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 리터러시(Health Literacy, 건강정보 이해능력)란 단어가 점차 강조되기 시작됐다. 리터러시란 글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 즉 문해력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분명 글자를 읽었는데 외계어로 읽힐 때가 있다. 읽을거리는 많은데 그중에 가짜정보를 골라내야 할 수도 있다. 의료 정보를 접할 때 특히 그렇다. 헬스 리터러시를 비롯한 수많은 ○○리터러시들이 강조되는 것도 100세 시대에, 무섭게 빨라진 세상의 발전의 속도에 뒤처지지 않아야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어서가 아닐까. 정영일 방송대 교수(보건환경학과)는 헬스 리터러시를 집중 연구하는 학자로, 지난 12일 보건복지부와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개최한 제6차 ‘미래 건강전략 공개토론회’에서 「헬스 리터러시, 전 국민 건강증진을 위한 전략」을 발제해 눈길을 끌었다. 어떤 내용인지 짚어본다.
김민선 기자 minsunkim@knou.ac.kr
“병원 진료실에서 그런 경험을 했을 거다. 의사에게 그간의 증상 말할 때 일단 잘못한 것 같이 주눅이 든다. 어디가 아팠는지 생각이 안 나 그 자리에서 얘기를 못 한다. 진료실에서 적절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은 거다. 이 상황에서 의사결정을 하면 우리가 손해 보는 지점이 생길 수도 있다. 소통은 상호작용이다. 의사는 환자에게 귀를 기울이고, 환자는 의사에게 얘기를 듣고 확인하는 상호작용이 필요하다. 요즘 같은 때는 인터넷에서도 건강정보를 얻고 의사결정을 하기까지 상호작용이 필요하고 볼 수 있다. 모든 게 헬스 리터러시 안에서 벌어진다.”
정영일 교수는 ‘미래 건강전략 공개토론회’에서 발제를 하며 이같이 말했다. 이번 토론회는 ‘건강정보 이해능력 향상으로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한 대한민국을!’이란 주제로 진행됐다.
헬스 리터러시에 대한 학문적 정의는 ‘개인이 좋은 건강상태를 유지하고 증진하기 위해 정보를 얻고,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는 동기와 능력을 결정하는 인지적, 사회적 기술’이다. 정 교수가 헬스 리터러시를 이토록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헬스 리터러시는 10여년 전부터 정 교수의 관심 분야였다. 최근 몇 년 사이의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오면서 국민들이 잘못된 건강정보를 접해 잘못된 처치를 하고, 이를 또다시 주변에 알리는 현상들을 목도했다. 그는 코로나19가 처음 시작된 2020년 3월, 방송대 다른 교수들과 자발적으로 시작한 좌담 팟캐스트 ‘에스프레소’에서 헬스 리터러시를 포함한 코로나19의 여러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여기에 더해 2022년 10월 시작한 에스프레소 시즌2에선 헬스 리터러시에 관한 에피소드를 4회에 걸쳐 뽑아낼 정도로 심도 있게 다뤘다.
정 교수는 “헬스 리터러시가 낮다면 당뇨환자가 이전엔 입원을 안 해도 됐을 수 있는데, 상황 판단이 제대로 안 돼 관리를 못하면 입원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온다”라며 “불필요한 입원은 환자에게도 안 좋고 국가적으로도 손해다. 그렇게 잘못 선택했던 분은 외래로 다시 나와도 다시 회전문처럼 몇 달, 몇 년 있다 입원하는 악순환을 겪기도 한다”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헬스 리터러시란 투자하면 끌어올릴 수 있는 분야라고 봤다. 그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헬스 리터러시를 조사했는데, 그중에서도 코로나19에 대한 정보가 한창 누적된 2021년 말에 보면 상당수의 사람들이 코로나19에 관해서 이미 적절한 수준의 헬스 리터러시를 가지고 있었음을 데이터로 파악했다.

정부가 나서 국민 헬스 리터러시 증진 추진
헬스 리터러시에 대한 개념은 1974년에 처음 나왔지만, 사람들의 헬스 리터러시를 평가하는 조사도구가 개발된 것은 1991년 경이다. 그간 미국, 유럽 등을 주도로 헬스 리터러시 연구 성과가 있었고, 한국에서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상태다. 2005년 부산대 의과대학 교수들이 미국의 헬스 리터러시 성과에 주목하면서, 이 시기부터 우리나라에서도 헬스 리터러시 기본 연구가 시작됐다. 미국 국민의 경우 수십 년간 축적된 보건교육으로 자신이 먹는 약명이 ‘타이레놀’ 같은 상품명이 아닌 ‘아세트아미노펜’으로 정확히 알고 있을 정도로 긍정적인 성과를 거뒀다.
최근 들어 우리 정부는 ‘제5차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HP2030)’의 중점 과제 중 하나로 ‘건강정보 이해 및 활용능력 제고 방안’을 마련해 연구 과제들을 추진 중이다. 세부 실천 과제는 △건강정보 이해능력 조사 도구 개발 및 주기적 실태조사 실시 △인구집단별 특성을 반영한 건강정보 이해능력 향상 교육 체계 구축 △국가건강정보포털 등 신뢰할 수 있는 건강정보 제공체계 강화 등이 제시됐다.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네 개 단체에서 국민의 헬스 리터러시를 측정한 사례가 있다. 이 조사결과들을 보면 우리나라 국민의 헬스 리터러시 수준은 20%대에서 50%대 사이에 있다. HP2030 목표에 따르면, 2030년까지 헬스 리터러시 수준을 70%까지 끌어올려야 한다. 하지만 조사 방법에서부터 목표치 설정까지 아직 맹점이 많은 상태다. 토론회에서 다른 발제를 한 이주열 남서울대 교수(보건행정학과)는 “해외에서 개발된 조사 도구로 우리나라 수준을 가늠하기엔 그 조사 도구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아 불안한 점이 있다”라며 “HP2030 내 헬스 리터러시 70%란 목표치 또한 현황 베이스라인을 모르고 잡은 것이다. 체계적이지 못한 상태에서 목표를 잡다 보니 굉장히 제한적이었다. 제가 볼 때 현재 국민 헬스 리터러시 수준이 29.1~56.8%로 추정되는 상황에서, 2030년까지의 추진목표는 60%로 잡는 게 어떨까 한다”라고 제안했다.
헬스 리터러시, 교육·법 정비로 강화해야
정 교수는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로 성인의 평생 고등교육을 담당하는 방송대를 통해 건강정보를 제대로 교육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헬스 리터러시가 새로운 분야라기보단 지금은 다시한번 발전 방향을 설계할 시간인 것 같다. 성인의 평생 고등교육을 담당하는 곳이 방송대다. 여기는 장애인에 대해서도 문이 열려있다. 방송대 밖에도 건강정보를 잘 교육할 수 있는 기관들이 있다. 우리 방송대가 이들과 함께 헬스 리터러시 가이드라인, 교육자료 등을 만들고, 지식의 저장고 역할을 할 수 있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또 이와 함께 ‘우호적 학습 환경’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더 많은 국민이 공부하고 익혀야 하는데, 부담을 느낄 수 있으니 마치 수업을 듣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도 좋은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넛지(Nudge)처럼 옆구리 찔러 지식을 학습하도록 우호적인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예를 들어 환자들에게 병원 대기시간에 건강 정보를 때맞춰 제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물론, 이런 환경을 조성하는 데는 법적 강화와 같은 접근도 필요하다. 특히 정 교수는 “용납할 수 없는 거짓 건강정보에 대해선 법적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 현재 건강증진법에 거짓 정보를 다루는 조항이 있는데 실제 적용된 사례들은 없다. 법적으로 책임을 묻고 한두 번의 사례를 통해 자정 작용도 유도할 필요가 있다”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