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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기억하고 전달하기 위해, 더불어 이해하고 공부하기 위해,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고 사랑하기 위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이야기가 오랜 발전을 거쳐 지금 시대 사람들에 맞게 최적화된 것이 바로 소설이다. 같은 소설이라도 클래식소설, 장르소설, 청소년소설, 웹소설이 너무 다르지만, 당대인의 기호와 취향에 맞춰 정립된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라는 본질을 공유한다.


평생 소설을 즐겨 읽어온 방송대 학우들은 이해 못 할 일이지만, 대중은 정말이지 소설을 덜 읽는다. 일단 책 자체를 읽지 않는다. 책을 즐겨 읽는다면 필연적으로 소설을 가장 많이 읽게 된다. 모든 책이 다 가치가 있지만, 재미와 감동과 교훈과 사유력이 겸비된 것은 소설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좋은 소설을 왜 대중은 안 읽게 됐을까. 표면적으론 입시교육의 병폐다. 초등학교까지는 어린이용으로 각색된 독후감쓰기용 소설이라도 읽는다. 중·고등학교에서는 소설을 논술대비용 텍스트나 시험문제풀이 지문으로, 읽는 게 아니라 배운다. 스무 살 이후에는 살기 바빠서 책 자체와 멀어지니 소설을 새롭게 인식하고 소설의 참 재미를 만끽할 기회조차 얻기 어렵다.


그렇지만 책 못 읽게 하는 교육시스템에도 불구하고, 책을 그중에서도 소설을 사랑하게 된 청소년, 청년들이 있었다. 나이가 들어서도 새로 소설 독자가 되시는 분들도 있다. 독서가 취미이고 특기인 분들이다. 이 독자들은 소수정예다. 100명 중에 10명도 안 된다. 신기하게도 소수정예의 비율은 100세 때까지 유지될 가능성은 크다. 지금 읽는 분은 아무리 말려도 계속 읽을 것이다. 소설처럼 ‘재미+알파’가 충만한 것은 없다. 영화와 드라마의 한계는 명백하다. 재미뿐이고 그 재미가 오래 가지도 않고 나를 생각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소설은 인간이 가진 특출한 능력인 생각의 힘으로 자기 머릿속에 영화,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일방적으로 보는 영화, 드라마와 달리, 자신이 주도적으로 이해하고 이미지를 형상화해낸 소설이 훨씬 재미있고 감동, 깨달음 같은 알파를 무한히 획득할 수 있는 까닭이다.


소설 독자가 줄어들수록 우리 사회는 삭막해질 것이다. 사람은 먹고 살아야 한다. 사람이 먹고 살기 위해서는 정치적으로 안정돼야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은 경제, 정치 활동에 치중한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봐도 경제, 정치가 원활하기 위해서는 정신건강이 튼튼해야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정치가 무엇인가? 이해와 타협이다. 경제가 무엇인가. 다 같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이다. 사회 구성원들의 타인에 대한 존중, 배려, 이해, 사랑 같은 감정 없이는 타협할 수 없고 다 같이 잘 살 수 없다. 사회구성원들의 정신건강을 지켜내는 것이 문화와 예술이다. 문화예술 중에서도 사람에게 가장 친근하며 폭넓은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소설이다.


소수정예 독자가 운집한 곳이 방송대다. 학우들은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여러분은 인류를 지키는 반딧불이다. 하지만 만족해서는 안 된다. 소설의 재미를 더 많은 이들이 만끽하도록 애써야 한다. 소설 독자가 줄어들면 100세 시대를 못 볼 수도 있다. 정치, 경제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발전해야 100세 사회도 가능하다. 때문에 내가 꾸준히 읽는 것은 당연하고 보다 많은 이들이 소설의 재미에 빠져들도록 충동하는 씨앗, 불쏘시개가 돼야 한다.


특히 아직도 소설을 모르는 무수한 인생 후배들에게 소설을 전파해야 한다. 곧 우리 사회의 중추가 될 청년들이, 자라나는 어린이, 청소년들이 소설을 안 읽는다? 공포스럽지 않은가? 소설이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에 관한 교과서임을 널리 알리고, 소수정예라도 읽게 만들어야 한다. 소설 권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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