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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건대 필자와 방송대와의 인연은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3년 직장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 영어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에 그해 신설된 영어과에 무작정 적을 뒀으나 막상 펼쳐본 3학년 교재의 난해한 낱장에 지레 겁을 집어먹고 줄행랑을 치다시피 후일을 도모하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허먼 멜빌의 ??모비딕??에 나오는 미국소설의 어휘조차 도무지 소화해내지 못했을뿐더러 다른 책장에서 중세영어를 접하고부터는 아예 내 깜냥 밖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어느 과목인지는 기억에 없으나 애써 제출한 중간 보고서에서 과분하게도 29점(30점 만점)을 받았던 추억만은 고스란히 뇌파에 고여있다.


학교도서관에서 출발한 교단생활은 이후 교과목을 바꿔 향리에서 정년을 맞았고, 나는 20여 년 전 입학했다가 아쉽게 접었던 박사과정(Ph.D.)을 당차게 재가동했다. 범위가 정해진 1차 영어시험에 이어 2차 전공 종합시험을 가까스로 패스한 뒤, 어렵사리 논제를 잡은 학위논문 작성에 일로매진한 최종 심사결과는 고맙게도 합격판정. 불과 달포 전 중간심사를 조건부로 통과할 때까지만 해도 과연 박사학위청구논문을 인쇄할 수 있을까에 대한 전망은 장담할 수 없었다. 다만 내게 남은 필력이란 글월에 녹여낸 백여 권의 이론서와 수백 편의 학술논문을 인용한 각주만이 그간의 노고를 깨알 같은 문자로 대변할 따름이었다.


그렇지만 이게 끝은 아니었다. 여전히 영어에 대한 부담감으로 인해 영문학에 재도전할 마음가짐은 아니로되, 여태껏 씨름한 인문학 분야에서 저만치 비켜서 있는 다른 세계에 접근하지 못한 행간이 흡사 불투명한 앞날처럼 흐릿한 시야마저 가로막은 터에, 국문학과 신학에 더해 묵직한 정치경제를 논하고 낯선 문화예술과 사귄다면 내 지경은 한층 넓어지리라는 사고의 지평이 열린 셈이랄까. 물론 관련 책자 몇 권을 읽고 금세 무슨 혜안이라도 얻겠다는 심사는 아니지만 나름 최적화한 소양은 갖출 수 있을 거라는 기대치가 눈앞에 어른거리니, 이른바 문사철(文史哲)로 집약되는 탐구의 언저리에는 다가가고픈 내심이렷다.


하여 냉큼 원서를 내고 선배들이 포진한 카페에 서둘러 들어가 도움을 요청한 뒤 바지런히 자료집을 뒤적이니 편입생은 학년과 무관하게 골라 듣는 배려까지 마련했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으랴. 이에 등록을 마치자마자 주어진 학번을 등에 업고 문화와 교양을 위주로 문식력을 재점검하고 대중문화를 해독하며 세상을 꿰뚫어 보기 위한 학과목을 찾았거니와 덤처럼 원격대학의 교육현장을 묶어 한아름 껴안으니, 그야말로 수강신청만으로도 미리 후한 평가를 받은 느낌이로다! 남들이야 박사모까지 쓴 마당에 무엇이 모자라 기다란 오지랖을 펄럭이냐고 캐물을 수 있겠으나 필자의 청사진은 좀 먼 데 있노라고 답하련다.


바야흐로 백세시대를 마주한 학인(學人)의 소망은 ‘지정의적 글쓰기의 체계화’를 스스로 구현해보는 일. 다소 거창하다고 핀잔을 줘도 쾌히 감수할 작정이요, 되게 요란하다고 꾸중한대도 감히 대들지 않을 요량이다. 뜻하지 않은 파고가 실시간 몰려온들 곧잘 타고넘어 왔으므로 이만큼 진지하게 말하리다. 현행 학제에 준한 단계별 졸업장은 간학문적 통섭을 위한 도정의 일환일 뿐이기에 갓 들어선 방송대의 학습장에서 평생교육을 감당해내는 일이야말로 그동안 걸머진 빚을 갚는 거라고 말이다. 그런 다음 줄곧 구상해온 장편 서사시조집을 펴내리라. 뭇 인간 생명의 궁극적 지향점이 어디인지를 극구 알리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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