갔다. 그렇게 수많은 존재들이 빚어졌다. 기능형 로봇과 사이보그와 휴머노이드, 안드로이드, 인공지능 AI 등. 이들은 인간이 어떤 기대를 가지고 만들었으나 과정의 결함으로 인해, 또는 과잉으로 인해 예기치 못한 존재로 방향을 틀면서 인류에게 무력감을 안기는 역할을 맡아왔다. 인간은 기계에 불과한 존재들에게 물성 이상의 인간성을 부여하고 거기에 더해 스스로 사유하기를 바라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래서 ‘스스로 진화한다’는 AI까지 만들었다.

 

진화하는 챗지피티는 축적된 인류의 문화를 후손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맡을 것이고, 인간은 습득한 그 정보를 지휘하고 통합해 새로운 걸음을 내딛을 것이다. 우리가 급변하는 세상을 살면서 계속 공부해야 하는 이유다. 문학 역시 챗지피티 같은 과학기술과 서로를 견인하며 새로운 사유를 향한 여정을 함께 할 것이다. 인류 공통의 상상력에 의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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